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옆에서 낙타를 타고 있는 위구르청년.김미선
갑갑했던지 그 문지기 아저씨가 밖으로 나간다. 나보고도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문지기가 자리를 비우니 관광객도 나가야 하나보다. 그는 또 사원앞에 있는 계단중간에 우두커니 앉는다. 턱을 괴고 사원앞에서 놀고 있는 두 아이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할 일없는 나도 그 아저씨 옆에 앉아서 계속 '새살'을 떨어볼까 폼을 잡았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재미없을게 또 뭐람! 난 매일매일이 너무 즐겁다고. 가끔 심심하기도 하지만. 쟤네들 귀엽지 않아?"
손으로 계단아래서 놀고 있는 두 아이들을 가리킨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다.
"귀엽네요"
"우리 애들이야. 히히."
조금뒤,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 쓴 웬 위구르아줌마 한명이 우리쪽으로 걸어오는게 보인다. 파마라도 한 것인지 머리위로 파마할때나 뒤집어쓰는 비닐모자를 쓰고 있다. 그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아줌마는 밖에서 놀다가 이제 집에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위구르 아줌마의 머리에 뒤집어쓴 비닐모자가 무슨 용도냐고 물으니, 아줌마가 대뜸 비닐모자를 벗어서 직접 보여준다. 머리위로는 온통 빻은 봉숭아잎이 올려져 있다. 염색을 하기 위해서란다. 그러고 보니 투르판 시내 곳곳에서 가끔 그렇게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 쓴 여인네들을 봤었는데 그게 다 봉숭아 머리 염색이었나보다. 도저히 웃지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세상에 봉숭아잎을 빻아서 그걸로 손톱염색을 하는게 아니라 머리염색을 하다니!
그 문지기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가 맘에 들었는지 자기집으로 가자고 '초대'제안을 해온다. 얼씨구나 하며, 집이 사원에서 멀리 있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리킨다. 계단과 이어져있는 작은 동굴이 바로 그들의 집이었다. 세상에.
동굴안 집은 일단 덥지 않아서 좋을 것 같았다. 긴 침대위에 그들 전가족이 함께 기거를 하고 있었다. 부엌이라고 부를만한 공간도 따로 없고 그저 작은 동굴이 방이자 부엌이자 아이들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또 손님대접을 한다며, 점심에 먹다 남은듯한 낭 몇조각과 차를 내온다. 낭은 따로 접시에 담는 것이 아니라 침대위의 시커먼 이불을 접시 삼아 놓고 찻잔도 여기저기 입술지문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그다지 더럽다는 생각이 안든다.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놀던 아이들이 들어오자 일렬로 세워놓고 소개를 시켜준다. 큰아이는 아직 안 돌아왔고 사원앞에서 놀던 둘째와 셋째다. 낯선 외국인 손님앞에서 키득키득 웃기만 하는 그 아이들은 잠시뒤 어디선가 또래의 친구들을 또 데리고 왔다. 귀한 외국인 손님이 우리집에 왔다고 구경시켜 주려는 게다. 따라들어온 아이들과 그들 가족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싱긍벙글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아니라 아무래도 그들이 날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큰 것 같다.
동굴 한구석으로 얼마 안되는 살림살이들이 이사라도 할 모양으로 따로 꾸려져 있는게 눈에 띈다. 왜 저렇게 쌓아두었냐고 물었더니 그 문지기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또 싱긍벙글하며 대답을 한다.
"우리 곧 이사 갈거야. 아까 사원옆에 한참 새로 짓고 있는 공동주택들 봤어? 그중에 우리집도 있어. 사원측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문지기를 했다고 그 공으로 새집을 지어주는 거라고. 그래서 이사갈 준비를 미리 해놓는거야."
"언제 이사가는데요?"
"한 시월쯤에."
시월이면 아직도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들은 벌써부터 새집으로 이사갈 준비에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때부터 줄곧 그 작은 동굴에서만 살아왔다는 문지기 아저씨의 '집'에 대한 소박한 소망이 드디어 올 시월이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동굴집에서 지상의 번듯한 새집으로 이사간다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행복해하는 그들 부부를 보니 가슴이 울렁거리는게 마음 한구석이 싸아해져 온다. 아저씨는 그 행복한 표정으로 마치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두가 다 알라의 보살핌 덕이지".
어린 막내 아들 녀석만큼은 제발 공부를 잘해서 자기처럼 또 사원 문지기를 안했으면 좋겠단다. 어렸을 때, 아저씨의 아버지도 그렇게 사원문지기 하는걸 싫어해서 매일 '공부하라'고 다그쳤지만 워낙에 노는걸 좋아하다보니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아버지 뒤를 이어 사원 문지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지기 아저씨의 말을 빌자면, 그 막내 아들녀석도 어찌나 공부를 싫어하고 못하는지 꼭 자기 어렸을때를 보는 것 같단다. 그래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한다. 또 자기대를 이어 삼대째 문지기 가문이 탄생할까봐.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모두가 다 '알라의 보살핌 덕'이라고 말하는 그 아저씨네 가족은 우리가 영원히 알지 못하는 '행복의 비법'을 이미 오래전에 체득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것은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이방인들에게 따뜻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비법'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땅이 관광객들에게 한없이 모욕을 당해도, 그리고 예전에 잃어버린 그들의 왕국이 지금까지 모욕을 당해 왔어도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수 있는 비법만큼은 모욕당하지 않은 것이다.
쑤공타를 나오면서 돌아보니 그들 문지기 아저씨네 가족도, 샤리파처럼 오랫동안 우리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얼굴들은 싱글벙글한채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