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군검찰-검찰,병역비리수사 '숨은 공신'

[집중조명] 이명현 전 합수부 주임검찰관이 본 김대업씨

등록 2002.08.09 13:00수정 2002.08.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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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공항에 도착한 김대업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대 권력의 대형 '국기문란' 사건을 폭로한 의정하사관 출신 김대업씨. 그는 이 시대의 드문 '의인'인가, 아니면 특정정당의 사주를 받은 희대의 '사기꾼'인가.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41)씨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이처럼 양 극단을 달리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김씨의 과거 전과사실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전과자의 병역비리 은폐 주장은 믿을 수 없는 얘기'라고 몰아부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8년 당시 군-검합동수사본부에서 병무비리사건 전담 주임 검찰관으로 활약한 이명현 육군 소령이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병역비리 수사에 봉사했던 김대업씨의 '또 다른 얼굴'이 담겨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일명 '병역비리 특별수사관' 김대업 씨. 그는 어떤 경위로 전과자 신분으로 군검찰의 병역비리 수사에 협조하게 되었으며, 실지로 수사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그리고 그의 '전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며, 몇 차례나 되는지 등을 집중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5월10일 '대통령 하명사건, 내부압력으로 무릎 꿇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병무비리 사건 전담 주임 검찰관으로서 활약한 이명현 육군 소령(현 한미연합사 법무관)이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지난 99년 7월11일자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무려 A4용지 20장 분량으로 제목은 <병무비리 수사 전반에 관한 보고-존경하는 국방부 장관님께>이다. 이명현 소령은 98년 '원용수 준위 사건' 이후 약15개월 동안 병무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병무비리 주임 검찰관의 '보고서' 속의 김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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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지난해 5월 보도했던 '이명현 소령의 보고서'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이 보고서에는 최근 화제의 인물로 부각된 김대업씨가 '병역비리 수사 기관'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그의 활약상이 A4용지 5장 정도 분량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당시 민간인이었던 김씨가 어떻게 '병역비리 수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일까. 이 소령은 '보고서'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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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차 수사팀장 이명현 소령의 보고서

"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있던 중에 '98. 7. 9.경 한 통의 전화가 국방부 검찰부로 걸려왔음. 전화의 요지는 "자신은 병무비리 특히 신검비리 및 의병전역 부분에 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은 이틀 전에 출감하였다. 교도소에서 신문을 보니까 국방부의 A 검찰부장이라는 사람이 강직하고 청렴하다고 하더라. 그분을 만나게 해달라. 박노항 원사를 자신이 아는데 그 사람을 수배할 정도이면 이번 수사는 결코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수사에 도움을 주고 싶다. 이러 이러한 부분을 알고 싶은 것 아니냐. 자신도 과거에 병무비리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털고 이번 기회에 새 삶을 살고 싶다. 수사 결과 비리의 몸통이 기관원들로 밝혀질 텐데 겁나지 않는가. 자신은 전국적인 병무비리 커넥션을 알고 있다" 등등 이었음.

또한 전화를 받는 검찰관인 저에게 "정말 전국적으로 끝까지 수사할 용기와 의지가 있느냐"고 물어 저는 "끝까지 하겠다"고 말하였고, 김대업씨는 "그럼 내일 당장 만나자 자신도 신변을 정리하고 오겠다고 하였음."


이 소령과 김대업씨의 '운명적인 만남'은 다음날인 7월10일 이뤄졌다. 이 만남의 장소에는 김씨의 부인(현재는 이혼상태)이 함께 했다.

"98. 7. 10. 13:00경 크라운 호텔 커피숍에서 김대업씨를 만났음. 당시에 그는 자신의 부인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 이유는 부인이 출감하자마자 갑자기 병무비리 수사하러 떠난다고 해 그 말을 못 믿어서 따라왔다고 하였음.

저는 그러면 TV에 나오는 국방부 검찰부를 보면 믿겠는가 하고 두 사람을 검찰부로 데리고 와서 확인시켜주자 부인이 이제야 믿겠다며 먼저 대구로 내려갔음. 김대업씨를 A부장에게 소개시켜주고 신분확인을 위하여 CCTV가 설치된 조사실에 데리고 가 주소, 주민번호, 본적 등 신원조회에 필요한 기본사항을 질문하고 약 2시간여에 걸쳐 병무비리 전반에 관한 진술를 청취함.

"정말 끝까지 수사할 용기와 의지가 있는가"

조사실에서 조사하는 동안 김대업씨에 관한 신분조회가 끝났고 진술 모두 다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음. 조사가 끝난 뒤 A 부장은 전과자가 수사에 관여하면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고 인상이 별로 좋지 않으니 일단 돌려보낸 다음 좀 더 생각해보자고 하였음.

그 날로 나중에 연락한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는데 3일 후에 제가 김대업씨를 안 부르냐 병무비리 수사 안 할 것이냐 하자 A부장은 "그냥 놔두라. 원한다면 이 수석이 알아서 해"라고 하였음. 그래서 제가 1주일 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올라 오라고 하였음."


김씨가 최초로 '병역비리' 수사에 착수했던 장소는 서울 캐피탈 호텔. 이 소령은 당시 김씨의 '희생적'인 수사 협조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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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7일 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김대업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대업씨를 만나서 "국방부 검찰부는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여유가 없는 초미니 기관이다. 수사 진행은 安家같은 데서 해야하는데 우리는 그런 시설이 없다"고 하자 "그런 것은 걱정 말라. 자신의 숙식은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라고 하면서 캐피탈 호텔에 숙소를 정함.

저는 김대업씨에게 호텔로 가져다 달라는 명단과 서류 등을 가져다주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접어주면 제가 가져다가 복사하여 주고, 다시 복사본에 대하여 펜으로 분석하여주면 제가 워드프로세서 작업을 하였음.

이렇게 해서 문제가 있다고 선별한 자료가 서울지역만 2000여건에 이르렀고 분석까지 완료한 것은 400여건에 이르렀음.('98. 12. 초 합수부 설치 전까지)

1개의 분석자료를 완성하는 데 거의 10시간 정도의 노력이 투입되었고 김대업씨의 밤잠을 안자고 일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 제가 아는 어떤 수사관도 이 정도의 열심을 보일 수 없음.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또는 전국적인 브로커 조직을 통일하려고 한다면 이 정도의 열성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임. 제가 10여개월 가까이 同苦同樂하면서 느낀 바에 의하면 김대업씨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며 남을 모함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아님.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 땅의 병무비리 근절에 온몸을 내던진 사람임을 확신함.)

약 3개월 동안의 작업으로 자료에서 문제점 분석과 병명, 증세, 재발 가능성 등에 관하여 김대업씨로부터 집중적인 도움(김대업씨는 전에 의정하사관으로 근무한 경력과 의정부 시민병원 이사장까지 한 경력으로 전문의들도 놀랄 만한 정도의 의학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긴 저는 군의관들에 대한 구속 수사를 결심하게 되었음."


병역비리 근절에 온몸을 내던진 사람 확신

"김대업씨 참여 수사기법상 정당"
지난 1월 병역비리 수사 참여 노명선 검사

지난해 1월 수감자 신분인 김대업씨의 병역비리 수사 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수사검사였던 노명선 검사(사진, 현 일본대사관 파견)는 9일 문화일보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김씨의 수사참여는) 수사기법상 정당한 행위”라며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노검사는 김씨를 수사에 참여시켰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에 의해 공무원자격사칭교사 혐의등으로 고발돼 있는 상태다. 다음은 문화일보와의 통화 내용.

-김대업씨에게 사복을 입혔나.
“그때 겨울이어서 주로 죄수복 위에 잠바를 입혔다. 경우에 따라서 죄수복보다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히기도 했다.”

-김대업씨는 김길부 전 병무청장 수사 과정에서 ‘이정연씨 병역면제 대책회의’ 진술을 들었다는데.
“김대업 씨가 줄곧 그렇게 말했지만 김 전 청장이 부인해 수사하지 않았다.”

-박영관 부장이나 상부에 보고했나.
“보고한 적 없다. 김씨 말만으로는 수사를 개시할 상황이 아니었다.”

-보고서도 만들었다던데.
“보고서 같은 건 없다. 다만 김대업씨가 전언한 김길부 전청장 진술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그건 보고서는 아니었다.”

-김씨를 수사에 참여시킨 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해하지 못하겠다. 김씨를 수사에 투입한 것은 병역비리를 수사하는 한 방법이다. 일본에 뱀길은 뱀이 잘안다는 말이 있다. 병역비리를 잘 아는 김씨를 통해 병역비리를 수사한 게 뭐가 문제인가. 병역비리여부를 확인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병역비리 수사를 너무 세게 해서 일본으로 파견됐다는데
“사실이 아니다. 내가 지원했다.”

-이번 수사는 어떻게 보나.
“이번 기회에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 문화일보=권은중 기자
이 소령은 당시 김대업씨는 전국의 병역비리 커넥션을 꿰고 있었고, 병역면제에 대한 의료지식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리에 참여한 군의관들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했다.

"1차 수사시 병무브로커 조직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은 수사팀에 김대업씨이라는 수사보조자가 전국의 비리 커넥션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임.

비리 관련자들은 병명이나 증상, 부정면제 절차, 브로커, 진단서 발급의사 등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김대업씨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음. 그래서 이른바 '선수' 여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어 건수가 비교적 적은 '비선수'들을 회유하여 '선수'들에 관한 사항을 알아내고 그것으로 '선수'들에 대한 압박자료로서 사용함으로써 '선수' 1명을 굴복시키면 '준선수'급 관련자 10여명에 관한 인적사항이 파악될 수 있었던 것임.

그러나 2차 수사팀에는 전국적 커넥션 관계를 아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병명조차 정확히 아는 사람이 1명도 없다는 소문이 이미 무성하여, 소환되면 무조건 부인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부인해도 혐의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수사가 답보 상태임.

병무비리 수사는 뇌물수수의 일방 당사자 중 하나를 면책해주겠다 등의 조건을 걸어 선처받는 사람의 숫자를 최소화하고 입증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할 것이나 현 수사팀은 지난 수사의 1등 공신인 김대업씨 및 1차 수사팀장인 저까지도 뒷조사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음. 수사의 목표가 병무비리 근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개인적 감정 해결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임."


당시 이명현 검찰관은 누구보다도 김대업씨를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김씨가 군 검찰에 협조하기 전 처음으로 만난 것도 이 검찰관이었고, 그 뒤 15개월 동안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검찰관의 보고서 속에 등장한 김씨의 모습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사실 이 검찰관의 보고서는 김씨의 '공적'을 소개하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니었다. 병역비리를 수사하면서 직면했던 '군검찰의 내부 압력'에 대해 직언하기 위해서였다.

'김대업 죽이기'와 '기무사 죽이기'

이 보고서(전문 참조)에서 이명현 검찰관이 병무비리 수사가 '내부 압력에 무릎꿇은 이유'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병무비리에 기무사 요원들이 관계되어 있다.
2) 수사 전담 검찰관의 직속상관과 기무사 고위층이 수사의 진전을 다각도로 방해하고 있다.
3) 대통령의 하명사건은 따라서 제대로 수사되고 있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병역비리 수사와 관련해 군은 대통령에게 항명을 하고 있다.
4) 기무사를 개혁하고 '수사 방해 상관들'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병무비리 수사는 계속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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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00년 4월호에 실린 김대업씨 관련 기사. ⓒ 신동아

김대업씨는 이같은 군 내부 갈등 속의 핵심인물이었다. 김대업씨는 병무비리 수사를 거듭하면서 '군 기관원들의 비리'를 족집게처럼 집어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는< [추적취재] 병무비리 수사 극비 내막, "K씨를 제거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김씨에 대한 '기무 요원들의 추적'은 99년 9월19일 구성된 기관(기무·헌병) 관련 병무비리 특별수사팀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나의 일부 전과는 군기관의 작품"
김대업씨가 밝히는 '김대업의 전과'

한나라당은 최근 김대업씨와 관련 성명을 쏟아내면서 "정연씨의 병역비리 은폐는 사기 6범의 못믿을 조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업씨는 "내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3번이며 그중 2번은 군 기관이 나를 옥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업씨 스스로 밝힌 최초의 전과는 군 복무중의 병역비리 연루 사건. 그는 당시 신검 부서이기도 한 대구병원 외래과에 파견 근무할 때 병역비리건으로 남한산성에서 8개월간 복역했다. 그는 제대 후 택시회사를 운영했고, 의정부 시민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96년 병원 인수 후 미국 LA토렌스에 컴퓨터 자수 공장을 설립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그는 97년 7월에 '협박' 혐의로 구속돼 1년동안 복역했다.

그는 그 이듬해인 98년부터 2년여간 군 검찰과 함께 병역비리 수사팀에 합류해 자료 분석 작업 등을 벌였다. 하지만 수사팀에서 나온 직후인 2001년 3월 또다시 사기혐의로 체포돼 1년여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뒤 8개월에 걸쳐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아직도 두 번째와 세 번째 구속은 "병역비리 수사와 연관된 음해"라면서 억울해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세 번째 구속 과정이 석연치 않다"면서 지난해 3월30일 한 PC방에서 체포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날 오후 3시경 신촌로터리의 한 PC방에서 박노항 씨의 행적과 관련해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달전인 2월 제4차 병무비리합동수사반이 해체된 뒤 박노항 씨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 뒤 대충 위치가 파악돼 그와 관련 문건을 정리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포경찰서 소속의 한 경사가 사진과 주민등록번호가 찍혀있는 A4용지를 꺼내보이면서 서초경찰서로 인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 50대 남자가 PC방 옆을 지나는 순찰차를 잡아세우고, 수배자 한 사람이 PC방에 있으니 잡아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김씨는 당시 한 경사가 보여주었던 A4용지의 전단은 병역비리 수사 때 작성된 것으로 군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군 기관이 불법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했고, 특정인 명의의 사기혐의 고발장에도 군 기관의 문서가 첨부돼 있었다"면서 "한 사람에게 돈을 빌린 적은 있지만 채무상환시기가 도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를 옥죄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억울해 하고 있다.
/ 김병기
"K씨에 대한 기무요원들의 직접 공격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기무요원들은 먼저 K씨의 병무비리 전력을 파고 들었다. …또 일부 기무요원은 병무비리와 관련해 군검찰의 조사를 받은 군의관들을 찾아다니며 K씨 관련 사항(가혹 행위 등)을 질의했고,…대부분의 질의에 대해 군의관들이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자 이번엔 K씨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 작성을 종용하기도 했다. … 기무사는 왜 이토록 K씨 제거에 집착했는가. 그 배경엔 군검찰과 기무사의 힘겨루기가 있다. 기무사는 군검찰이 기무사를 '표적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K씨를 '기무사 죽이기'의 주역으로 여겼다. '신동아'가 확보한 관련 증거들에 따르면 기무사는 K씨를 파렴치범으로 보고 수사팀에서 배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 기무사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병역비리에 기무사 관련자들이 불거져 나오자, 방어차원에서 역으로 'K씨 죽이기'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신동아>는 또 당시 군검찰에서 김대업씨를 만났던 군의관의 진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수사관이 돈받은 의혹을 제기하며 허위 판정이 아니냐고 아무리 다그쳐도 군의관이 아니라면 그만이죠. 그런데 K씨는 의학지식이 풍부했어요. 또 병무에 밝아 면제 판정이 나가기까지의 과정과 절차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 힘들어 당황했죠."

<신동아>는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찰관의 말을 빌어 김씨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사건을 찾아내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어요. 군의관들은 (면제)판정만 했을 뿐이지 행정이나 서류에 대해서는 몰라요. 기억이 정확치 않으니 대충 몇 년 몇 월경 누구에게 청탁받아 부정면제 판정을 한 것같다고 진술해요. 그 정도만 얘기하면 K씨가 귀신같이 찾아내요. 병무청에서 보내준 5만건의 자료는 뒤죽박죽돼 있었어요. 일부러 막 흩뜨려놓은 거죠. 찾다가 지치게. 옛날부터 쓰던 수법이죠. 그런데 K씨는 찾아내요."

이렇듯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와 <신동아>에 나타난 김씨는 최근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히려 병역비리 수사에 헌신한 '의인'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또 김대업씨는 병역비리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족집게 수사' 때문에 궁지에 몰리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한나라당이 쏟아낸 성명·논평 속에 등장한 '김씨' 형상은 이와 정반대이다. '사기꾼' '전과자' '파렴치범' 등 비난 일색이며, 심지어 김씨의 사기 전과에 대한 판결문을 공개하거나, 그와 가족들의 출입국 사실을 조사해 공개하는 등 맹공을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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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대업씨 주변에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또 민주당과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면서 민주당의 한 의원과의 '내통설'을 퍼뜨리기조차 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국회의원 9명을 대구로 '특파'해 김씨의 주소지 등을 샅샅히 뒤지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에서 공격의 주무기로 삼고 있는 김씨의 전과 사실에 대해 김씨 자신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김씨는 한나라당의 공격에 대해 지난 7월 9일 <오마이뉴스>에 실은 반박문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밝혀 왔다.

하지만 김씨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중에 전부 과거 잘못된 전과나 사실이 없다면 본인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 병역비리 및 은폐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 수 있다"면서 "나의 과거를 들추며 비난하는 것은 이 사건의 진실규명보다는 진실 은폐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과연 김대업씨는 '의인'인가,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인가.

김씨는 내주초 '김대업 병역비리 X파일', 즉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프가 공개될 경우 김씨를 둘러싼 그 동안의 신뢰성 논란은 일단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의인'이냐,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이냐는 논란은 테이프 내용의 충실도에 따라 저절로 판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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