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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안에는 뽕나무가 많습니다. 사람이 심은 것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산자락이나 밭 가장자리에도 신통하게 그것은 뿌리를 박고 잘 자라납니다. 한동안 야생 뽕나무 뿌리가 당뇨에 좋다는 소리가 돌면서 뿌리째 뽑히는 수난을 겪던 나무입니다.
집으로 오르는 길가에도 오래 묵은 뽕나무가 있습니다. 큰 것은 어른 허리만큼 굵기도 하니, 싸리나무만한 가지가 그 정도로 크려면 적잖은 세월을 마을과 함께 살아온 나무들입니다.
얼마 전부터 열매를 달기 시작한 뽕나무들은 길 바닥에 시커멓게 탐스런 오디들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숲이 내어 놓는 것 가운데 가장 달콤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그 열매인 오디일 겁니다.
산딸기는 떫기가 쉽고, 버찌는 너무 잘아 입맛만 다시기 십상이지요. 오디는 바로 그 달콤한 맛으로 수난을 겪어야 합니다. 몸에 좋다고 하면 곧바로 떼를 지은 사람들로 수난을 겪는 우리의 숲에서, 요즘엔 바로 오디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날, 배 주리던 시절에야 찔레순이건, 아카시아꽃이건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그랬다치지만, 요즘의 경우는 그도 아닙니다. 너무 배가 부른 게 병이고, 그 걸 걱정하는 이들이 또 숲을 헤매고 다닙니다. 숲으로서는 사람이 배가 주려도, 불러도 어려움을 겪긴 한가지인가 봅니다.
이른 봄에 산나물 캐러 한동안 몸살을 앓던 골짜기가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합니다. 한창 농삿일에 바쁜 마을 사람들에게야 이따금 지날 때, 손을 뻗어 몇 개 따 먹는 게 고작이지만, 외지에서 온 이들은 아예 작정을 하고 옵니다.
낯선 이들이 차를 몰고 골짜기로 들어서길래 걱정이 되었지만, 하루종일 그들을 살피고 있을 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 하러 왔냐고 따져 물을 처지도 아니니, 얌전히 오디나 따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에 나는 무심코 지나던 길가의 풍경이 무언가 낯설게 바뀐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가파른 비탈을 움키고 섰던 뽕나무 밑이 허전하게 비어져 있었습니다. 덤불들로 가득찼던 비탈은 이가 빠진 듯이 휭하니 비워져 있는데, 다가가 보니 누군가 낫으로 주변의 덤불이나 잔나무들을 말끔히 베어낸 것입니다.
장마철마다 산에서 흐르는 물들이 쓸어내려 가뜩이나 수해가 걱정이던 비탈들은 도롱이 먹은 강아지처럼 뭉턱뭉턱 나무가 베어지고, 맨살을 드러낸 비탈은 사람들의 발에 짓뭉개져 반들반들 길이 날 지경입니다.
오디를 털기 편하게 아마 낫으로 덤불을 베어낸 듯한데, 그것들 중에는 꽤 굵은 나무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뽕나무가 서 있는 곳은 어김없이 그 모양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나무에는 나무막대가 가로질러 있었습니다. 덤불을 베어내고, 나무를 자르고, 그것도 모자라 잘라낸 나무로 뽕나무 허리에 끼워 넣고, 마구 흔들어댄 모양이었습니다.
이따금 아이들이 청개구리처럼 매달려 입들이 새카매지도록 오디를 따먹는 걸 보기도 하고, 땡볕에 김을 매던 농부가 그 그늘에 앉아 쉬다가 손을 뻗어 따 먹는 거야 누가 무어라 하랴. 아마 뽕나무도 그쯤은 헤아려 넉넉히 오디를 마련해 두었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목에 주리를 틀 듯 나무를 걸고 한 알도 남김없이 흔들어대는 사람들을 대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얼마전 검은 무쏘를 타고 온 노인들이 커다란 보자기를 뽕나무 밑에 놓고 나무를 흔들어 오디를 몇 자루나 털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뽕나무는 얼마 남지 않은 열매를 다시 내어 놓았고, 또 다시 주말이면 그 얼마 남지 않은 오디를 따러 몰려 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오디 한 개를 입에 주워 넣어 봅니다. 들치근한 단물이 내게는 왜 그리도 쓰게 느껴졌는지…. 나는 벌겋게 벗겨진 비탈에 휭하니 서 있는 뽕나무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오디야, 차라리 열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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