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미래를 향한 인류의 행보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록 2002.07.05 15:41수정 2002.07.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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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이너리티 리포트> 표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표지 ⓒ 반디북

이제는 극장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는 SF영화들. 기묘하게도 그것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마련이다.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려 하거나(매트릭스) 복제인간에 의한 인간정체성의 붕괴(블레이드 러너), 호전적인 외계인의 공격(에일리언), 그리고 과학기술에의 맹신에 의한 문명파괴(아키라)까지. 많은 영화들이 인류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 그럴까. 왜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그리고 개별 인간이 불완전하고 이기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어하기에는 인간의 의식과 육체적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이미 가속적 리턴 법칙에 의해 굉장한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한 과학기술을 인류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다. 한번 시작된 진화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과학기술이 언젠가는 자신의 창조자를 능가해버리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SF영화들은 그러한 인류 종(種) 차원의 불안감을 스크린을 통해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

필립 K. 딕도 인류의 미래가 결코 장밋빛이 아닐 것이라고 예견하는 SF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단편 모음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가 생각하는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8개의 단편들은 저마다 독특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스위블'과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복제인간으로 인한 인간정체성의 붕괴를 그린 '우리라구요!', 지나친 과학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인간존재의 의미를 왜곡시키는지를 고발한 '완벽한 대통령'과 '퍼키 팻의 전성 시대' 등 각 단편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훌륭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제일 관심을 끄는 단편은 책의 전체 타이틀이기도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이다. 이미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제작되어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동명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제목이기도 하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은 마침내 미래에 범죄를 저지르게 될 사람을 미리 밝혀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하여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미래에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라는 죄목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게 된다. 결국, 범죄율 0%의 사회가 성립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범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행복한 사회일까.


작가는 오히려 그런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미래의 범죄자를 예견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예견의 객관성과 절대성을 누가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예방국의 국장인 엔더턴이 오히려 자신이 '미래의 범죄자'로 예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저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기술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테마에 대한 철학적인 고뇌와 통찰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이 단편을 SF문학의 고전으로 승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필립 K.딕이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더욱 기다려지게 된다. 과연 이 영화도 원작의 멋을 잘 살려냈을까. SF라는 껍데기만 차용한 그저그런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그쳐버린 것은 아닐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기다리는 많은 분들께, 먼저 원작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원작을 먼저 읽음으로써 작가가 작품 속에 담아내려 했던 많은 생각들과 고뇌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느낌'들은 곧 개봉할 영화를 비판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멋진 작품이 그저 "재미있는 여름 영화"로 제작되는 데에 그쳤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그저 "재밌는 여름 영화"로 보아버리고 만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현대문학),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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