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서민 사기극'의 울산편?

SK 농성 유가족, "후보 이미지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

등록 2002.06.11 23:55수정 2002.06.20 13:03
0
원고료로 응원
'옥탑방' 발언과 '빠순이' 발언, 어린 아이 사진의 무단 게재 등 한나라당의 '서민 사기극'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린 가운데 이번에는 박맹우 울산시장 후보가 차기작을 내놓았다.

지난 6월 1일 토요일자 '울산매일신문' 2면은 "초여름 무더위 속 거리유세 열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박맹우 후보의 유세 현장을 스케치했다.

한나라당 박맹우 울산시장 후보와 함께 거리유세에 나선 한 선거운동원이 박 후보의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글을 올려 관심.

'5·30 박 후보와 힘든 하루' 제하의 이 글에는 학성 청과물 시장에서 재래시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상인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은 후 SK 정문 앞에서 소복 입은 여자와 일행 3명이 시위를 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 박 후보는 이들 일행이 유가족으로 암 환자 사망 진실규명 및 사후처리와 관련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자 잔잔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선거운동원들에게 목소리를 낮추며 돌아가자는 쓸쓸한 표정의 박 후보에게서 인간미를 다시 한번 느낀다고 표현.


농성중인 유가족에게 행여나 누가 될까봐 선거운동을 하다말고 '목소리를 낮추며',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시장 후보라니,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복 입은 여자'가 이 기사를 우연찮게 읽었다는 것이다.

▲ 김해정 씨 ⓒ 이선이
지난 3월 4일부터 SK(주)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해정씨(35세)는 5월 30일 아침 7시 경, 출퇴근길 침묵 시위를 위해 정문 앞에 도착했다. 이미 막내 남동생인 김정원씨(29세)가 친구와 함께 6시 30분 경부터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김해정씨가 시위를 시작한 얼마 후 박맹우 후보가 도착했다. 그는 미리 와 있던 수행원들과 출근하는 SK 노동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호소하다가 8시 10분 경 출근 인파가 뜸해지자 곧바로 돌아갔다.


"우리가 바로 옆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말았어요. 위로의 말은커녕 왜 그러고 서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시장 후보의 무관심에 상심해 있던 유가족은 이틀 후 울산매일 기사를 읽고 분통이 터졌다. '현장 목격'을 제외한 나머지 정황들 즉 시위 이유 확인, 위로의 말, 목소리를 낮추며, 쓸쓸한 표정 등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유가족의 화를 돋운 것은 천막 농성이 100일째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관심도 없던 한나라당이 어이 없게도 후보 이미지 조작을 위해 유가족의 눈물겨운 싸움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에 우리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탄원서를 곳곳에 보냈어요. 청와대에서부터 환경부, 노동부, 국가 인권위원회, 울산 시청, 울산 남구청, 한나라당 울산 시지부까지 거의 스무 군데에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은 곳은 한나라당 밖에 없었습니다."

SK(주) 직원 암사망 관련기사
SK(주), 직원 암 사망 직업병 논란
SK(주), 산재 자료 허위 조작 의혹
이 기사는 보도할 가치가 없나요?
산재 논란 SK(주)에 암환자 추가확인
"마음이 울적해 함 써 봤심더"


6월 3일 월요일 낮 유가족은 신문사를 찾아갔다.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기사를 실은 무책임함에 항의하자 김흥두 정치부장은 "인터넷에 한 운동원이 올린 글을 토대로 박맹우 선본 측에서 보도자료를 보내와 기사화했을 뿐"이라고 배경을 설명하며, 박맹우 선본 쪽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면 정정 보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방문한 박맹우 선거 캠프 역시 저자세로 나왔다. 이날 오후 직접 천막을 찾은 인터넷 담당자 조정래씨와 언론 담당자 박해성씨는 "선거 운동원의 열의가 지나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며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이미 4일자 신문은 마감시간이 지났으니 5일자 신문에 내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6월 5일 아침, "정정 보도가 실린 신문을 들고 찾아오겠다"던 선본 사무장이 김해정씨의 옛 친구를 대동한 채 방문했다. 이들은 거듭 사과의 뜻을 밝히며 정정 기사가 아니라 현장 스케치 기사 형식으로 진위 여부를 밝혀주면 안되겠느냐고 제안했다. 유가족은 거부했고, 다시 한번 정정 보도를 다짐받았다.

그러나 일주일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 정정 기사는 실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선본 기획팀장은 "아직 안 실렸냐?"고 되려 반문하며 "이미 울산매일 측에 정정 보도자료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울산매일 김흥두 부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정정 보도자료를 받은 적 없으며, 그 기사 내용의 진위 여부조차 박맹우 선본은 확인해준 바 없다"는 것.

재차 문의하자 기획팀장은 "누가 담당자인지 알 수가 없다"며 담당자와 진행 상황을 확인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투표일을 겨우 하루 남겨놓은 상황이라 이러한 의지가 무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유가족은 박맹우 후보측이 정정 기사를 실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언론중재위원회 고발을 검토 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