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나는 종이 길게 울린다. 창 밖으로 빗줄기가 자욱하다. 교실 안이고 복도고 온통 습습한 기운 천지다. 내 마음조차 칙칙하게 가라앉는다. 수업 시간 내내 몇 번 분필이 부러졌다. 습기 찬 날이면 조금만 힘을 줘도 툭툭 분필이 부러진다. 한참 열심히 설명을 하다가 분필이 부러지면, 마치 내 마음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 심드렁해 하는 나의 타성이 분필처럼 그렇게 부러지는 것이 아닐까?
교직이라는 것이, 일년 단위로 반복되는 법인데, 아이들에 대해 새로운 마음이 없다면, 처음 몇 해만 신선한 느낌이 들 뿐, 그 다음부터는 날마다 그게 그거인 일상의 반복이다. 요즈음의 내가 바로 그런 일상의 되풀이에 적당히 지겨워하고, 적당히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때문에, 부러지는 분필에 얼토당토 않은 의미까지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아무리 목청을 높여 수업을 해도 나 자신이 신명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호흡이 맞으면 목이 찢어질 것 같이 힘든 날도 수업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성취감 같은 것 때문에 마음이 뿌듯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뭔가 버성거리는 느낌이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또 내가 맡고 있는 교과에 대한 재미도 그렇다. 그저 마지못한 듯 한 시간 그냥저냥 때우고 나면 그뿐인 나날들이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렇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습한 기운은 온통 세상에 가득 내려앉아 마음을 더없이 쓸쓸하게 만들지, 창 밖으로는 빗방울에 젖은 오동나무 잎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는데, 내 목소리는 아이들 곁에 다가가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수업이 끝났는데도 마치 뭐 보고 뭐 안 닦은 기분이다.
나는 책을 덮고, 분필을 챙기고, 천천히 복도로 나선다. 부반장이 일어나 '차렷' 하다가 그런 나를 보고 풀썩 앉아버린다. 인사도 받지 않고 나가버리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창 밖, 빗줄기에 눈길을 주며 천천히 교무실로 향한다. 이층 중간 통로를 통해 본관 건물로 향하는데 갑자기 아이들 소리가 요란하다.
"우와!"
"잡아라."
"이쪽, 이쪽."
"이쪽으로 몰아."
무엇을 좇아 다니는 지 아이들 서넛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린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환상처럼 바라본다. 아직도 내 감정이 아까 수업 시간의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그때, 아이들이 몰던 대상이 바로 내 앞으로 후다닥 날아든다. 자세히 보니 참새 몇 마리다. 비를 피해 열린 창으로 들어온 참새들이, 미처 수업 끝나는 종을 듣지 못했나보다. 그곳이 건물 안 복도라는 것도 모른 채, 참새들은 수업 시간 동안 복도를 배회했을 테고,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로 달려나온 아이들이 그런 참새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심심해서 반 표시 팻말을 툭툭 치기까지 하는 아이들, 멀리서 도움닫기를 해 천장 대들보까지 손닿기 내기를 하는 아이들이 모처럼 만난 재미있는 놀이인 참새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있겠는가.
아이들이 와와 거리며 좇자 참새는 그만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그야말로 우왕좌왕이다. 그 당황하는 참새의 꼴에 더 신이 났는지, 아이들은 더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참새를 몬다.
"이놈들아, 그만두지 못해?"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무르춤한다. 때를 놓칠세라 참새들이 재빨리 창 쪽으로 붙는다. 그러나 참새들은 열린 창을 찾지 못하고 유리창에 부딪치고 만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벽을 향해 날기도 하고, 천장 가까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런 참새를 아쉽다는 듯 바라본다.
'허허, 저거야말로 천장 높은 지 모르는 격이로군. 천정부지(天井不知)란 말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고 만다. 그 사이 참새 한 마리가 드디어 열린 창문을 찾아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자 잇달아 나머지 참새들도 복도로부터 저희들의 하늘로 탈출한다.
"에이."
아이들이 아쉽다는 듯 소리를 지른다. 잠시 동안의 즐거운 놀이가 그것으로 끝난다.
나는 참새가 날아간 창 밖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 잿빛 하늘 너머로 빗줄기만 하염없이 쏟아진다. 아무리 잿빛 하늘이라도 참새들에게는 자유로운 곳이리라. 갇혀 쫒기던 복도보다, 비에 젖은 하늘이 더 자유로울 참새들.
나는 문득 참새를 쫒던 아이들이 모두 학교라는 건물에 갇혀버린 날개를 잃은 새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희들이 쫒는 참새가 바로 자신들이 잃어버린 자유였다는 것을 그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자유로운 참새, 그리고 갇힌 아이들. 저 아이들의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모두 흩어지고, 참새는 날아가 버리고, 젖은 하늘같은 내 마음만이 빗줄기를 따라 툭 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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