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아프지도 말라"

이번 주 종로서적 베스트셀러 1위 <연탄길>

등록 2002.06.04 08:51수정 2002.06.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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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딜 가나 고층 아파트의 물결이지만, 그 높이만큼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은 아니다. 가난하면 아프지도 말라"며 병원에서는 돈 없는 사람을 거리로 내모는가 하면, 죽은 지 일주일이 넘어 발견된 노인의 주검을 TV를 통해서 보다가 바로 자신의 옆집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기도 하고, 주차 문제로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다반사이다."

연탄. 지금의 땔감은 대부분 기름보일러나 가스로 대체되었지만, 한때 우리들의 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땔감이 연탄이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서민들의 집에서는 연탄 몇 장을 넣었는가에 따라 그 집의 재정상태를 드러내는 한 표본이기도 했다.


연탄은 사람들의 추운 몸을 데워주고, 그 재는 미끄러운 빙판길을 덮어주는 서민들의 소중한 벗이기도 했지만, 잘못 사용하면 연탄에서 배출되는 일산화탄소로 인해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서운 무기로 돌변하기도 했다.

연탄은 무연탄을 주원료로 하여 다른 탄화물을 분쇄하여 배합 또는 혼합하여 만들어 건조시킨 원통형 고체연료를 말한다. 또 연탄은 몸통 여기 저기에 공기구멍이 뚫려 있어 그 구멍수에 따라 구공탄 또는 구멍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연탄, 이제는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 연탄을 소재로 하여 지은 책 <연탄길>이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를 제치고 이번 주 종로서적 베스터셀러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에서는 여전히 7위.

문단에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이철환이 쓴 <연탄길>의 출간 시기는 신경림 시인이 쓴 <시인을 찾아서>(1998년 10월 출간)처럼 최근에 나온 책이 아니다. <연탄길> 역시 지난 2000년 8월에 출간된 책으로 출간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 또한 지난 해 12월 KBS에서 진행하는 'TV, 책을 말하다'에서 소개한 이후, 각 서점의 베스터셀러 목록 10위권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세인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시인을 찾아서>와 더불어 TV라는 위대한(?) 괴물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아니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권력(?)의 위대한 힘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연탄길>(삼진기획, 7500원)은 1장 우리가 사랑할 때, 2장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3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로 구성된 책으로 종로서적에서 지난 달 4주 주간 베스트셀러 비소설 3위, 4주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7위, 3주 주간 베스트셀러 비소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찢어질듯이 가난하고 힘들지만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마음 하나만은 넉넉한 우리네 서민들의 따스한 감성이 묻어나는 책이다. 또한 지금 현실과는 동 떨어져 보이는 연탄을 소재로 하여 지나간, 아니 불과 20여년 전에 있었던 우리네 삶을 반추함으로서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현재의 삶에 찬물을 끼얹는다.


<연탄길>은 저자 이철환이 노량진에서 학원강사 생활을 하면서, 그 동안 수강생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와 필자 스스로 직접 보았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묶어놓은 책이다. 또 저자 스스로도 차마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렸으며(30컷), 등장 인물 또한 대부분 실제 인물이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부상하고 있는 책들을 지난 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종로서적에서 집계한 결과 "<연탄길>뿐만 아니라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년 7월 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작가 공지영이 쓴 <봉순이 언니>(1998년 11월 출간)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연탄길>이나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봉순이 언니> 모두 그 시기가 70년대와 80년대 초, 몹시 어려웠던 시기를 작품의 주 무대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때 어렵게 살았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잔잔한 감성으로 회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모두 신간이 아닌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기본 정서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철환은 "이 작업을 4년여 동안 하면서 몸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의 이번 주 베스트셀러 순위는 지난 1년 동안 KBS에서 방영한 'TV동화 행복한 세상'이 1위를, 지난 주까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는 2위로, 3위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4위는 <오페라의 유령>, 5위는 <창가의 토토>가 차지하고 있다.

종로서적의 순위는 1위 <연탄길>, 2위 'TV 동화 행복한 세상', 3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4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5위 <괭이부리말 아이들> 순이다.

연탄길 1

이철환 글.그림,
생명의말씀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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