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무서울까

이형덕의 <전원일기>

등록 2002.07.28 12:15수정 2002.07.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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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마을 불당골 후배가 놀러왔는데, 안색이 창백하고 얼이 빠진 듯했습니다. 물으니, 아침에 집 부근에서 뱀을 보았다는 겁니다. 뱀을 보고 놀라기야 하겠지만 운전도 제대로 못해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왔다니 그 정도가 심한 편이었습니다. 그이의 말을 빌자면, "뱀을 보면 온몸의 털들이 모두 곤두서고, 소름이 돋으며 온몸의 기운이 쫘악 빠진다"는 겁니다.


뱀을 무서워하는 것이 어찌 그이뿐이겠습니까. 아침에 마당으로 나가다 현관 앞에 도아리를 튼 뱀에 기겁을 하여 이사를 간 아주머니도 있고, 저녁 늦게 빨래를 걷으러 갔다가 잔디밭의 뱀을 밟아 발을 물려 입원을 한 이도 있습니다. 처음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뱀을 만나고나면 길가의 나뭇가지들마다 죄다 뱀으로 보인다는 이도 있으니, 어려서부터 흔히 뱀을 보며 자란 시골분들과는 달리 그 두려움이 클 법합니다.

자동차에 치어 죽은 도로 위의 독사.
자동차에 치어 죽은 도로 위의 독사.이형덕
뱀은 정말 무서운 괴물일까요.
성경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뱀은 사람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린 이야기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뱀은 벌로 평생을 배로 땅을 기며, 흙을 먹게 되며, 사람들 눈에 띄면 돌멩이로 머리가 깨지게 되며, 아울러 소리없이 기어가 사람들 발꿈치를 물게 된다고 하였으니, 뱀과 사람은 태초부터 앙숙지간이 된 셈입니다.

뱀은 우선 소리가 없고, 독을 지니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참 위험스런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그 독이란 것도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니, 사람이 모르고 그 꼬리를 밟지 않는 이상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건 아니지요.

시골 생활을 하면서 뱀과 마주치는 경험은 드물지 않은 법인데, 도시에서 살다 온 분들 가운데서도 여자분들은 이러한 경험에 아연실색하게 마련이지요.

예전에 시골에서는 뱀이야 풀섶이나 논두렁에서 개구리나 메뚜기처럼 흔히 마주치는 존재로 여겨졌고, 흙덩이나 던지면 제풀에 물러나 사라지는 얌전이로 알고 지냈지만, 요즘처럼 환경이 악화되고, 농약 범벅이로 만드는 논밭에서는 뱀 보기도 드물게 되었지요.


이러다 보니 모처럼 꽃뱀이라도 한 마디 마주치면 온 집안이 시끄럽게 야단법석이 일곤 하는데, 제가 사는 지둔리도 처음 집터를 닦을 때부터 검고 붉은 무늬가 선명한 능구렁이 새끼부터 갈색의 살모사까지 보아 왔지요.

그런데 걱정과 달리 막상 사람이 터를 잡고 살다 보니, 그 후로 뱀을 보기 어려웠는데, 집 주변의 풀들이 무성해지고, 장마가 지나고 나니 뱀들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벌겋게 벗겨진 마당이 들풀로 제법 수북해지니 메뚜기들이 늘고, 그를 따라 개구리들도 담벼락까지 붙어 지내니 자연히 으슥한 숲 속에 숨어 지내던 뱀들이 집 가까이 나타난 듯합니다.

며칠 전 닭장 문 밑으로 무슨 끈 같은 게 떨어져 있어서 무언가 들여다 보니, 갈색빛을 띤 뱀이었습니다. 삼각형의 머리가 독사임을 보여 줍니다. 대략 30센티 정도의 몸통이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것이 제법 큰 뱀이었습니다. 인기척이 나자 뱀은 꼬리가 빠지게 풀섶을 헤치고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걱정이 됩니다. 닭들도 걱정이고, 수시로 모이를 주러 드나드는 일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뒤로 날이 어두워지면서 컴컴한 마당을 걸을 때도 전과 달리 발밑이 섬뜩해지고, 조심스러워졌지요.

뱀은 조금 습한 그늘진 곳의 돌틈이나 야산 자락에 살며 쥐나 개구리를 잡아 먹고 사는데, 율목이나 꽃뱀, 능사처럼 독이 없는 것은 별 위험이 없지만 독사나 살모사 같은 것은 참 위험한 존재이지요. 뱀은 대체로 뛰어난 후각과 청각 이외에 열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 공기를 통해 전해지는 생명체의 체온을 감지한다고 합니다.

이런 관계로 뱀이 사람 눈에 띄기는 쉽지 않은데, 뱀들은 대체로 주변의 환경에 가까운 보호색을 띠고 있어, 일단은 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숨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럴 때 미처 뱀을 보지 못하고 밟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뱀이 미리 몸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뱀의 독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다리도 없고, 날개도 없이 오로지 얇은 껍질만 지닌 뱀만큼 약한 존재도 드물지요. 모르긴 몰라도 뱀이 사람과 마주치면 사람보다 뱀이 더 놀라고, 두려움에 빠지는 듯합니다.

뱀은 대개 야산 웃자락 돌틈에 보드랍고 마른 흙 속에 구멍을 짓고 겨울잠을 잔 후 봄이 되면 서서히 먹이가 많은 습지나 개울가로 내려온답니다. 이 점을 이용해 땅꾼들은 가을이면 산으로 올라가는 뱀들을 잡기 위해 산 전체에 그물망을 치는데, 뱀은 미끄러운 그물망을 넘지 못하고 산 주위만 맴돌다가 지쳐서 그 밑에 있다가 잡혀간다니,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뱀의 습성도 특이합니다.

옛부터 몸보신에 좋다는 바람에 대규모의 뱀장사들이 온산을 그물로 두르고, 포크레인까지 동원하여 겨울잠을 자는 뱀들을 훑어가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시골에서 뱀에 놀라는 일도 아주 오래된 추억이 될 판입니다.

뱀이 드물어지면서, 시골 병원이나 보건소마다 비치해 두던 해독제를 요즘은 가져다 놓지 않아 더욱 위험한 일이라 합니다. 뱀에게 물렸을 때는 가능하면 문 뱀을 잡아 어떤 종류의 독을 가진 뱀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녀석의 빛깔이나 체형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산중에서 뱀에게 물렸을 때는 우선 상처에서 독을 빨아내야 하는데, 이럴 때 입안이 헐거나, 위나 식도에 염증이 있는 사람은 위험하다고 하니 유의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뱀의 독니가 들어간 곳을 최대한 크게 찢어 피와 함께 독을 빼내고, 심장 쪽으로 가는 부위를 압박하여 독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최대한 신속히 인근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민간에서는 뱀의 천적인 돼지의 비계나, 간으로 뱀의 독을 빨아내게 했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병원행이 될 것입니다. 산에 자주 가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을 보고 재빨리 몸을 숨기는 뱀은 대개 독이 없는 것이고, 인기척이 나도 여유를 부리는 녀석들은 독을 지닌 것이라고 합니다.

뱀의 독이 가장 위험한 시기는 메밀꽃이 필 무렵이라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9월경이 그렇다 하니, 한창 산밤 주으러 다닐 무렵과 공교롭게 겹치는 시기이군요. 이제 밤이나 도토리, 버섯을 따러 가을 산을 찾는 분들이 많아질 텐데, 그럴 경우에는 발목까지 오르는 구두나 장화를 신는 것이 좋고, 반드시 지팡이나 나뭇가지를 앞세워 풀섶을 헤치고 다녀야 합니다. 특히 청각과 후각이 발달한 뱀에게 미리 피할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뱀은 쇳소리를 싫어한다 하니 지팡이에 조그만 종이라도 달아 딸랑거리며 숲을 다니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집 주변에는 뱀이 싫어한다는 백반 - 약국에 가면 명반이라고 팝니다 - 이나 담배꽁초를 모아 그 우려낸 물을 뿌리기도 하고, 소금을 뿌려 두어도 좋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냄새가 강한 금잔화나 공작초 같은 꽃들을 심으면 뱀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카센터에서 쓰고 남은 엔진 폐오일이나 석유를 뿌려 놓기도 한다는데, 그 경우 토양의 오염과 악취 문제가 있으니 권할 만한 방법은 못됩니다.

지난 번에는 마당에 거위를 풀어 놓았더니, 이 녀석이 뱀들을 잡았더군요. 대체로 집 주변의 풀들을 뽑고, 그늘지거나 습한 곳이 없도록 볕 바르게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전통한옥들은 대개 집 가까이 나무나 풀을 심지 않고, 마당을 잔디로 덮는 대신 배수가 용이한 마사토로 덮어 벌레나 뱀의 접근을 피했더군요. 잔디와 정원을 가꾸는 것도 좋지만 이럴 경우, 가능하면 가옥과 일정한 거리를 떼고, 특히 사람이 자주 딛고 다니는 곳은 보도 블록이나 돌로 풀섶에 덮이지 않게 해 둘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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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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