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는 장사는 하기 싫습니다

체벌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등록 2002.07.06 16:08수정 2002.07.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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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급 조회를 앞두고 저는 잠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각이 잦은 아이들을 따끔한 매로 다스릴 것인지, 아니면 대화로 풀어갈 것인지, 그 선택의 기로에서 유명한 <햄릿>의 대사 한 구절이 윤색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1분이냐 10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1분은 매를 의미하고 10분은 대화를 의미합니다. 올 해 담임을 맡은 뒤로 아직까지 매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1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매의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반 아이들도 효력이 없는 지겨운 잔소리나 설교보다는 화끈한 매로 다스려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눈치입니다. 그래도 저는 무슨 고집인지 끝내 1분이 아닌 10분을 선택하고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사랑이 무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사랑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듯,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이 쏟아집니다.
"서로 아껴주는 거요."
"필(느낌)이 통하는 거요."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거요."
"서로 책임을 지는 거요."

아이들과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들 말하듯 그저 생각이 없는 철부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무작위로 터져 나온 사랑에 대한 정의가 그럴 듯 합니다. 더욱이 책임을 지는 것이 사랑이라니. 그런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다니.

"맞습니다. 서로 아껴주고, 느낌이 통하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그리고 서로를 책임을 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쯤해서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집니다. 한참 옆 아이와 딴 짓을 하다가 뒤늦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덩달아 진지해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주제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상황은 백 팔십도 달라졌겠지만.


"노르웨이 작가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노라인데, 그녀는 어느 날 가출을 결심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통보합니다. 노라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노라를 종달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런 호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감정적으로만 사랑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아내를 책임질 줄 아는 건실한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를 인형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 노라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은 아내 노라를 자기 삶의 주체로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말한 다음 저는 좌중을 한 번 둘러봅니다. 벌써 몇 아이는 흥미가 없는지 시들한 표정입니다. 저는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리고 잡담을 하고 있는 아이의 자리로 걸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말을 계속합니다.

"요즘 지각생들이 많아졌는데 그 이유는 선생님이 매를 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왜 매를 들지 않는 것일까요? 매를 때려서 지각생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매가 한 일이지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과 의지로 말입니다. 무능 교사라는 오해를 받더라도 저는 그때까지 여러분을 기다려 줄 생각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 용어로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학교의 정규 수업이 형식적 교육과정이라면,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소외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따뜻한 눈빛이나 일탈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바른 가르침 같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교사에게는 곧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웬만해서는 체벌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체벌을 자주 하다보면 모처럼 얻은 교육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없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손해보는 장사는 하기 싫습니다.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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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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