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중계, 그 현장에 서다

HBS(Host Broadcast Services) 자원봉사 체험기

등록 2002.07.12 19:49수정 2002.07.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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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소영

2002 한일월드컵은 이전의 여타 월드컵과 달리 자국 방송사가 아닌 Host Broadcast Services(이하 HBS)에 의해 제작 중계되었다. HBS는 FIFA로부터 2002, 2006년 월드컵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독점적으로 제작하도록 위임받아 설립되었다.

HBS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방송 인력들을 도울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한국과 일본 현지의 대학생들로 구성하였는데, 운 좋게도 필자 역시 HBS Trainee(수원/울산 카메라팀)로서 2002 한일 월드컵을 맞이하였다.

울산, 수원 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는 총 7경기였으며, 시험 방송을 위해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 중계를 준비했던 것까지 포함한다면 8경기를 치른 셈이다. 방송 제작에 있어서 주요 장비라 할 수 있는 카메라/오디오의 설치와 관리를 돕는 것이 카메라/오디오 Trainee의 역할이었다.

Trainee는 울산/수원 팀의 경우, 카메라 여섯 명, 오디오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다. 경기장 전체에 설치되어야 하는 방송 장비의 양을 생각한다면 많지 않은 인원이다. 물론 카메라 오디오 모두 각각 담당자가 있어서 기자재 점검과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그들이 직접 하였다.

매 경기마다 경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우리들의 일손은 바빠졌다. 경기장에는 19대의 카메라가 설치됐는데(8강전부터는 23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설치해야했던 카메라는 12대 정도였다. 나머지 카메라는 전문 인력의 손으로 설치해야만 하는 것들로 크레인 카메라나 경기장 전체를 비추는 카메라 등이 있다.

카메라 한 대에 해당하는 기자재 상자만 예닐곱개에 다다르기에 카메라 설치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재 보호를 위한 상자는 철재로 만들어져 그 무게만 해도 상당한데, 그 속에 들어 있는 카메라 부품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상당수는 두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설치해야 하는 열두 대의 카메라 중 일부는 객석의 카메라 플랫폼에 위치하며, 나머지는 그라운드에 위치했다. 울산/수원 경기장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객석에 위치한 카메라 플랫폼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다. 가파른 계단을 무거운 기자재를 들고 오르내리려니 건장한 남자들이라 할지라도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플랫폼까지 카메라의 부분 부분들을 모두 가져오면 그제서야 비로소 조립할 수 있다. 기본적인 조립을 마친 후, 수평을 맞추고 모니터 화면을 통해 기본적인 Zoom과 Focus를 확인하고 덮개로 덮고 나서야 비로소 카메라 한 대의 설치를 마친 셈이다.

한번 설치된 카메라는 그 경기장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 세워두었으며 경기당일까지 거의 매일같이 카메라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따라서 숙소에서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하는 첫번째 일은 카메라에 씌워둔 덮개를 걷어내고 카메라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경기 당일에는 각각의 카메라를 담당할 카메라맨이 자신의 카메라의 상태를 최종 확인하여 중계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경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스테디 카메라와 크레인 카메라의 케이블을 정리하여 카메라나 카메라맨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였다. 나는 스테디 카메라 담당이었는데, 스테디 카메라맨은 경기가 시작하면 적어도 45분은 계속해서 카메라를 메고 촬영을 해야하는데다 공놀림에 따라 계속해서 이동하기 때문에 케이블을 밟아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아울러 스테디 카메라의 모니터 전력으로 사용되는 배터리 방전시 교체할 배터리를 준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세계 유명 선수들이 뛰고 있는 그라운드 한 켠에 서서 직접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선수들의 입장이나 경기 종료 후 기쁨을 나누는 순간에 그들의 모습을 현장감있게 담아내고자 움직이는 스테디 카메라와 함께 잔디밭을 누비는 것은 그야말로 설레임이었다.

행여나 선수들이나 선수들과 함께 입장했던 아이들이 뛰어가다 케이블에 넘어지는 일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레 케이블을 만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감격스러웠다.

경기가 끝났다고 해서, 텔레비전에서 더 이상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기를 마친 후, 선수들이 퇴장하고 객석이 텅 비었을 때 우리는 쉼없이 경기장을 누볐다.

사용한 케이블을 8자로 감아서 한쪽에 정리해두고, 각각의 카메라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덮개를 씌웠다. 경기장에서의 일을 마무리짓고 방송단지로 돌아오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넉넉한 음식들로 잘 차려진 파티였다. 매 경기를 마치면 변함없이 작은 파티가 준비되었는데, 이는 경기 내내 수고한 제작팀을 위한 배려였다.

Trainee로 일하는 동안 HD방식으로 제작하고자 나온 방송3사의 기술진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 바로 일만큼이나 사람을 배려하는 외국인들의 작업방식이었다. 우리 나라 방송사의 경우에는 대개 중계를 나가면 일부터 하고 일이 끝나야 중계차 그늘 아래서 밥을 때우는 식인 반면, 외국인들은 일단 스낵카부터 열고 천막부터 쳐서 쉴 공간을 만들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놀고 쉬는 것에만 집중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일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일하며, 철저하다. 카메라를 이동하면서 주위 케이블 하나라도 밟을까 살피면서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이 그들이 일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도, 그래서 가족들이 그립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웃으며 말했다. 내 일을 즐기고 있다고.

월드컵 한 달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거르지 않고 먹었으며, 짬짬이 간식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줄었을 만큼 생각했던 것보다 일은 힘들었다. 경기장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으며, 카메라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해야 했고, 내 힘으로 들 수 없는 장비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나도 함께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대다수의 방송기술진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그토록 신바람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각국 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잘해서도, 붉은 악마의 열렬한 응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 과감하게 덧붙이고 싶다. 2002 한일 월드컵 중계를 위해 각국에서 모였던 방송 기술진들과 이들과 함께 했던 우리 Trainee들의 열정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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