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교직에 있다보니 제게도 많은 제자가 생겼습니다. 굳이 그렇게 가를 일은 아니지만, 그 제자들 중에는 기쁨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슬픔이란 단어와 어울려서 떠오르는 이름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저에겐 소중한 이름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살다보면 제게도 기쁜 날이 있고 슬픈 날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생각나는 제자들의 얼굴이 뒤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추억 속의 제자들이 제겐 가장 다정한 친구인 셈입니다.
우중이는 저와 슬픈 정이 많이 든 아이입니다. '슬픔은 인간을 걸러준다'고 했던가. 그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숙연해지고 차분해지고 그리고 순결해집니다.
그의 부친은 생활능력이 없는 농아입니다. 생모는 그가 네 살이 되던 해 집을 나갔고, 함께 사는 계모는 정서적으로 결함이 있는, 철부지 어른입니다. 그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는데, 그중 친동생은 몇 년 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저 세상으로 먼저 갔습니다.
그의 슬픔의 이력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고향집은 지금 물 속에 잠겨 있습니다. 제가 담임을 맡던 바로 그해 주암댐 공사로 수몰지구가 된 것입니다. 그의 고향집이 물에 잠기기 며칠 전, 저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들여 그와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일박으로 저는 그의 고향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담임 시절, 하루는 그가 우울한 낯빛으로 저를 찾아와 조퇴를 청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한사코 가야할 곳이 있다면서 다녀와서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주고 조퇴증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약속대로 저를 찾아와 어제 친어머니를 만났노라고 얘기해주었고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말만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울먹이는 듯한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펑펑 쏟아낼 듯했습니다. 며칠 뒤 그의 생일이 돌아왔고, 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생일 선물로 전해주었습니다.
겨울 햇살처럼
네 슬픔을 나는 알지
힘쓰지 않아도
남들에겐 다 주어지는 것
네겐 없다고
가끔 몸으로 우는 너를 보았지
금과 은도 아니고
부서져 더욱 빛나는
포말 같은 아름다운 얘기도 아니고
다만 한 번의 눈빛
바람처럼 몸을 파고드는
정(情)이 그리운 게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눈물조차 없이 돌아섰을 때
어머니, 나의 어머니
네 잊혀진 심연 속으로
소리 없는 파문이 일었겠지
벗이여!
그래도 아직 슬픔은 네 몫이 아니다
문 두드리면 열린 너의 미래가 너무 눈부시다
일을 하자, 사랑을 하자
죄라고 짓자
주어진 삶을 파고, 일구고
패치고, 쪼개어
손수 눈물 없는 날을
만들어보자
겨울 햇살처럼
겨울 햇살처럼…
그 후 우중이는 3학년이 되어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해 졸업식이 끝난 며칠 뒤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지내니?"
여전히 슬프지만 맑은 눈을 가진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겨울 햇살처럼요."
저는 지금도 그를 만나면 달리 해줄 것이 없습니다. 밥값을 내는 것도 그쪽입니다. 다만, 그 동안의 일을 털어놓는 그의 슬픈 눈을 가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저를 찾아와 위로를 얻고 가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 안에 들어있는 그의 물에 잠긴 고향집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비슷한 연유로 해서, 겨울 햇살처럼 미미하지만 한 가닥 따사로운 희망을 안고 별 도움도 주지 못하는 옛 담임을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끔 그가 많이 그립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안에 있는 그의 고향처럼 그의 슬픈 가슴 안에도 제가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의 쉼터인 고향이 자리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좋은교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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