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찾아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벗에게 띄우는 편지 ④

등록 2002.08.14 16:15수정 2002.08.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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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노란 장화를 신고, 노란 우산을 쓰고, 노란 비옷을 입고 밖에 나가 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어. 식구가 많아서 학교 가는 시간이 언니, 오빠들보다 늦었던 나는 구멍이라도 없는, 우산살이라도 제대로 박힌 우산을 쓰고 가면 그나마 감지덕지였던 시절을 살고 있었거든.


그러니 비옷에 장화를 꿈꾼다는 것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환상이었던 거지. 친구들이 노란 장화를 신고 찰박대며 집에 가는 걸 볼 때마다 괜히 우산을 숨기고 싶었던 시절이 내게 있었네. 많이 부러웠던 모양이야.

비만 오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비를 맞던 시절도 있었어. 내 친구 소영이 알지? 소영이가 비를 아주 많이 좋아했는데, 그 친구가 좋아하는 것만 바라보고 살던 그때 내가 비를 동경하게 된 것은 너무 당연했지. 비만 오면 밖에 나가 비를 맞던 우리들을 두고, 창문 가득 매달려 구경하던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야, 영화 찍냐?"하고 소리를 질러댔어.

돌아보면 치기 어린 사춘기 소녀의 기행일 뿐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거창한 숙명처럼 느껴졌나 몰라. 저 밖에서 비가 나를 부르는데 맞지 않을 도리가 있단 말인가? 하는 신파조의 대사를 읊조리기도 했었던가 어쨌던가.

a 창덕궁의 단청. 궁궐과 절집이 아니고는 이런 화려한 단청을 칠할 생각도 못 했다.

창덕궁의 단청. 궁궐과 절집이 아니고는 이런 화려한 단청을 칠할 생각도 못 했다. ⓒ 김은주

그리고 어른에 조금 가까워진 다음부터는 비만 오면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는 나를 발견했지. "야, 이런 날은 궁궐에 가서 비 떨어지는 처마 끝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빈대떡이나 부쳐 먹고, 김치전이나 해 먹자던 소리보다 더 자주 그 소리를 하고 있더라구.

비가 오든 비가 오지 않든 궁궐에 가는 일은 늘 즐거운 소풍이야. 나무가 있고, 바람이 있고, 그리고 아늑함에다 고요함까지 있는 곳이잖아.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며칠 전에 창덕궁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햇살 환한 날에 찾아가도 궁궐은 참 좋더라.


창덕궁은 1405년, 태종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돌아올 때 쓰려고 지은 궁궐이래. 자연 지형에 맞춰 전각을 앉히다 보니 경복궁에 비해 곡선이 많고 여성스럽다는 평을 받고 있어. 사람들을 내버려 두니까 문화재 훼손이 너무 심하다고 안내자를 꼭 따라다니도록 정해 놓고 있어서 창덕궁 구경은 일정한 코스대로만 움직여야 해. 그 정도야 뭐, 감수할 수 있지.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자마자 갑자기 낯선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해. 돈화문 바로 앞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데, 궁 안에는 한갓진 바람만 불어대고 있는 거야. 궁궐 담이 문명의 소리들까지 지워 주고 있는 듯 했어. 커다란 회화나무가 사람들을 반기고 있는데, 그 몸집이 우람한 것이 그늘도 아주 너르고 풍족해. 이 나무 그늘 아래서 국정 논의도 하고, 학문 얘기도 하고 그랬대서 '학자나무'라고도 불러.


a 인정전 마당 정전 풍경. 이 돌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정쟁이 있었단다.

인정전 마당 정전 풍경. 이 돌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정쟁이 있었단다. ⓒ 김은주

회화나무를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인정전이야. 인정전을 앞에 두고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서 나쁜 마음을 씻어내고 들어오란 뜻이래. 인정전 마당에는 그늘 한 점 없이 쨍-한 땡볕이야.

<생태기행>을 쓴 김재일 선생 말에 의하면 궁궐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없는 것은 입 구(口)자 마당에 나무(木)를 심으면 곧 궁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이 꺼려 했기 때문이래. 참, 별 금기가 다 있지? 나무로 지은 건물이 많으니 그늘 지고 습기찰까 싶어 그랬다는 해석도 그럴 듯하기는 해.

인정전을 지나 연잎으로 가득찬 부용지에 갔어. 부용정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고, 연못 가운데는 흐드러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섬을 지탱하고 있네. 집을 지을 때마다 연못을 만들고, 그 연못 가운데 섬을 두는 뜻은 천지인의 조화를 들여 놓고 싶어했던 선비들의 뜻이라고 해. 가운데 소나무가 사람인 셈이지.

a 부용지에 물 흘러들어가는 소리, 귀까지 마음까지 시원하다

부용지에 물 흘러들어가는 소리, 귀까지 마음까지 시원하다 ⓒ 김은주

부용지에 이르러 휴식 시간을 주더라. 사람들은 나무 그늘 찾아 손부채질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하수구 구멍을 뚫어져라 쳐다봤어. 몇 년 전에 창덕궁 부용지에서 너구리를 만났거든. 그 너구리, 지금도 안녕하신지 궁금했지만 이번 나들이에서는 볼 수가 없었어. 그 무렵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종묘 너구리' 덕분에 한동안 사람들이 너구리를 보겠다고 열심이었는데 말이야. 어디서든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라고 있기를 바랄 뿐.

부용지 지나고 돌로 만든 '불로문'을 지나 연경당이네. 순조가 민가를 모방해서 만든 사대부 건물이래. 궁궐 뒤쪽에 그런 여염집을 지으라 명한 까닭을 나는 모르지만, 그냥 뭇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은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순조라는 한 남자의 마음을 짐작만 해봤어.

연경당 지나면서 창덕궁 후원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해. 계단을 오르고, 오르막길을 조금 지나면 참나무들이 빽빽한 가운데 느티나무, 귀룽나무, 말채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따위가 사이 좋게 길을 만들고 있어. 기분 좋은 호위병들이야. 일제 시대 때 괜시리 비밀스런 공간을 품격을 낮춰 보려고 '비원'이란 이름을 많이 퍼뜨렸는데, 지금은 많이들 노력해서 '후원'이란 이름, '금원'이란 이름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지.

다 둘러보고 나오니까 1시간 20분쯤 걸렸더라. 아, 마지막으로 본 600살 향나무 이야기를 빠뜨릴 뻔했네. 천연기념물 194호인 이 향나무는 키가 6미터가 넘는대. 그 앞에 서 있는 어떤 존재라도 압도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거 같아. 창덕궁 나들이 마지막 마무리로는 썩 괜찮은 만남이었어. 너무 연로하신 나머지 받침대에 의지해 계시긴 했지만, 그 성성한 푸르름은 아직도 몇 백년은 족히 더 살아 계실 것 같더라.

무지 더웠기 때문에 '역시 궁궐은 비 오는 날이 제격이야'하는 생각을 굳히고 말았지만, 햇살 환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아주 많이 나쁘진 않았어. 나중에라도 창덕궁에 가서 부용정 언저리를 어슬렁대는 너구리를 만나게 되거들랑, 부디 내 안부를 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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