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의 빼앗긴 '한 표'

등록 2002.05.19 04:50수정 2002.05.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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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명절때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 나가 있다보면 쓸쓸함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소외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다.

올해는 선거의 해라고 하니 재외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 동안의 선거 때마다 구경꾼의 자리에서 응원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어서 거주국의 선거에 참여할 수도 없는, 주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숫자는 무려 2백만명이 넘는다. 외국국적자까지 더하면 재외동포의 수는 모두 570만명으로 본국 대비 인구비율로 보면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2위이다.

이들은 어느 곳에 나가 살더라도 유난히 고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발딛고 사는 나라보다 늘 한국사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은 굴곡이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 때문일 것이다.

이같이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재외국민들에게 정작 참정권이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교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OECD에 가입한 30개국 중에서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재외 참정권은 선진국들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OECD에 가입하지 않은 알제리 멕시코같은 나라도 부여하고 있다. 그 동안 OECD나라들 중 일본 이태리 한국 등이 부여하지 않았으나 일본은 99년에 법이 가결돼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이태리는 2003년에 실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이제는 한국만이 남아 있다.

한국은 지난 시기에 잠시나마 해외부재자투표를 실시했었다. 독자들 중에는 파월장병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담긴 대한뉴스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어찌된 일인지 선거권은 없지만 피선거권은 주어져 있다.

뉴욕 한인회장 출신의 박지원 씨같은 재미동포들이 국내에 들어와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 같이 보이는 재외국민 참정권이 왜 주어지지 않고 있는지 그 내력과 연유를 먼저 살펴보자.

도입과 폐지의 과정

참정권 도입의 사례를 보면 각나라의 정치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프랑스도 이웃 나라들보다 뒤늦게 2차대전 후에 이르러서 비로소 여성에 대한 참정권을 허용했다.

한국은 지난 66년부터 72년까지 재외국민 선거제도를 실시해 재외국민들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각각 두 차례씩 참여했다. 67년 5월 3일 실시된 6대 대선, 같은해 6월 8일의 7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71년 4월 27일의 7대 대선, 같은해 5월 25일의 8대 국회의원 선거 등이다.

96년 10월 선관위 지도과에서 작성한 문건 '해외 부재자투표에 관한 참고자료'에 의하면 해외부재자투표제도는 66년 12월 14일 개정된 대통령선거법에서 처음으로 규정됨으로써 실시의 근거가 마련됐다.


이것은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제를 도입한 주요 선진국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해는 독일과 영국이 85년이며, 미국은 75년에 프랑스는 76년에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OECD나라들 30개국 중에서 한국만이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해외부재자투표에 관한 한 세계적인 흐름과 비교해서 한국은 반대쪽 자리로만 옮겨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 선진국보다 앞서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을 부여한 것은 국민의 권리보장 차원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실시된 것이다. 4만여명에 이르는 월남 파병군인들은 당시 정권의 적극적인 지지계층이었기 때문이다. 투표기권율도 거의 없는 표이다.

이때 실시된 해외부재자투표제는 파월군인을 겨냥한 것이라 해도 형식상 군인 공무원에게만 제한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의 광부 간호원과 미국 유럽 등지의 교포 유학생 등이 부재자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6년 동안 존속했던 해외부재자투표제는 유신 선포 직후인 72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법이 발표되고 기존의 대통령선거법이 폐지됨으로써 종료됐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국내거주자만 부재자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뒤 이어 72년 12월 30일 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서도 부재자 신고의 대상을 국내거주자로 제한함에 따라 국회의원선거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이 제도의 폐지가 파월한국군의 완전 철수를 수개월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도 빠뜨리면 안될 것이다. 게다가 당시 외국거주 교포들에게 나타났던 반정부적인 성향까지 고려해보면 박정권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참정권 도입과 폐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재외국민 참정권을 부여한 것도 박탈한 것도 박정희정권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 진전에 따라 과거 유신 악법은 폐지되거나 수정됐다. 그러나 재외국민의 선거권은 복원되지 못하고 방치된 채 내버려져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95년에 일부 재일동포들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97년경에 이르러서야 재외국민 참정권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97년 4월 MBC-TV 시사매거진 2580 프로그램에서 국내외 언론을 통틀어 처음으로 이 문제를 보도하고 같은 해 6월 당시 신한국당 이부영 의원이 재외동포 138명과 여야의원 12명의 서명을 받아 '재외국민 선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선정국 중에 잠시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필자가 펴내는 프랑스동포신문 '오니바' www.oniva82.com에서 5회에 걸쳐 특집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도 이해 5월이었다. 같은 시기에 일본과 프랑스에서 재일교포와 상사주재원등이 각각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어서 97년 7월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정치개혁특별법안을 합동으로 작성해 입법을 추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제도를 도입할 경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며, 교포사회가 여야 지지자로 갈려 반목과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논의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여야가 각기 제출한 재외동포기본법안에서도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정부측과 의견이 대립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보다 2년 후인 99년 법무부가 작성한 재외동포법 초안의 투표권 부여 조항에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배려가 들어있었다. 즉 동포들이 투표일로부터 1개월 내에 국내에 들어오면 투표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1개월이 너무 짧다는 언론의 비판을 받은 결과 3개월로 수정되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이 조항을 삭제시켰다. 해외동포사회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귀국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며 이같은 논의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보고 일소에 부쳤다.

그 이후 4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루기 위한 작은 단체가 만들어졌다. 정지석 변호사와 필자가 서울에서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한겨레네트워크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인터넷에 사이트 www.hankyore.net를 오픈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이부영 의원과 정범구 의원이 각각 선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으나 사회적 관심이 적어서 추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연말 대선에서 재외국민이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4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늦어도 6월 임시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한다. 그래야 선관위에서 실무적인 준비작업을 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재외국민 참정권 도입 반대론자의 주장과 이에 대한 비판

재외동포 참정권을 둘러싼 논의는 일차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 그런데 부여해야한다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곧 다음과 같은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200만 재외국민 중 어느 범위까지 부여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참가할 선거는 어느 범위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러면 먼저 참정권 도입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99년 1월과 3월에 걸쳐 두 차례 잇달아나온 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문에 잘 드러나 있다. 요약하면 우선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둘째는 선거기술상의 문제와 국가 재정의 부담 세째는 선거의 공정성 확보 문제 넷째는 내국인과의 형평성 등이다.

이와 같은 불가론의 논리를 비판하기에 앞서 지적해야 할 것은 위에서 거론한 문제들은 다른 나라들도 똑같이 겪어온 문제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제외한 29개국의 OECD 가입국들은 이같은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나 이같은 문제들을 보완해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이 이 문제들이 실시하지 않는 이유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론자들이 가장 먼저 꼽는 납세와 병역의 의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주권에 해당하는 참정권은 의무를 하는 국민에게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납세와 병역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국민뿐 아니라 감옥에 있는 수형자들에게도 이 권리가 부여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천부의 인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한국은 주요 국가들과 이중과세금지협정이 맺어져 있어서 한국에 납세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또한 소득이 발생한 곳에서 납세를 하게 되어 있는 조세원칙에 비춰봐도 그렇다.

참정권이 아니라 만일 이중국적을 요구한다면 기각 사유로 이같은 거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프랑스 독일등은 이중국적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영국과 미국등 앵글로색슨 계통 나라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중국적은 선택적인 문제인 반면 참정권은 절대적인 것이다.

두번째 선거기술상의 문제는 해외라는 특성상 유권자들에게 우편물의 송달 기간 등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현행 법정 선거기간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런데 이같은 문제가 실시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선거기간을 연장하면 되는 문제이다.

해외 부재자투표를 실시하면 국가의 재정부담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를 내세워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금과 국가 경제력을 비교할 수 없는 60년대에도 실시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국이나 독일 등 주요 나라들은 후보에 대한 정보는 국가가 제공할 의무를 두지 않고 개인이 취득하도록 했다. 물론 예산 절감을 위해서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공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경우를 들어보자. 프랑스는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많다는 이유로 76년부터 우편투표제를 폐지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현재의 제도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같은 한계가 예상되므로 아예 실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네 번째 지적은 내국인과의 형평성에 대한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해외거주자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하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투표권 행사에 장해가 되는 사유를 스스로 초래하였다는 점에서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재외동포의 권리와 의무차원에서 살펴보자.

한국인은 그 동안 치외법권지역인 외국에서 거주하더라도 사실상 국내법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외국에 거주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이나 간통법같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면 처벌을 받아왔다. 물론 대한민국 땅에 들어오면 법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이처럼 본국 법을 준수하면서 생활해야하는 재외국민들에게 본국 법에 규정된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형평의 차원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가.

두 차례에 걸친 헌재의 판결문에는 필자가 보기에 상당히 법외적인 판단이 담겨 있다. 현실조건을 들어서 실시하기 어렵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행정부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헌재의 판결을 보면 아직 여론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고 그래서 실시할 때가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이에 따라 법논리를 꿰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단계적 도입론과 전면적 도입론을 둘러싼 논란

참정권을 어느 범위의 재외국민에까지 부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외국민이 본국정부에 어떠한 법적 존재로 규정돼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에는 이민자용 여권을 발급하며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러나 현재 약 27만명으로 추산되는 상사 주재원 공관원 유학생 등은 이같은 변동이 없다.

그러므로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대상자는 국내에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 사람과 말소돼 있는 사람의 경우등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많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주민등록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이들을 단기체류자와 장기체류자로 구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이 두 가지 신분자에 대해 각각 나와 있다. 하나는 99년 1월 재일교포 이건우 씨 등 9명의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고 또하나는 99년 3월 수출입은행 프랑스 주재원 공주식 씨와 유학생 김영정 씨가 제출한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다.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체류자부터 참정권을 부여하고 추후에 장기체류자까지 부여하자는 주장이 소위 단계론이다. 이에 반해 단기 장기 체류자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모두 부여해야한다는 것이 전면도입론이다.

헌재의 기각 판결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해외파견군인과 공무원등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언급은 단계론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다만 해외거주자 중 해외파견군인과 공무원은 국가의 명령에 의하여 해외에 근무하고 있으며 그들 임의로 귀국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다른 해외거주자에 비하여 이 사건 기본권의 제한의 정도가 무겁다고 보여지므로 향후 입법자가 이 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부영 의원이 마련한 선거법 개정안은 일률적으로 외국에 나간 지 5년이 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해 단계론적인 입장을 담고 있다. 동시에 제출할 예정인 정범구의원의 개정안은 3월 하순 현재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정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 www.bumgoo.net에는 어느 범위까지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조사가 올라 있다. 정의원이 얼마나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힘을 더 얻고 있는 단계적 도입론이 최종적으로 채택된다면 동포사회에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우선 오랜 세월 동안 갖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귀화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60만 재일동포들은 여전히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이 만만치 않다.

재일동포사회는 매년 1만명 정도가 귀화하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조건에서 이를 제어할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조국 선거에 대한 참정권은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재일동포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그 동안 참정권 회복을 주장해왔다. 그런데도 주재원 유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재일동포들은 또 한번 조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이 각각 본국을 떠난 지 20년, 10년, 5년, 3년 이하인 자에게만 부여하는 차등을 두고 있을 뿐 OECD 가입국가들 대부분은 장 단기 체류자에 대한 구별이 없다.

참가 대상 선거는 어디까지

재외국민 전부 또는 일부에게라도 참정권을 부여하기로 한다면 그들에게 어느 선거까지 참여하도록 할 것인가. 대선과 국민투표 그리고 국회의원선거까지 부여하는 데에는 커다란 이론이 없다. 문제는 지방선거이다. 외국거주 국민에게 지방선거까지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해 12월 국회정치개혁특위에서 국내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기로 했다가 올해 2월28일 철회한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내에서 5년 이상 장기 거주한 20세 이상 외국인에게도 지방선거에 한해 선거권을 주기로 했다. 이 같은 법안이 확정될 경우 올해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갖는 외국인은 1만 6천여명에 달한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이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인은 한국과 프랑스의 지방선거에 다 참여하지만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양쪽 어느 하나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정말 희한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OECD 가입국들 중에서도 자국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는 나라는 북유럽 세 나라 등 불과 몇 개 나라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경우도 지난해 봄에 조스펭 총리가 이 안을 주장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바가 있다.

외국의 사례

우리나라에 비해 일찍부터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민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서구 여러 나라들은 그만큼 먼저 재외국민들의 참정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 나라들은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확대 개선해왔으며, 현재는 대부분이 자국 실정에 맞게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재외공관 공무원이나 해외 파견 군인들에게만 주어지던 선거권이 점차 해외거주 일반국민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며 몇몇 국가에서는 여행자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 중에서 특기할 점은 중국 대만 북한의 경우이다. 이 세 나라는 일정 숫자 이상의 재외국민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외국선거구를 두고 국회의원을 선출해서 본국에 보낸다. 프랑스의 경우는 명예직인 상원의원에 한해서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프랑스를 제외한 세 나라는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 전세계의 화교들을 서로 확보하려고 경쟁하면서 서로 환심을 얻기 위해 이같은 적극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도 일본에서 수명의 최고인민회의 대표를 선출해서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유사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81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그것인데 선거구를 둔 것은 아니지만 해외한인사회에서까지 대표자를 임명하고 있다. 참정권 박탈에 따른 해외동포 민심 무마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는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에 있어 가장 선진적인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 공관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선거관리 전담 직원을 상주시키며 외교부 영사교민국 내에는 투표담당부서를 따로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대사관 및 영사관에 투표소를 설치하지만 투표소를 설치할 수 없을 때에는 명령에 의하여 해당국가에 인접된 지역에 설치한다.

유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선거인 명부에 등재하며 투표가 마감된 후에는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서 개표하며 그 결과를 게시한 뒤 본국에 송부한다. 선거권 문제에 있어서는 적어도 해외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이나 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재외국민 자신의 문제

일본인들이 재외국민 참정권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반성의 여지를 주고 있다. 지난 93년 뉴욕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일본 유학생이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뒤 99년에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전세계 해외동포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참정권 회복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여왔다. 주로 서명운동과 법적 소송을 통해 여론을 관심을 모으고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이 당시는 인터넷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으니 전화와 팩스를 이용해서 전세계의 교포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지금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기에는 일본인들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도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동포들 사이에 이 문제가 아직까지도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지난 수개월 동안 한겨레네트워크 간사로 일하면서 확인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논리를 펼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무관심이 가장 큰 적이었다. 그것도 해외동포 당사자들의 무관심 앞에서는 무력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같은 현상은 그 동안 한국사회에 만연한 정치냉소주의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진절머리나는 한국정치판 보기 싫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이 이민 가서까지 한국의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에 심리적으로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투표를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선거권이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표현 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왜곡된 한국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참정권이 실시되면 가장 많은 유권자가 나오게 될 미국 거주 동포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미국은 동포사회의 큰집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이들이 마땅히 이 문제에 주도적인 위치에서 전세계 동포사회를 이끌어야 하건만 오히려 더 무관심한 듯이 보인다.

그들은 지난 80년대부터 줄곧 이중국적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해왔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일이다. 이중국적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투표권을 확보해서 표로서 본국정부를 압박해야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재외동포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석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이글을 절반으로 줄여서 '인물과사상' 5월호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53매의 원문을 보내드립니다. 이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외국민참정권 되찾기운동 www.hankyore.net 과 관련해서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3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재외동포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석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이글을 절반으로 줄여서 '인물과사상' 5월호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53매의 원문을 보내드립니다. 이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외국민참정권 되찾기운동 www.hankyore.net 과 관련해서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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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에이념연구소’ 대표. '부동산보유세강화시민행동' 집행위원. 80년대 도서출판 오월 발행인을 거쳐 90년대 프랑스동포신문 오니바를 펴냈습니다. 2000년대 재외동포신문 편집국장과 세계로신문 대표,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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