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후배가 평화주의에 입각해 총 겨누기를 거부해 항명죄로 3년 형을 받았다. 그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을 정죄한 법의 부당성 앞에 앉은 작은 소크라테스를 떠 올리며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아직도 감옥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맨 앞장의 헌사에 나타나듯이 이 책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특수상황과 그 특수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개인의 양심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눈물 나는 노력이 왜 가치가 있는 지를 밝히고 싶은 마음에서 쓰여졌다.
저자는 러시아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한국인됨의 개인적 과정을 잘 모르겠지만 완전한 한국인 됨 때문일까?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의 중심 화두로 부각된 후 그는 중심에서 이 화두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한국인이 아니었기에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숙명적 의미와 그 속에 뿌리박혀 있는 전근대적 관념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통찰할 수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자유와 평등, 개인의 가치 등이 교묘하게 제도와 의식 속에 숨여든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해 낸다. 특별히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의식이 눈을 뜨기 전, 군대 문화와 패거리 문화 등에 의해 정착된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단면들을 그가 지적해 주었다.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상사와 부하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들을 형성하는 그룹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중심으로 한 권력담론으로 무장된 우리의 정신 사회를 만나게 된다. 그걸 아주 당연한 문화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저자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중심으로 한 논의에서 이같은 전근대적 사회구조를 들춰내는 것은 그만큼 현재 우리의 삶의 구조가 그만큼 인권이나 개인의 자유로부터 멀어진 채 집단적 권력 담론을 중심으로 한 가치 체계속에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조가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엮어가고 있다. 그 뜨여지는 직물구조를 우리는 미쳐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그 현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 현실 속에 우리가 살아오지 않았는가? 어린시절 초등학교 시절의 아침 조회 시간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머리를 깍고 교복을 입고 지도부 선배들을 무서워하며 다니던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떤가? 또 아버지가 무서워 가정 밖에서 배회하던 우리의 모습은... 이 모든 모습들의 결정판은 군대에서 나타나지 않았던가? 개인의 인권이 딱지 떼이고 무엇이든 군율(?)과 질서에 통제되된 전쟁 기계, 아니 제도 기계가 된 인간의 비참한 모습. 그 모습으로 지낸 3년여의 기간은 이 사회의 모든 기득권자들의 정신구조를 거의 그런 모습으로 꼴지웠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은 정말 비상식적으로 왜곡된 문화 속에 너무 깊이 참잠되어져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이 국민의 의무에 대한 개인의 회피 내지는 사회 평등의 원칙이라는 빗나간 논제로부터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아마도 이런 의식을 끄집어 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설명대로 정말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비상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오늘 우리의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한 마디로 유교적 질서에 편입되 젊은이들이 변화를 이끌어나갈 가능성이 희박한 중세의 갑옷을 입은 얼치기 모더니티라는 것이다. 이 불합리한 사회적 현실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그의 외침이 이 땅의 독자들을 부끄럽게 만들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이 책을 쓴 그의 진정한 바램이 아니었을까? 그의 책을 주목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대한민국을 바로 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될 것이다.
하루 아침에 그가 지적해 내는 권위주의와 폭력 문화, 지역 연고주의의 왜곡된 문화, 물질주의와 상업화로 둘러쳐진 자본주의 문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대한민국을 저자의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느껴지는 양심의 전율들이 모아져 이 사회를 흔들 수만 있다면 그 땐 바벨탑과도 같은 혼돈의 가치가 무너지고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참된 인권 사회라는 유토피아가 정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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