소위 "교실붕괴"가 자주 운위되는 이때에 교육은 뚜렷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게 틀림없는 것 같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최근 0교시 수업에 관한 토론을 일선 교사들과 함께 해본 적이 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나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도 부모도 교육당국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하여!"라는 구실로 애꿎은 학생들만 긴긴 시간을 감옥 같은 학교/학원에서 보내야할 뿐이다.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미래에 더 낳은 지위와 직장을 확보하려면 "유수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이러니 "인간화 교육"이니 "참교육"이니 이런 건 이미 물 건너가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이런 형국임에도 사회는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며 맨 날 하나마나한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대안학교"가 곳곳에 세워지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몇몇 선진적인 교사들과 선택받은 아이들로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교육문제를 해소할 길을 찾았노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스승의 날" 폐지가 광범위하게 논의되는 마당에, 교육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 야누쉬 코르착은 1878년 유대계 폴란드인 가정에서 태어나 소아과 의사, 교육문필가, 작가로 활동했으며 1942년 독일 나찌에 의해 가스 처형실에서 죽기까지 고아들과 함께 한 인물이다. 그는 교육학 교수도 아니었으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직접 부대끼며 그들을 관찰하고 메모하면서 제도교육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었다. 때로 소크라테스나 페스탈로찌에 비교되는 인물이지만, 그가 발견되고 조명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들을 완전히 용서하는 능력을 갖춘 능력 있는 교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어떠한 경우란 "불평하고, 소리지르고, 으르렁거리고, 위협하고, 벌을 주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모두 포함한다. 바로 그때에도 교육자는 아이들의 모든 탈선이나 위반, 잘못들 자체에 대해 관대하게 판단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아이의 잘못은 그가 알지 못했거나 충분히 생각하지 못해서이고, 유혹과 꼬드김에 굴복 당해서이며, 뭔가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달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쁜 의지가 작용하는 곳에서조차도 교육자들은 그 나쁜 의지를 일깨웠다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문제가 전임 교육자의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교육자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 내야한다. 그것이야말로 코르착은 "교육의 승리"라고 말하였다.
코르착이 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노가 슬픔, 복수심이 아니라 동정심이다. 교사는 아이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즉, 태어난 그대로이거나 배우고 경험한 그대로이기 때문에 화내고 불평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화내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요컨대 연민의 눈을 가지고서 아이와 사귀고, 그에 대해 알며, 호의적으로 남는 사람이 코르착이 말하는 진정한 교사다.
한 때 소아과 의사였기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돌팔이 의사도 마법사도 아닌 단순한 의료인"으로 묘사한다. 병원이 영웅이나 죄수들에게 똑같이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처럼 교육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치료를 받고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지, 아니면 부당함을 행하고 단두대로 달려갈지에 관한 것은 의사가 담당할 일이 아니다. 다만 교사는 아이들의 오늘을 책임지고 그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책은 어려운 교육학적 용어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니다. 때로는 시나리오, 소설 같은 내용도 들어 있고 자기 고백적인 수상 또는 관찰기록 같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네모 반듯한 모범답안을 주지는 않지만(사실 교육에 모범답안이 어디 있을까),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꼭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아이들을 변호하라 - 에듀토피아문고 020
야누쉬 코르착 지음,
내일을여는책,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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