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 금아, 앵금 앵금 앵금통아!

<내 추억속의 그 이름 4> 춘웅덩이

등록 2002.08.15 11:34수정 2002.08.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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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물웅덩이, 이 웅덩이는 춘웅덩이가 아니다.

물웅덩이, 이 웅덩이는 춘웅덩이가 아니다. ⓒ 이종찬

잠자리 한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서성대는 구름 한 장/잠자리를 덮어주었네//잠자리 두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서성대는 구름 한 장, 구름 곁 바람이/잠자리를 덮어주었네//잠자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네/잠자리 두 마리도 울기 시작했네/놀란 웅덩이도/잠자리를 안고 울기 시작했네//눈물은 흐르고 흘러/너의 웅덩이 속으로 흐르고 흘러//너를 사랑한다.(강은교 시인 '고독' 전문)

해마다 이맘 때가 오면 그리운 곳이 있다. 그래. 그 웅덩이, 앞산 앞으로 파랗게 펼쳐진 들판 사이에 꼭 하나 있었던, 올빼미 눈동자처럼 동그란 그 웅덩이. 마을에서 앵금통(?)이라고 불리던 그 사람의 논배암 사이에 패여 새파란 하늘을 동그랗게 비추던 그 웅덩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늘 얼음 같이 차고 맑은 물이 솟아나던 그 웅덩이.


우리는 그 동그란 웅덩이를 '춘웅덩이'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마을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불렀던 것 같다. 그래.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 초봄에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남천의 물처럼 차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기도 하다.

a 마름

마름 ⓒ 이종찬

춘웅덩이와 앵금통. 앵금통과 춘웅덩이. 지금도 그 춘웅덩이를 떠올리면 늘 같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앵금통이다. 이 이름, 앵금통이라고 택호처럼 불리던 그 마을 어른은 소위 동산 마을에서는 고문관(?)이었다. 그리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는 지독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앵금통이 마을 이름으로 되어 있는 마을 동산을 몰래 팔아먹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기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톱만한 것이라도 자신이 손해볼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묵내기 화투를 쳐도 자신이 조금 잃었다 싶으면 온갖 성질을 다 부리다가 화투판을 엎어버리고 은근슬쩍 실뱀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였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도 유분수지. 앵금통 저 넘이 멀쩡한 우리 동네와 우리 동네 사람들까지 팔아 처먹으려고 한다 아이가. 쎄(혀)가 만발이나 빠질 넘 아이가. 으이그! 왜놈 순사보다 더 지독한 넘! 아, 간뗑이가 소도둑보다 더 부은 앵금통 저 넘 땜에 대법원까지 갔다 카이.

그 일 때문에 한때 마을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앵금통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을 동산이 자기 할아버지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기 것밖에 챙길 줄 몰랐다. 중참을 먹을 때도 자기 먹을 것만 싸왔고, 한번도 이웃 사람들과 나눠먹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못자리를 할 때도, 벼를 수확할 때도 앵금통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유명한(?) 택호인 앵금통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a 수련

수련 ⓒ 이종찬

앵금통과 춘웅덩이, 춘웅덩이와 앵금통. 우리는 해마다 여름이 오면 앵금통 몰래 그 춘웅덩이에 가서 땀에 배인 발간 몸을 담갔다. 웅덩이의 깊이는 우리들 키 3배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까까중들은 그 웅덩이에 한 번 들어가려면 호흡을 몇 번씩이나 하면서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웅덩이 속으로 뛰어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1분쯤 지나면 빡빡 깎은 머리가 떠오르면서 물 위로 쑤욱 떠올랐다.


"앵금, 앵금 앵금통아! 풍덩!"
누구나 춘웅덩이에 뛰어들 때면 그런 말을 하면서 오른 발을 웅덩이 위 물살에 슬쩍 올리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풍덩 뛰어들었다.
"앵금 앵금 앵금통! 풍덩."
"앵 앵 앵금통! 풍덩."
"금아 금아 앵금아! 풍덩."
"통아 통아 금통아! 풍덩."
그리고 순서를 기다리는 우리 까까중들은 모두 배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

그랬다. 춘웅덩이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누구나 꼬추와 부랄이 조그마하게 오그라붙었다. 마치 앵금통의 밭에 달린 그 맵고 작은 고추처럼. 그랬다. 물이 어찌나 찬지 춘웅덩이에 한번 풍덩 뛰어들었다가 올라오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시 춘웅덩이 근처 논배암에서 소꼴을 베고, 철로가 난 둑 옆에서 소를 먹였다. 그러다가 또 땀이 나면 앵금통이 있는지, 아니면 앵금통이 집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눈치를 보아가며 춘웅덩이에 차례대로 뛰어들곤 했다.

그래. 그러다가 언젠가는 한번 앵금통에게 된통 걸린 적이 있었다. 앵금통은 우리가 늘 그곳에 뛰어드는 것을 알고, 벼가 시퍼렇게 자라는 논 속에 메추리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옷을 홀라당 벗고 깔깔대며 마악 3번째가 뛰어든 때였다. 갑자기 벼가 시퍼렇게 자라는 논 속에서 "네 이 넘의 새끼들!"이라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앵금통이 저승사자처럼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전봇대처럼 논에서 불쑥 일어선 것이었다.

a 개구리

개구리 ⓒ 이종찬

그래. 그날은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앵금통은 우리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이 잘못 지어 그렇게 된 고추농사뿐만 아니라 호박농사, 쌀농사 등등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논과 밭에 있는 작물값을 내놓으라고 마을사람들을 윽박질렀다. 그리고 올 가을에 배상한다는 각서를 써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아이들을 경찰서에 넘기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그래. 그 일로 인해 그해 가을, 온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앵금통 스스로 잘못 지은 농사값을 몽땅 치렀다. 그렇게 앵금통은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송곳을 꽂았다. 정말 지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앵금통이라는 사람이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으니 어쩌면 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 내 고향 창원 상남 동산 마을이 창원공단 조성으로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간혹 앵금통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그래. 내 고향은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얻어주었다. 또 도시 정비가 전국에서 가장 뛰어나며, 조경이 잘되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 고향 창원 칭찬을 해도 나는 지금의 창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창원공단에게 내 어릴 적 모든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고향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이제 내 고향은 없다. 창원 상남이라는 지명만 남아 있을 뿐 내 고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지금의 창원을 에워싸고 있는 큰 산을 바라보며 여기가 내 고향이라고 애써 인정하려 할 뿐. 그래. 춘웅덩이와 앵금통. 앵금통과 춘웅덩이에 대한 그 아름다운 기억도 다만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a 할미꽃

할미꽃 ⓒ 이종찬

그래. 지금도 눈에 보인다. 들판 위를 무수히 날아다니는 그 잠자리. 그 잠자리를 날쌔게 낚아채던 그 제비. 마을 앞에 있는 공동묘지 틈바구니에서 소롯히 고개 숙인 채 피어나던 할미꽃. 논배암에서 연분홍 입술을 예쁘게 내밀던 갯메꽃. 그리고 춘웅덩이에 떠 있는 마름, 그 마름을 비집고 새색시처럼 피어나던 수련. 그 수련 잎사귀에 장군처럼 떡 버티고 앉아 울던 그 개구리 울음소리,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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