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에 서야하는 내가 서글프다"

기동중대 지휘관이 본 시위현장

등록 2002.07.30 03:21수정 2002.08.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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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행진 종료지점에서 폴리스라인을 들고 있는 교통경찰과 여경 이들은 곧 시위대에 떠밀려 기동대원들과 교체된다.

행진 종료지점에서 폴리스라인을 들고 있는 교통경찰과 여경 이들은 곧 시위대에 떠밀려 기동대원들과 교체된다. ⓒ 이동환

먼저 고 심미선, 신효순 양의 명복을 빕니다. 미군의 어이없는 과실과 성의없는 조치에 '대~한민국'인으로서 분노합니다. 이번 7월 27일의 미군장갑차 범국민대회(이하 대회)에서의 <오마이뉴스> 보도와 그 외 많은 시민기자의 전언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열어준 다양한 시각의 쌍방향성을 존중합니다. 그 공간에 담긴 다양한 직업이나 계층으로 인하여 제도권 언론보다는 실체적 진실에 훨씬 가깝게 다가감을 믿습니다. 그 실체적 진실을 위하여 여타 시민기자들이 잡은 진실에 제가 취재한 진실을 보탭니다. 독자는 좀더 조밀하게 모인 정보를 통해 그 진실을 얻어야 하기에….

기동중대 현장 지휘관의 한 사람이자 시민기자로서 경험한 사실을 사진과 함께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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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 속에 진행된 대회는 오후 5시 57분경 종묘공원 행사를 마감하고, 종로 2가 '젊음의 거리'까지의 2개 차로를 이용하여 행진을 했습니다.

대회 주최측이 신고한 행진 구간은 명동성당까지도 아니고, 미대사관까지도 아닌 종로 2가 YMCA 건너편에 있는 젊음의 거리란 골목길 앞까지였습니다.

무전에서는 행진이 시작되기 전부터 계속, 행진이 종료되는 지점에서 종로 1가쪽으로 진출하려는 몸싸움을 하겠다고 주최측에서 알려왔다고 나왔습니다. 실제로 종묘공원 안의 등나무 밑에는 마스크를 소지한 학생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행진이 시작되자 우리 중대를 포함한 전 기동대는 시위대열에서 약 20-30미터 앞서서 인도로 탑골공원으로 1차 이동하였다가, 시위대가 교통경찰과 여경으로만 구성된 폴리스 라인의 도움을 받아 횡단보도를 통해 길 건너편으로 방향을 틀자 YMCA 앞으로 이동하여 대기하였습니다.


신고한 지점을 지나 종로 1가쪽으로 진출하겠다는 주최측의 선전에 대비하여 종로 1가 쪽에는 1개 중대가 지키고 있었고, 젊음의거리로 꺾어지는 지점에는 하늘색 정복의 여경과 교통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a 시위대의 몸싸움이 시작되자 뒤로 피하는 교통경찰과 여경 오리걸음을 걷던 시위대가 도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기동대 뒤로 피했다.

시위대의 몸싸움이 시작되자 뒤로 피하는 교통경찰과 여경 오리걸음을 걷던 시위대가 도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기동대 뒤로 피했다. ⓒ 이동환

오후 6시 30분경 모든 행진은 종료되었습니다. 이때 한국청년단체 100여명이 행진대열 선두로 이동하였고, 뒤이어 마스크를 쓴 일군의 학생들이 뒤쪽에서 우르르 뛰어서 시위대 선두에 오더니 오리걸음으로 종로 1가 쪽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앞에 있던 중대가 방패를 땅에 내리고 이를 막자, 학생들은 폴리스라인을 들고 있던 교통경찰과 여경쪽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경들과 교통경찰들이 쫓겨 기동대 뒤로 피하는 사이, 집행부 뒤쪽에 있던 시위대들이 행진 차로를 벗어나 차로를 점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a 지나가는 버스를 가로막고 차도를 점거하는 시위대 원래 행진대형으로 합류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우리 중대의 방패를 빼앗아 되던지고 있다.

지나가는 버스를 가로막고 차도를 점거하는 시위대 원래 행진대형으로 합류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우리 중대의 방패를 빼앗아 되던지고 있다. ⓒ 이동환

건너편에 있던 기동중대들이 교통소통을 확보하고 다시 원래의 시위대열로 차도점거 시위대를 합류시키기 위해 뛰어갔고, 우리 중대는 시위대에 의해 정지된 버스 안쪽으로 종로 3가 방향으로 시위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버스 앞으로는 이미 중앙선까지 점거당하였고, 시위대 후미는 벌써 전 차로를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위대열로 합류시키려는 기동대원과 시위대의 충돌은 여기저기서 발견되었습니다.

a 끝이 갈라진 대나무로 내려치는 시위대 지난 농민대회때는 이런 대나무 끝에 눈이 찔려 실명한 대원도 있다

끝이 갈라진 대나무로 내려치는 시위대 지난 농민대회때는 이런 대나무 끝에 눈이 찔려 실명한 대원도 있다 ⓒ 이동환

방패를 잡아 당기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동대원들은 방패를 잡은 채 시위대 속으로 끌려들어갔고 어느 대원은 이미 장비를 빼앗긴채 시위대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말려주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 투입된 옆 중대인 32중대에서는 코뼈가 내려앉는 중상을 당해 후송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중대도 빼앗긴 방패 하나를 시위대가 다시 우리를 향해 던졌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a 장대와 각목으로 기동대원들을 공격하는 시위대 깃발을 꽂은 장대는 곧잘 공격용으로 쓰인다.

장대와 각목으로 기동대원들을 공격하는 시위대 깃발을 꽂은 장대는 곧잘 공격용으로 쓰인다. ⓒ 이동환

겨우 2열로, 시위대열을 이탈하여 도로를 점거하려는 시위대를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대는 밀리는 중대 뒤에서 받치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광교 등 멀리 떨어진 중대들이 속속 충돌 지점으로 집결되었습니다.

경찰과 시위대가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참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몸싸움의 시작은 그냥 미는 정도가 아니라, 우선은 대원들의 장비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군에 다녀온 분들은 알겠지만 대원들에게 장비는 나름대로 자신의 신체만큼이나 소중합니다. 방석모는 쉽게 벗겨지고 앞에 방패를 든 대원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대원들이 대신 잡아줍니다. 그러다 보면 손이 대열 밖으로 나가게 되고 이 손을 시위대들이 잡아서 끕니다. 실랑이가 벌어지다 보면 꼭 돌발적으로 발길질이 오갑니다.

a 몸싸움의 경계선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를 원래 대형으로 합류시켜 보려 하나 역부족이다.

몸싸움의 경계선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를 원래 대형으로 합류시켜 보려 하나 역부족이다. ⓒ 이동환

어느 한때는 시위대가 방패에 발길질을 하든 각목으로 때리든 무조건 자세를 낮추어 버티기만 하던 '인내 진압'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군복무중이라고 하지만 대원들에게 그런 굴욕과 피해를 감수하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몸싸움은 분명한 폭행이고 불법의 획책입니다.

저 역시 그런 몸싸움은 받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나서서 설득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저마저 공격을 당하여 어깨와 팔은 늘 타박상과 찰과상을 당합니다. 팔과 목에 상처가 나면 그 쓰라림보다는 혹시 감염이라도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시위대는 대부분 그런 것에 항의를 하면 자신들의 분노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대한민국 경찰은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퍼붓습니다. 욕설은 기본입니다. 무조건 아주 심한 욕부터 하는 시위대가 적지 않습니다.

국가의 녹을 먹는 신분으로 그런 화풀이 대상이라도 되어주어 무엇이 변한다면 보람이라도 갖겠지만,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 제 아이들을 아무 말없이 꼬옥 안습니다. 이번 미군 장갑차사건이 터졌을 때도 애석한 일이고 같이 분노했지만, 그 생각의 꼬리는 그 갈등의 전면에 또 내가 서야 하는구나 하는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a 방패 너머로 방석모를 잡으려는 시위대. 하지만 말리는 시위대도 있다.

방패 너머로 방석모를 잡으려는 시위대. 하지만 말리는 시위대도 있다. ⓒ 이동환

시위만 있으면 정말 법에 정해진 대로만 시위대가 행사를 마쳐주길 마음 속으로 얼마나 비는지 모릅니다. 작년 5월 1일의 경찰청장에 대한 공개서한도 그런 마음으로 작성했고, 올해 5월 1일 노동절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피로 얼룩졌지만 대~한민국만큼은 정말 아무 일 없이 진행되었음에 감격하여 속으로 운 적도 있습니다.

아주 가끔은 시위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 국민에게 호소를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우리 경찰하고 충돌을 일으켜서 그것을 매개로 언론매체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지 의심스러운 집회시위도 있었습니다. 그런 조짐은 시위대의 일부가 얼굴을 가리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들을 시위대 전면에 내세울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느 소속인지 모르지만, 대학생들이 전면에 복면을 하거나 마스크를 하고 나타나는 날은 어김없이 충돌이 생깁니다. 아예 대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면 시민들이 질책하여 쉽게 해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노동절을 전후한 이틀 동안 동국대 앞 사거리를 돌, 각목, 쇠파이프, 화염병을 들고 점거하였으나, 기동대원들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고, 교통체증에 화가 난 시민들이 교통경찰관과 합세하여 학생들을 물러나게 한 적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주장은 아무 것도 없었고 오로지 '화염병 재등장'이란 그 다음날 조간신문의 기사를 위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시위였습니다.

a 기동대원을 끌고간 시위대 시위대 전면에서 몸싸움도중 기동대원이 장비를 빼앗기고 끌려가고 있다.

기동대원을 끌고간 시위대 시위대 전면에서 몸싸움도중 기동대원이 장비를 빼앗기고 끌려가고 있다. ⓒ 이동환

이러한 실상은 모대학 학생회 소속 방송국일을 하는 학생 하나가 시위에 대한 다큐를 만들겠다고 며칠간 시위현장을 우리 경찰쪽에서 촬영하고 난 후 털어놓은 소감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위대쪽에서 보는 것하고 경찰쪽에서 보는 것하고 너무 큰 차이가 나서 당혹스럽다고 하더군요. 늘 학교 선배들이 전하던 것하고는 너무나 다르다고 하더군요.

오늘 모 인터넷 기자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이번 사건 중의 한 사람이지요. 그 분은 늘 반대편에 서 있지만,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통해서인지 가끔씩 의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제가 본 것이나 그 분이 본 것이나 모두가 사실입니다. 지금의 집시법이나 장비로는 위법상황이 벌어지면 참으로 곤란합니다. 충돌은 반드시 있게 되고 그 충돌속에 애꿎은 시민들이나 그 시민들의 아들, 조카, 형, 동생이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이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런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까? 말을 아예 막거나 방해하는 시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경찰 경비 용어중에 원천봉쇄란 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현행 집시법은 어떤 집회든 신고만 하면 허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실업자가 적지 않게 있는 종묘공원에서 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집회도 열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주최측이 능력만 된다면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대형 확성기로 노래만 틀어놓고 시위를 하더라도 아무런 제재방법이 없는 집시법입니다.

한 차선을 점거하고 행진해도 충분한 인원인데도 전차선을 다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고, 그 차선이 많을수록 주최측의 힘이 과시되는 것으로 아는 시위대도 많습니다. 인도로 차분하게 시민들과 접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은 시위도 차도를 요구합니다. 불과 50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차량통제를 받으면서 행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a 몸싸움중 방패를 빼앗으려는 시위대와 뺏기지 않으려는 기동대원

몸싸움중 방패를 빼앗으려는 시위대와 뺏기지 않으려는 기동대원 ⓒ 이동환

여하튼 이번 사건은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방패를 세우거나 휘두르는 것은 지침위반입니다. 앞으로 그대로 밀거나 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언론사 기자든 시민기자든 시위대든 경찰이든 사진을 찍거나 촬영하는 것은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린치는 불법입니다. 시위 주최자나 질서유지인은 정확한 정보를 시위대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위질서 유지의 일차적 책임은 명백히 그들에게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의 등을 떠밀어 곤란에 처하게 하는 모든 사람을 싫어합니다. 노약자를 앞세워 공권력과의 충돌을 야기하는 사람의 양심을 의심합니다. 특히 여자분들을 방패 앞에 서게 하는 시위대나 어린아이를 앞세우고 뒤에서 밀어대는 부모들에 대해서는 분노합니다.

새벽이 밝아오는군요. 정말 좋은 세상 맞이했으면 합니다. 십수년의 경찰생활에서 그래도 변해가는 세상에 의미를 찾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 편으로는 김시연/권우성 기자의 기사에 대한 보충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앞 부분은 팩트와 정황을 그대로 촬영한 사진을 덧붙였으니, 같이 읽힐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에 게재한 사진은 모두 오후 6시 50분경 전의 상황입니다. 김시연/권우성, 김태섭님의 사진들은 그 이후에 촬영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 편으로는 김시연/권우성 기자의 기사에 대한 보충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앞 부분은 팩트와 정황을 그대로 촬영한 사진을 덧붙였으니, 같이 읽힐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에 게재한 사진은 모두 오후 6시 50분경 전의 상황입니다. 김시연/권우성, 김태섭님의 사진들은 그 이후에 촬영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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