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유인태 후보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번이 네 번째 선거도전인데 지금까지와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그동안 나는 3김식 정당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앞으로 정치를 더 한다면 어쨌든 개혁적인 신당을 만드는 일에 내 역할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년에 '화해와 전진 포럼'을 만든 것도 그런 의도였다. 그런데 노풍이 불고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되면서 민주당에 상당한 가능성이 생겼고, '화해와 전진 포럼'은 활동이 정지됐다. 민주당 측으로부터 나에게 선거에 나가달라는 영입제의가 왔다. 그만큼 현재 민주당이 변한 거다. 바뀐 거다. 사실 지금 한나라당의 행태는 과거 회귀적이다. 과거 3김을 청산하겠다던 이회창 후보는 지금 3김 정치의 후계자가 돼있다. '3김식 정치의 연장이냐, 청산이냐' - 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지난 6·13 지방선거의 표심은 현 정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실망과 분노인데, 이번 8·8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대책이 있는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참패로 국민들의 분노는 조금 식힌 것 아닌가. 어쨌든 아들 둘이 구속돼있고, 검찰의 수사가 조금 미진하다고 하면 민주당은 특검제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니까. 덮으려는 것도 아니고, 정부도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다 파헤치자는 입장이니까. 국민들도 이제 지난 지방선거 때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 민주당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당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유 후보는 어느 쪽인가. 만약 원내에 진출하면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
"그동안 나는 민주당 내에서는 몸으로 정당민주화를 위해 실천했던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과거 '국경추'라는 것이 있었다. 국민경선추진위원회. DJ를 대선후보와 총재로 추대하자는 것이 당내 대부분의 생각이었는데, 그때 (국경추의) 정대철 최고위원이 후보 경선에 나서고 김상현 최고위원이 총재경선에 나섰다. 우리 상식으로는 당연히 민주정당에서 경선 하자고 하면 해야하고, 또 결과도 사실 뻔했지만, 과정으로서 중요하다고 했는데도 이것을 당에서는 굉장히 사시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후 DJ가 대통령이 된 후에 대부분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다. 김상현, 박정훈 전 의원 공천 못 받았죠, 김학민·박우섭 공천 안됐죠, 이호웅 의원도 안주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없어서 간신히 공천됐다.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민주당 내에서 쇄신과 개혁을 많이 부르짖지만, 그 쇄신과 개혁을 말로만이 아니라 자기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할 용기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 후보 수락할 때 유 후보가 뭐라고 했냐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20년 이상 퇴보한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선 한나라당을 움직이는 주세력이 과거 민정당 출신이다. 최고위원들을 봐라. 전부 민정계고, 대선을 위해 이회창 후보 세력이 밀어서 민주계 대표 하나를 억지로 세웠다. 온통 민정계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지난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내걸었던 것이 '3김 청산'이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이 후보가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3김식 정치'란 말이지. 거기(한나라당)는 지금 5·6공 군부정권과 3김식 정치의 나쁜 대목만 전부 따온 정치틀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후퇴하는 것으로 본다."
- 그래도 2000년 4·13 총선때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예… 그랬죠."
- 한나라당이 2년 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그렇죠. 우선 민주당이 나에게 여러가지 약속을 위반했고, 또 DJ 집권 후에 보이는 행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뭐, 거의 좌절에 가까울 정도로 실망을 한 대목이 작용을 했다. 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도봉을에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표해오면서, '이번에 사실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개혁적인 정당으로 만들겠다, 그러니까 좀 참여해서 좀 개혁적으로 만드는데 동참을 해달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제의했다. 그때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 비판적으로 본다면 공천을 위해서 왔다갔다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있는데… 나는 그때 DJ 집권 후에 보여주는 여러가지 대목에 대해서, 당시 국민회의에 속해 있었지만, 상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먹히지 않았다. 역할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이렇다. 아직 우리 정치가 과도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개혁적인 세력이 한나라당에 속해 있더라도 그 자체를 가지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한나라당 안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야한다. 향후 엉크러져 있는 정치가 좀더 정돈될 때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 유인태 민주당 후보 약력 | | | | 1948년 9월 5일 생 경기고 /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3선 개헌 반대 운동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 후 무기징역 감형, 4년 반 복역 14대 국회의원 민주당 노무현 후보 특별보좌역 | | | | |
- 과거에도 민주당에 대해 'DJ당'이라고 비판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돌아온 현재 민주당은 과거 'DJ당'과 다르다고 보는가.
"국민회의 이전의 민주당, 즉 DJ가 정계에서 은퇴했을 때는, 상당히 DJ당을 벗어났다. 그러니까 93년·94년·95년, 제가 3년간 원내생활을 할 때 민주당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 후 국민회의 창당하고 나서는 철저하게 'DJ 1인 정당'이었다.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DJ가 탈당하고 쇄신정국과 국민경선을 거친 민주당은, DJ당이 아니라고 본다."
- 그래도 아직까지 DJ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과거 지역주의에 매여서 그렇게 보이지만, 우선 이번 재보선 공천과정이 DJ당이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DJ를 그렇게 비판해오던 장기표가 영등포 을에 공천됐고, 나도 비판적인 것은 자타가 인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로에 공천됐다."
- 종로 이야기를 좀 하겠다. 한나라당 박진 후보와 여러가지로 많이 대비된다. 가장 차별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그 사람은 정말 온실에서 커온 사람이다. 남의 속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도대체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고뇌를 해봤을까 의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그 문제를 거의 고뇌해본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과연 정치활동에 적합하겠는가. 나는 그 대목에서 한나라당 후보와는 많은 차별점이 있다고 본다."
- 만약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면, 6년만에 들어가는 데다가 대선국면이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글쎄… 우선 정치개혁의 과제들 -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패를 없애고, 정당의 민주화가 더 진척되도록 당내에서 역할을 찾고 싶다. 거기에 보탠다면 나는 우리 정치가 3김 이후 제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한나라당 내에 있는 개혁세력들과 민주당 내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당을 함께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한 일을 도모하는데 역할을 하려고 한다."
- 당락 여부를 떠나서 그런 일을 할 것인가.
"내가 원내에 진출하게되면 그런 일에 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떨어져도 물론 그동안 살아온 인간관계로 일을 도모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탄력을 받기는 좀 어렵지 않겠는가."
- 사실 현재 한나라당 내 개혁파의 입지가 답답한 상황 아닌가.
"그렇죠. 예를 들어 이번에 박계동 전의원 공천 탈락이라든지… 우리 상식에도 이회창 후보가 대선 전략상 수구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박계동을 공천할 법한데. 서청원 대표를 만들 듯 말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좀 압승을 하고 나니까 다시 좀 오만해진거다. '뭐 박계동이 (공천) 안 줘도, 골치 아픈 애들 끌어들일 필요 없다' 뭐 이런 발상 아닌가. 지금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도 이런 대선 구도에서 거기에 계속 복무하기는 굉장히 곤란을 겪을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열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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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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