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명문 대학'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고려대학교, 그 이중의 공간

등록 2002.05.18 11:45수정 2002.05.1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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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의해 고려대학교 총장 세금 대납 사건이 보도된 지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학교 내외의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건 자체에 대한 조사는 진척을 보이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배 현 총장의 연임 문제가 거론되면서, 학내에서는 이번 사건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학교 운영 자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이미 안암캠퍼스에서는 총학생회를 포함하는 중앙운영위원회가 기자회견과 성명문 발표를 통해, 이번 총장 세금 대납 사건의 진상규명과 김정배 현 총장의 연임 철회 입장을 분명히 하였으며, 교수협의회도 각 단과대별로 학교 운영 자체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지난 13일부터는 개별 학생들의 자발적인 릴레이 1인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서창캠퍼스 총학생회에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학교측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학내의 활발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려대학교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지난 10일에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문을 발표한 이후로는 별도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할말이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할말이 있어도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같은 재단에 속해 있는 언론 매체를 통한 '학교 홍보'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월 23일자 '주간동아(제 335호)'에서는 "강남에 코엑스가 있다면, 강북에는 '고엑스'가 있다"며 지난 3월 완공된 중앙광장과 광장 복합 생활공간에 대한 홍보 기사가 실렸다. 이전의 '대운동장'이 '이념'과 '집단'을 상징하는 지난 시절의 공간이었다면, 새로 건립된 '중앙광장'은 '재미'와 '개인'을 우선시하는 '보보스적인 N세대'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기사에서는 중앙광장 지하공간에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과 관련해, '2000년 이후 입학한 학생들'과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생들' 사이의 평가가 엇갈린다며, 과거의 '고루하고 촌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나 '세계속의 고대'로 나아가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노력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는 '100주년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주간동아'를 통해 홍보되고 있는 중앙광장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것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세계속의 고대'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학교 측의 의지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캠퍼스가 수려하게 꾸며지면 진정한 명문 대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이면에서는 학내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목소리가 '침묵'으로 무시되고 있는 '멋진 외관'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캠퍼스 내에서 '일본식' 대운동장을 없애는 것이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이었다면, 바로 그 자리에 '미국식' 대형 몰(mall)을 들어앉히는 것도 기념 사업의 일환인가.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도 수렴하지 못하면서, 표면적인 '기념 사업'을 통해서만 '세계속의 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명문 대학'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멋진 건물들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민주적 의식'임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고려대학교가 '세계속의 고대'로 거듭나고 싶다면, 이번 총장 세금 대납사건과 총장 연임 문제에 대한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침묵'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새 건물들이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고려대학교는 자신이 꿈꾸는 '세계속의 고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같은 재단의 언론매체를 통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외관 단장'에 있어서는 21세기를 표방하는 고려대학교. 하지만 그 내부의 '문제 해결 절차'에 있어서는 아직도 '권위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고려대학교. 그 기묘한 이중의 공간에서는 오늘도, '학교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찾으려는 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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