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대신 '게다'를 신은 아이들

몽실언니의 동화작가 권정생 <슬픈 나막신> 펴내

등록 2002.08.18 18:51수정 2002.08.1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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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슬픈 나막신> 표지

<슬픈 나막신> 표지 ⓒ 우리교육

"다른 사람은 잉크로 글을 쓰지만 권정생은 자신의 피를 찍어서 쓴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 제대로 된 글쓰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체험이다. 체험에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간접체험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직접체험이 가장 중요하다. 이오덕 선생의 이 한마디는 체험이 결여된 채 문체만 잘 다듬어낼 줄 아는 최근 젊은 문인들의 붕어빵식 글쓰기에 쐐기를 박는다.


그렇다. 권정생 선생의 글쓰기는 남 다르다. 늘 좋지 않은 건강을 안고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하게 보이는 집에서 여기 저기 쑥쑥 솟아난 풀포기처럼 그렇게 자연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할아버지가 권정생 선생이다. 또한 권정생 선생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동화작가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을 다룬 스테디셀러 <몽실언니>도 그렇다.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당시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권정생 선생이 동화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우리 역사의 한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펴낸 <슬픈 나막신>도 일본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생활상을 다룬 내용이다. 이 또한 일본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살았던 어린아이 권정생 자신과 어린아이 권정생을 둘러싼,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슬픈 나막신>은 재일교포라는 이름표를 달고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을 새롭게 되살려놓고 있다. 전쟁의 쓰린 상처를 안고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그 사이에서 재일교포 1세로 태어나는 우리 나라 아이들, 그리고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일본 아이들...

<슬픈 나막신> 그렇다. <슬픈 나막신>은 말 그대로 '슬픈'은 우리 나라 사람을 상징하며 '나막신'은 일본 사람을 상징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 짚신을 신지 않고 일본 '게다'를 신고 있기 때문에 슬프다는 것이다. 그리고 게다는 일정 정도의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는 것이다.

<슬픈 나막신>은 2차대전 당시 일본 도쿄 근처의 작은 마을인 '혼마찌'에서 살아가는 우리 나라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이야기다. 다닥다닥 잇대어 지어진 나가야 집에는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연이어 태어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준이. 준이의 친구들 역시 조선 아이와 일본 아이가 마구 섞여 있다. 그래서 준이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조선 사람, 일본 사람 편을 갈라놓고 서로 욕하며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역시 아이일 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빨아먹는 살구짠지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양복을 쫙 빼입은 아빠와 마님같은 엄마를 둔 하나꼬. 혼마찌 아이들은 그 하나꼬를 부러워 한다. 그러나 하나꼬는 외로운 아이다. 친부모는 죽고 동생 스즈꼬는 고아원에 둔 채 혼자 부잣집에 수양딸로 와 있는 것이다. 마에다씨 부부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가슴으로 울음을 삭여야 하는 하나꼬. 하나꼬에게는 머리 없는 소복 귀신이 유일한 친구다.

남몰래 독립운동을 하는 큰형을 자랑스러워하는 준이. 하지만 준이는 작은형이 징병되어 일장기를 흔들며 떠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편 먹을 것이 없어서 푹 꺼진 배를 잡고 놀다 하늘이 핑 돌아 쓰러져 버리는 에이꼬. 에이꼬와 하나꼬는 준이를 사이에 놓고 경쟁한다. 그러나 조선 사람, 일본 사람 모두 가난하고 가엾다는 것을 깨달은 에이꼬는 하나꼬와 화해한다. 그러나 하얀 눈이 혼마찌를 소복하게 덮은 날, 아이들은 에이꼬의 영구차를......


a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 이종찬

<슬픈 나막신>에 실려 있는 판화가 이철수씨의 선풍(禪風) 표지 그림도 이 책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마치 <슬픈 나막신>을 판화 속의 굵은 선으로 압축해 놓은 것 같다. 어찌보면 권정생과 이철수, 이철수와 권정생은 닮은 꼴이다. 아니 같은 종이다.

"이인자 선생님(이오덕씨의 부인)께서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책을 내기 위해 읽어 보니 얼굴이 활활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왜 이렇게밖에 못 썼나,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권정생 '출간사' 중에서) 우리교육(7000원)

슬픈 나막신 - 우리문고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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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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