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살아있는 중국정신의 집산

<차이나소프트 - 문학1> 중국 역사나 문화 근간 이해 지름길

등록 2002.06.21 22:42수정 2002.07.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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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예술의 한 장르로 당대인들의 마음과 이상을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는 수단이다. 중국은 종이와 인쇄술을 발견한 나라다. 또 원시시대부터 문자를 통한 예술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 한자의 발견 이후 중국 문학은 더욱 다양해지면서 질적, 양적으로도 발전했다. 특히 최초의 시가(詩歌)전집인 ‘시경’(詩經)이나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이후에 문학은 중국인의 정신문화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이후 당(唐)대의 시나 명(明)대의 소설은 중국 뿐만 아니라 동양문학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물론 근대 서양문학이 들어온 과도기를 거치고, 49년 공산혁명의 성공이후 중국 문학은 토대를 바꾸는 복잡한 작업을 거듭했다.

하지만 문학 등 예술이나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또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인위적인 의도로 움직이기 보다는 수많은 이들의 생각이, 번뇌와 성찰 성찰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국 문학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한국문학을 전공했으므로 중국문학에 대해서 지식이 얕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앎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문학을 통해 중국을 읽겠다는 자만을 부려본다. 신화에 대한 기술을 시작으로해서 고전문학을 약간 살피고, 현대문학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현대 중국을 읽는데 시간의 유사성이 중요할 것 같아서다. 역시 다양한 주제로 중국을 읽어본다.



신화, 살아있는 중국정신의 집산

▲ 황제의 능 비각. 시안 부근에 있는 황제의 능. 역사적 고증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국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알려졌다. ⓒ 조창완
신화(神話)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는 먼저 단군신화를 떠올릴 것이다. 호랑이와 곰이 마늘 먹으면서 인간으로 변모하는 이야기. 따라서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 일 거라는 생각.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적 단군신화 속에서 많은 우리 근본 정신을 끄집어냈던 기억을 해보자. ‘홍익인간’ 등 우리 민족의 정신안에 속아있는 정신은 물론이고, 농업국가의 면모 등 문화의 근간을 구성하는 요소까지 찾아냈었다.


즉 신화는 거짓 이야기라 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인 경험 또는 한 집단이 자기네들이 경험했다고 믿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가공의 이야기가 있기에 역사가 아니라 신화가 되는 것이다. 그 가공은 다르게 말하면 문학적 기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의 전단계에서 ‘신화-설화나 전설’가 있다고 문학이론가들은 말한다.

그럼 중국은 어떨까. 신화와 사회주의 국가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에서 신화를 공부하기도 했던 마르크스는 ‘신화는 역사의 반영이다’라고 말했다. 루쉰 등 중국 근대 사상가들도 신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테마 중에 하나로 놓은 것이 사실이다. 단지 중국 신화 연구 역사는 ‘문화대혁명’시절에는 적잖은 환란을 겪었다. 하지만 문혁이 지난후 신화연구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중국 신화는 역대적으로 몇사람의 큰 도움을 받았다. 첫 인물은 굴원이다. ‘이소’(離騷)로 익숙한 굴원은 신화나 전설 등을 총 집합해 ‘천문’(天問)을 짓는 한편 각 장르간의 벽을 허물어 신화의 가치를 재고시켰다.


최근에 가장 위대한 신화의 정리자는 위앤커(袁珂)다. 그는 1950년 베이징 상무인서관에서 간본으로 ‘중국신화전설’을 발간 후 자료를 보강하고, 연구 정리해 방대한 양의 중국 신화를 정리해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중국인들의 생각안에 신화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신화는 그들의 정신에서 살아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중국 신화속에 인물들에 대한 대우다.

중국 신화속에서 가장 주된 인물은 ‘삼황오제’(三皇五帝)다. 물론 신화가 완전히 소설이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에 있었던 사실을 변주한 것일 확률이 많다는 점에서 복희, 수인, 신농 등 삼황과 황제(黃帝), 전욱, 제곡, 요, 순 등 오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실재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중국 신화가 높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중국 사상의 큰 근간인 유가(儒家)의 비조 공자는 괴력난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후대 유가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신화의 가치를 상당히 부정해 왔다.

그럼 현대 일반 중국인들에게 신화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모든 종교에 대해서 포용적인 중국인들의 사고 속에는 신화 역시 그들의 일상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 황제와 치우의 전투도. 황제와 싸워 패배한 치우는 한국 상고사 연구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 조창완

2001년 여름 후베이(湖北)성 선농지아(神農架)를 방문했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곳은 삼황중 하나인 염제(炎帝) 신농씨를 중요하게 모시는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신농씨의 제단을 크게 만들어두고, 일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반인반수의 형상을 한 신을 모시는 것이 중국인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들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안(西安) 근교에 있는 황제릉 등은 고증 여부를 떠나서 이곳 사람들의 숭앙을 받고 있다. 황제릉의 경우 2002년 청명절인 4월 5일 중국인들과 화교들이 모여 대규모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2002년 6월 22일에는 루쉰의 고향인 샤오싱(紹興)의 인근 마을에서 4천년 동안 대우(大禹)의 능을 지켰다는 인물이 소개되어 흥미를 끌기도 했다. 치수로 유명한 우왕의 흔적은 창지앙(長江) 곳곳에 있고, 그곳 주민들은 모두가 그 유적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그럼 중국 신화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 고대신화는 발생과 유행지역에 따라 서부의 곤륜(崑崙)신화, 동부의 봉래(蓬萊)신화, 남부의 초(楚)신화, 중부 지역의 중원(中原)신화 등으로 나뉜다.(빙신(氷心) 저 ‘중국문학사’)

중국 신화의 모습은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의 연속이다. 신화에 대한 전반적인 해제인 도론편(道論篇)이 지나면, 본격적인 신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데 그 첫번째는 어느 신화나 그러하듯 개벽편(開闢篇)이다.

"묻노니, 아득한 옛날, 세상의 시작에 대하여 누가 전해 줄 수 있을까?"라는 초사(楚辭)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중국개벽신화를 읽으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 신화와 유사한 점에 놀라게 된다.

신화의 원형으로 들어가면 세계 어느 신화에서도 놀랄 만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실제로 대면했을 때 더욱 놀란다. 중국의 신화 역시 창조자가 7일 동안 세상을 만들고, 이레째 되던 날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노아의 방주'와 거의 흡사한 뇌공의 이야기 등은 성경과 중국신화의 별다른 차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신들의 세계에 가장 큰 화두는 인간이다. 신들과 달리 수명이 존재하고, 능력에 한계가 있었던 인간들은 자연에서 수많은 재앙에 직면했고, 여와 등 인류를 위한 보호자들이 나타나는 한편 우리 민족 신화의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는 치우, 도올 등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물론 중국신화의 앞 부분의 주인공은 황제(黃帝)라고 봐야 한다.

▲지난 4월 5일 청명절에 열린 황제 제사. 중국인은 물론이고 해외화교들이 한족이 수천년만에 부흥을 맞자는 의미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 조창완
그리스신화에 제우스에 해당하는 황제는 라이벌인 염제(炎帝)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등 신들의 초기 역사를 주관한다. 초기 신화의 가장 큰 라이벌인 황제와 염제의 대결은 3편 황염편부터 기술되어 신화의 맛깔스러움을 더해 준다. 태양의 신이자 농업의 신, 의약의 신인 염제는 가장 인간적인 영웅이지만 황제에게 패함으로써 추락하는 신이 되고 만다.

신화는 시간이 거슬러가면서 점차 신화가 아닌 반신반인화로 변해간다. 그 정점에 있는 대표적인 이가 예일 것이다. 활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예는 원래 천신이었지만 제준은 그를 땅으로 보내 인간을 괴롭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시켰다. 예와 더불어 그의 아내 항아 역시 지상에 내려온다.

과연 예는 사방을 돌며 인간을 괴롭히는 갖가지 것들을 활로 무찌른다. 또한 기이하게 만들어진 열 개의 태양이 하늘에서 인간을 괴롭히자 활로 9개를 떨어뜨린다. 이밖에도 그는 알유 등 수많은 괴력난신을 무찔러 인간을 도탄에서 구한다.

하지만 예는 천제의 아들이었던 9개의 태양을 떨어뜨린 것의 책임으로 인간으로 추락한다. 아내 항아도 더불어 인간이 되었다가 성급히 신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실수해 달의 신이 되는 등 예를 둔 전설이 많다. 인간을 위한 행위로 활을 쏘았다는 점에서 예는 그리스신화의 헤라클레스에 비견할 것이다.

중국의 신화에는 예와 비견되는 또다른 영웅들이 많다. 하늘의 보물인 식양을 훔쳐다가 인간세상의 홍수를 막으려 했으나, 치수에는 실패한 곤도 그 한 예일 것이다. 곤은 책임 때문에 그의 몸에서 태어난 우(禹)는 하늘에서 식양을 합법적으로 얻는 것은 물론이고, 수신 하백(河伯)의 도움을 받는 등 다양한 도움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고 하(夏)왕조의 기틀을 세운다.

중국 신화는 단순히 중국인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나 일본 등 동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에게 신화시대의 연구가 중요한 것은 우리 역사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황하 유역을 동양문화 발상지로 생각하는 이론에 생각이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중국 신화에도 등장하는 치우(蚩尤) 등이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논의를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 동양문화의 탄생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 신화의 연구는 단순히 중국 문화나 정신의 원형을 찾는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연원과 근원을 찾아갈 때도 중요한 작업이다. 한국에도 전인초, 김선자 교수의 번역으로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민음사)이 번역되어 첫 걸음은 내딛었다.

수년간 한국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늘었다. 신화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서구신화는 우리의 정신원형과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가진 사상적 근원은 무시한채 서양 사상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중국신화,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동양신화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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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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