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상황서도 상대입장 이해해줘야"

[한 전경이 보내온 편지] 27일 '종로 집회' 불상사를 보고

등록 2002.07.29 12:47수정 2002.07.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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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제5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행사후 집회 참가자들의 거리행진 도중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흉기나 다름없는 알루미늄 방패를 휘두르는 등 거칠게 대응했으며, 심지어 현장취재 기자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러 기자 여러 명이 현장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에 보도된 관련 내용을 보고 한 현역 전경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그는 경찰 지휘부가 흉기나 다름없는 알루미늄 방패를 사용토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집회현장에서 마주치는, 우리 형제인 전경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신상을 모두 밝혔으나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그의 전경 기수만을 공개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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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7월 2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제5차 범국민대회'. 경찰이 방패로 시위자를 '공격'하고 있다.

7월 2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제5차 범국민대회'. 경찰이 방패로 시위자를 '공격'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는 현재 전투경찰로 복무하고 있으며, 육군으로 치면 병장계급을 달기 3일 전인 전투경찰 2409기입니다.

의경으로 구성된 기동대는 무궁화 봉오리 한 개, 전투경찰은 육군과 같이 양 어깨에 견장이 있습니다. 작대기와 그 위에 꽃봉오리 한 개.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사진을 보니 기동대 및 전경대가 모두 집회현장에 나간 거 같습니다. 참고로 집회를 '시위'라고 하지 맙시다. 우리나라는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습니다. 시위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언론이 (자의적으로) 써온 용어로, 문맥상 그 자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경찰개혁을 부르짖으며 집회에 대한 획기적인 획이 바로 '신시위진압대책'입니다. 서로 합의된 집회에 대해서는 안전한 집회가 되도록 절대 보장한다는 것과 우리나라 최초로 폴리스라인과 여경을 1선에 배치한 것으로 집회관리는 시작됩니다.

아울러 집회 장소에서 특정장소까지 인도가 아닌, 1차선을 내주며 안전한 시가행진까지 보장해주는 것으로 관할 경찰서장이 나와서 제일 선두에서 시가행진을 에스코트한 것은 이무영 경찰청장 때부터 처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전경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러한 "신 시위집회 관리대책"은 무최루탄 원칙과 함께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칭찬해주고 싶답니다. 그 이유는 대규모 집회를 제외한 서울 이남의 도시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집회를 안내하고 대기하는 수준에서 무사히 끝나기 때문입니다.


서울 이남에서 근무하고 있는 제가 겪은 가장 심한 대치사항은 방패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당기는 그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짬밥'(복무경력)이 적을 때는 양쪽에서 밀어 방패든 이를 받치며 함께 부웅 떠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보니 '폴리스 라인'과 여경들이 1선에 섰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사건의 발단은 서로가 어떤 자세로 상대방을 신뢰하는가입니다. 바로 오늘같은 모습에서 그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자세한 사건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이무영 경찰청장이 물러나며 새로운 청장이 들어와서 시위·집회에 관해 어느 정도 수정이 되었다고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여중생 사망 관련 미국 규탄집회'에서 또 한 번 경찰 진압에 있어서의 불상사가 터진 것입니다.

현재 경찰측에서도 집회에 관해서는 절대로 먼저 시민을 향해 진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집회가 되도록 관리 유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강제적인 진압으로 그 동안 부천과 같은 몇 차례 불상사가 있던 점도 인정합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발전을 향한 변화의 촉매제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경들이 시민을 향해 90도 각도로 방패를 세워 공격하는 모습의 사진의 장면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동대 전경대가 집회 관련 훈련시 "공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의경 기동대 전경대의 집회관리 훈련은 어디까지나 방어와 저지선을 지키는 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훈련을 직접한 제 경험으로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의 전의경들의 폭력적 저지선 막기는 개인의 판단 잘못과 관할 중대의 지휘자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지휘자는 출동 전 사전교양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a 날을 세운 방패로 시위자를 공격하는 경찰.

날을 세운 방패로 시위자를 공격하는 경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진에 보이는 방패로 공격적 위협을 가한 전경은 분명 군생활을 꽤 한 고참으로 보입니다. 보통 군에 갔다온 이들도 아시겠지만 어리버리한 쫄병을 가장 일선에 놓는 곳은 없으니까요.

분명 그 친구 역시 갓 기동대나 전경대에 들어왔을 때는 이번과 같은 대규모 집회에 출동했을시 겁에 질려 멍했을 겁니다. 심지어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라도 벌어졌다면 고참들 눈치보며 울먹울먹 울었을테지요.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랬고 제 동기들이 다 그랬습니다. 일반 시민들과 대치되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을 접해보지 못하는 분들은 그 설명하기 힘든 알싸한 아픔을 알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 초임병이 점차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단순화되고 출동에 익숙해지다보면 이내 초심은 없어지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앞의 시민들이 짜증으로 보이게 됩니다. 100%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은 적어도 50% 이상은 그리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병폐이자 아픔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 얼마나 조직의 힘으로 인해 변해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위 내용처럼 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자신이 왜 집회 현장에 나와서 대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며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신참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려는 고참들도 많다는 것 또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폭력적 행위를 보인 사진의 친구들은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힘겨움을 잘못 분출한 것이라 봅니다. 분명히 잘못된 행위입니다.

알루미늄 방패는 가히 위협적입니다. 무게 역시 보기 좋고 깔끔한 투명 플라스틱보다 서너 배는 더 나가며 주위의 테두리가 닳은 알루미늄 방패는 잘못하면 흉기가 되기 쉽다는 점 저 역시 인정합니다.

집회 관련 훈련을 하는 전의경 역시 방패의 무게를 무시하지 못하며 불평할 정도니까요. 육군을 나온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방패의 무게는 소총보다 더 무겁습니다.

경찰 지휘부에서 왜 알루미늄 방패로 교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나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경찰이 함께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면 재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현장에는 없었으나 다치신 분들께 전경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현장에서 애쓴 전의경들 이 더운 날 진압복에 헬멧까지 써서 분명 근무경력이 짧은 몇몇 신참들은 쓰러진 이도 있을 거라 봅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군생활 의식 있는 개인으로 잘 해나가길 바래봅니다. 아울러 어느 정도 중고참이 된 친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왜 우리 사회에서 군복무라는 조건으로 우리 가족인 시민들과 대치해야 하는지를 반문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건과 이 글을 접하게 되는 일반시민들께 이번 사건을 접하시고 앞으로 집회 관련 경찰의 위치가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며 시민들은 또한 어떤 자세를 임해야 하는지를 다 같이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서로가 적이 아니듯이 우리는 함께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아니겠습니까. 서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판과 격려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 말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서로간의 불신의 벽이 커지는 것이 아닌 잘잘못을 가리며 한발 더 다가가며 서로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토론의 장의 되길 바랍니다.

대치상황이 끝나고 밖에 나가면 다같이 우리 부모고 할머니 할아버지고 옆집 아저씨고 친구들입니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라면 다같이 서로를 신뢰하며 집회를 하고 집회를 보장, 안전한 집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무조건 대치상황에서 욕하지 말고 서로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때까지 다 같이 노력했으면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일선 집회현장에 나가는 (전투)경찰이 직업경찰로 바뀌길 바라며 제대 후에 제가 집회할 때 앞에 있는 전의경들과 음료수 함께 나눠마실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2002.7.29

전경2409기 익명의 한 대원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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