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피어난 그 꽃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2> 찔레꽃

등록 2002.07.03 17:10수정 2002.07.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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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찔레꽃

찔레꽃 ⓒ 이종찬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이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팔목 아프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이연실 노래 '찔레꽃')


그래, 참으로 보고 싶다. 이미 11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 옴마…. 온갖 고생 끝에 이제는 조금 편안해지실 때가 되었을 때 오남매와 아부지를 남겨두고 훌쩍 가신 우리 옴마…. 나이 57세에 위암으로 세 차례에 걸친 수술 끝에 시든 찔레꽃처럼 끝내 일어서지 못한 우리 옴마….

지금도 들린다. "남 잠잘 때 다 자고, 남 공부할 때도 그렇게 뛰놀면 커서 무엇이 될래?"라고 우리들을 채근하시던 우리 옴마…. 내가 명절을 쇠고 서울로 올라갈 때 "니 나가다가 혹 동네 노인들 만나면 막걸리 사 드시라고 5천원만 드리거라"시던 우리 옴마…. 창원군 동읍 석산 마을 주남 저수지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묻히신 우리 옴마….

아, 해마다 이맘 때면 찔레꽃 속에 환히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찔레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주시며 "먹어 봐라, 참 달다"라시던 우리 어머니. 아, 찔레꽃을 바라보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이 땅의 어느 어머니인들 다를 수가 있으랴만은 우리 어머니는 찔레의 가시에 찔린 바람마냥 유독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 오남매가 별 탈 없이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지난 6월 28일은 우리 어머니 기일이었다. 그날 우리 오남매는 모두 모여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지금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76살이 되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도 이제 얼마 살지 못하실 거라고 했다. 간암이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그래, 아버지는 창원공단이 형성되면서 그 동안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던 논과 밭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마을마저 잃어버렸다. 마을이 사라지면서 친구마저 모두 잃어버렸다. 새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아버지에게는 그게 낯선 곳이기만 했다. 또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를 한 지 불과 2-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날 이후부터 아버지의 삶은 술 그 자체였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치매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의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치매는 80년대초 이후부터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는 간혹 "인제 전쟁 끝났제"라며 물으시며 긴 한숨을 내쉬곤 하신다. 그래. 어쩌면 아버지는 기억 속에 한국전쟁과 창원공단이 조성된 이런 현실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지난 달 6월 30일, 일요일에 우리 가족 모두는 창원시 동읍 석산 주남저수지 근처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오랫만에 어머니 산소에 가는 길에는 때 늦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나 있었다. 그래. 바로 저 찔레꽃이 우리 어머니 영혼인지도 모른다. 바로 저 찔레꽃이 우리 아버지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어머니 산소로 가는 길에는 찔레꽃만 피어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1년 전 어머니를 묻으러 가는 길에 보았던 바로 그 개망초도 여기저기 하얗게 피어나 있었다. 그랬다. 어머니 산소로 가는 길 옆 모를 낸 논에서는 하얀 왜가리 몇 마리가 그 긴 목을 쭈뼛거리며 모이를 찾고 있었다.

모두가 하얀 색이었다. 찔레꽃도, 개망초도, 왜가리도…. 그래. 아버지의 치매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하얗게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또 세월이 우리들의 기억을 깡그리 흰색으로 칠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얀 찔레꽃을 바라보면 그 하얀 빛깔 속으로 잊혀져간 나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하얀 개망초꽃을 바라보면 그 하얀 빛깔 속으로 떠내려간 우리 고향이 살아 움직인다. 하얀 왜가리를 바라보면 그 하얀 빛깔 속으로 띄워보낸 아버지의 어머니, 어머니의 아버지가 보인다.

우리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피어 있는 하얀 찔레꽃. 찔레꽃은 희다. 그런데 누가 "찔레꽃 붉게 피는 내 고향"이라고 노래 불렀던가. 아마 피에 젖은 찔레꽃,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 피어난 찔레꽃을 그렇게 비유해서 불렀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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