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시민기자 다음은 영화감독?

[뉴스게릴라가 만난 뉴스게릴라-3] '취재하는 경찰관' 이동환씨

등록 2003.12.10 01:44수정 2003.12.1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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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오후 6시23분, 오마이뉴스에 3만번째 뉴스게릴라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자축하며 <뉴스게릴라 3만돌파 기념 이벤트>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벤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뉴스게릴라가 만난 뉴스게릴라'의 세 번째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이동환씨는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심리와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대구지역 현대시조동인모임의 일원이기도 했다. 경찰이 된다는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으나 마지막 소원이라는 할아버지의 간청으로 시험을 봤고,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경찰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현재 그는 현직 경찰이면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로 활동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현직 경찰간부이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중인 이동환 경감.
현직 경찰간부이면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중인 이동환 경감.
<오마이뉴스>가 갓 시작할 무렵인 2000년부터 뉴스게릴라로 활동해온 이동환씨는 지금까지 약 90여 건의 기사를 썼다. 경찰을 소재로 한 글쓰기가 대부분이지만 그의 기사는 단조롭거나 딱딱하지만은 않다.

경찰을 둘러싼 이슈에 대한 분명한 입장에서부터 경찰로 일하면서 겪는 자잘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그가 쓴 글 속에는 한 경찰관의 일상과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런가하면 '아들에게'(2000년 8월 14일자)와 같이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감상을 옮긴 글도 있다

그가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소식을 전달받는 것이지만 경찰은 직접 그 현장에 있잖아요. 그런데 언론이 말하는 상황과 우리가 직접 조사한 상황이 너무 다른 거예요. 경찰의 의도와 행위가 왜곡되는 때가 적지 않았죠."


언론 보도와 경찰 조사의 차이를 보면서 그는 직접 기사를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동환씨의 기사 <전면에 서야하는 내가 서글프다-기동중대 지휘관이 본 시위현장>(2002년 7월 30일자), <종로서 경비과장 "난 주먹질 하지않았다"-'민중의 소리' 범민련 부의장 폭행 보도에 대한 반론>(2003년 3월 27일자) 등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관련
기사
- 아들에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관찰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으레 몸싸움과 시비가 오가는 집회현장이다 보면 언제,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이 다르게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집회는 이쪽에서 보는 것과 저쪽에서 보는 모습이 참 달라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쪽에서는 안보이는 것이 저쪽에서는 보이기도 하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동환씨는 "실체적 진실을 위해 자신이 취재한 진실을 보탠다"는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그때마다 "이쪽에서 보고 느낀 점이고 많은 생각이 있지만 입이 하나밖에 없으니 한 생각만 표출되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읽어달라"는 부탁을 덧붙인다.

경찰은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라!

현직 경찰관으로서 기사를 쓰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워낙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운 직업인데다 조심스럽게 한 말도 부풀려지기 십상인 조직에 속해 있다보니 때로는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기사화하려고 애쓴다. 이동환씨는 여러 차례 경찰이 집회를 보호해야한다는 논지의 기사를 작성한 바 있다.

지난 2001년 4월에는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에게 "경찰은 이제 시위현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경찰과 보수언론의 집중공세를 받아야 했다.

"진의가 뭐냐 이거죠. 경찰관 주제에 이런 글을 썼다는 '괘씸죄'도 작용했을 것이고."

그러나 이동환씨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국민들에게 보장된 권리입니다. 그걸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그는 지난 4월 28일 확정된 '자율적 집회시위 보호지침'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주자는 거죠. 예전에는 '신 집회시위 관리대책'이라는 지침이 있었어요. 국민들의 권리를 '관리'의 대상으로 본 거죠. 그에 비하면 얼마나 진일보한 것입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이 실제 시위현장을 몸으로 겪어본 경찰들 내부의 논의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죠."

폭력과 불법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

아들 겸목이와 함께 찍은 사진.요즘 주말근무 때문에 아들과 목욕탕 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아들 겸목이와 함께 찍은 사진.요즘 주말근무 때문에 아들과 목욕탕 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동환씨는 합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경찰은 가치판단을 하지말아야 하는 집단입니다. 가치판단을 허용하면 한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에 따라 경찰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위험이 있죠.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대에는 실제로 그런 상황들이 일어났구요. 내가 파병반대에 동의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해서, '많은 국민들이 원하니까 물러서 주자' 이럴 수가 없다는 거죠."

그는 특히 시위대가 경찰을 밀거나 때리는 행위를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시위대가 경찰들에게 폭행당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경찰들도 그들에게 맞을 이유가 없습니다. 무장을 하고 방패를 들었다고 해서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건가요? 그런 행위를 하면서 '평화집회를 경찰이 막고 있다',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하는데 그럴 때면 참 곤혹스럽습니다."

무력충돌은 양쪽에게 돌이키기 힘든 피해와 불신을 안겨주었다. 이를 고민하던 이동환씨는 집회에서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방패를 든 대원들이 뒷열에 서도록 제안했다.

"방패가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한다고 생각했죠. 방패가 없으면 아무리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라고 해도 섣불리 때리거나 차질 못합니다. 대원들이 방패를 잘못 사용해서 시위대의 항의를 받는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했구요. 시위대의 불법행위 중에도 말이나 가벼운 제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과잉대응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항상 강조해왔고 대원들은 이를 잘 따라주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물로 공격을 할 때는 뒷열의 방패가 즉각 대응하도록 했구요."

이같은 진압방식의 변화는 보수언론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공권력이 무너졌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한 그의 입장 또한 분명하다.

"왜 '강경진압',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겁니까? 법대로만 처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위대가 신고한 대로만 집회를 진행한다면 경찰병력 댈 필요가 없고, 그들이 법의 범위를 벗어날 때에만 경찰이 개입하면 되는 겁니다."

'영화감독' 이동환을 꿈꾼다

독자투고나 기고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를 선택했다. 대안언론으로서의 <오마이뉴스>에 대한 믿음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기사에 달린 독자의견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경찰이 썼기 때문에 편향적이라고 생각해선지 제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분들도 있고, 그런가하면 또 제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분들도 있고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주말에도 근무를 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대부분의 경찰은 1주일에 60~80시간 동안 일한다고 한다) 그가 글을 계속 쓰는 것은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서로 다른 생각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워 가는 성숙함이자, 진보와 보수의 극단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부딪힘이다.

"아들놈이 저랑 목욕가는 걸 참 좋아해요. 그런데 함께 못간지 참 오래됐어요. 요즘은 아예 때밀이 아저씨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들 생각을 하며 살짝 찡그리듯 웃는 이동환씨의 꿈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의 소재도 경찰이라는 정도로만 독자에게 귀띔하려고 한다. 현직 경찰이면서 뉴스게릴라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곧 독자들에게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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