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니 아이들이 점점 지쳐 늘어진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미치겠어요."
문 선생이 답답하다는 투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니 늘어질 만도 하지, 뭐."
신 선생이 맞장구다.
"엎드리기만 하면 낫게. 아예 녹아 내린다니까."
송 선생도 끼어 든다.
그때 한 아이가 헐레벌떡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크, 큰일 났어요. 명철이가..."
다급한지 녀석은 말을 채 맺지도 못한다. 가만 보니 문 선생 반 아이다.
"왜? 무슨 일이야?"
문 선생이 무언가 큰 일이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놀란 표정으로 일어선다. 그 바람에 의자가 삐걱 소리를 내며 뒤로 밀린다.
"명철이가 죽어 넘어가요."
명철이가 죽어 넘어가는지 녀석이 죽어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다급한 목소리다.
"왜? 어디서?"
문 선생이 녀석에게 묻는다.
"저기, 교실 앞 복도에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와 문 선생은 정신없이 사 층 문 선생 반 교실로 내달린다.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넘어 숨이 턱에 오를 정도로 달려 사 층에 이르자 아이들이 복도에 잔뜩 몰려 있다. 그 아이들에 둘러싸여 한 녀석이 널부러져 있다.
"자, 비켜. 비키라니까."
나는 아이들을 비키게 하고, 녀석을 업는다. 제법 덩치가 큰 녀석이라 일어서는데 무릎께가 시큰하다. 녀석은 완전히 맥을 놓고 있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정신없이 양호실로 달려간다. 달리는 내 뒤에서 문 선생이 자꾸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
"명철아. 명철아. 괜찮니? 정신 차려."
그러나 녀석은 전혀 반응이 없다. 양호실 침대에 녀석을 눕히자, 양호선생이 이곳저곳을 진찰해 보더니 응급 처치를 한다. 한동안 그러고 나자 비로소 녀석이 길게 숨을 몰아쉰다.
"대강 응급 처치는 해놨으니 별 일 없을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시죠."
양호선생의 말에 문 선생,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완전히 진정이 되지 않은 문 선생을 밀쳐놓고 내가 아까 달려 내려온 녀석에게 묻는다.
"저, 그게요... 그러니까 인석이가 명철이를... 목을 졸라서... 명철이가 목을 이렇게 내밀고..."
녀석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더듬댄다. 그런 녀석을 다독거려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내뱉는다. 문 선생도 내막을 알고는 기가 차서 맥이 다 빠진 표정이다.
얘긴 즉슨, 요즘 아이들에게는 목조르기 한판이 유행이란다. 먼저 목조르기 한판을 당할 학생을 선정하여 녀석을 벽에 기대 세운단다. 눈을 감게 하고, 천천히 녀석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댄다. 엄지와 검지다. 목 가운데 톡 불거진 뼈 윗부분을 지긋이 누른다.
"아니, 그래서 명철이의 목을 졸랐단 말야? 내 인석이 이 녀석을 그냥..."
문 선생이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다음 날, 직원회의에서 목조르기 한판 놀이를 금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아이들에게는 목조르기 한판의 위험성이 누누이 강조되어 전달된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교사들의 순시가 강화된다. 아이들은 그래도 몰래몰래 목조르기 한판 놀이를 하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월 초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러다가 유월 말쯤이 되면 목조르기 한판은 그 수명을 다한다. 다시 다음 해 유월 무렵이면 또 다시 목조르기 한판 시합이 벌어지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더 이상 한판 시비는 없다.
여고에서 분신사마 놀이가 유행이다. 서로 손을 잡고, 볼펜을 사이에 끼워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딧세이 그랏세이"하며 주문을 외우듯이, 중학교 아이들은 목조르기 한판을 한다.
유월, 삼월 개학 때부터 늘 반복되어온 학교의 일상에 지치고, 공부도 지겹고 시들해지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 그런 위험한 장난이라도 해야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일까? 죽음과 맞닥뜨려서야 긴장과 생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열서너 살 꽃다운 청춘이 그렇게 시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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