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현 오빠의 새 음반 재킷 사진을 쿠바(Cuba)에서 찍었단 소문이 있길래, 일단 사진들부터 유심히 살펴보았다. 헌데 쿠바 하면 떠오르는, 무두질하는 듯한 강렬한 태양의 이미지는 그다지 살아나지 않은듯 하다. 커버에서 잔뜩 가오잡는 강타의 사진도 어둡고 침침한 톤이고, 다른 사진들도 주로 '오빠'의 얼굴을 포착하는데 주력한 결과물이다.
'이 정도 사진은 스튜디오에서도 얼마든지 조작으로 찍을 수 있다'란 반응과 '이런 칙칙한 사진 찍을 거면 베를린에 가지 그랬냐'란 냉소를 대놓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이런 억측은 해볼만 하겠다. 즉 쿠바나 라틴 아메리카가 갖는 '이미지', 특히 근래 월드뮤직 바람이 불며 생긴 막연한 '멋'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이게 음반과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들어보고 판단할 일이다.
음반은 막 로라 피지(Laura Fygi)의 음반에서 뽑아낸 듯한 간결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된다. 심벌과 스네어를 가볍게 톡톡 건드리며 유럽풍 재즈 흉내를 내는 '아침'이다. 어찌된 일인지 30여초만에 끝나는데, 이런 짧은 연주곡은 이후에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 아마도 4계절을 매개로 컨셉 앨범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었나 보다. 물론 그 컨셉이란 개념은 네 연주곡에서만 적용되고 나머지 곡들은 별 상관 없으니 개의치 않아도 될 듯하다.
첫 곡에 이어지는 'Happy Happy'는 뜻밖에도 뮤지컬 종반부에 등장할 법한 스윙(Swing)이다. 물론 이는 댄스가요 편곡에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스타일을 참조한 정도니까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규모있는 브라스 섹션과 간간히 들리는 케니 버렐(Kenny Burrel) 식의 기타 연주가 존재하지만, 가요의 필수 조건은 죄다 갖췄다. ABAB에 브릿지의 멜로디 전개, 착한 가사 등등.
앨범 후반부의 'Flower'는 이보다는 조금 더 요즘 컨템포러리에 가까운데, 적당한 시점에서 프레이즈를 죽 내뿜는 혼 섹션이나 가볍지 않게 사용하려 애쓴 키보드 사운드 등이 '노력상' 정도는 줄 만하다. 앨범 말미에 자리한 '이별 후에는'은 성큼성큼 거니는 피아노 터치와 중반부 이후 곡을 주도하며 흐드러지는 테너 색소폰, 달짝지근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심벌만 줄창 두드리는 드러밍이 어우러져 괜히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이나 로라 피지가 떠오르게 만든다.
물론 이건 재즈의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인 '즉흥성'을 무시하고 들으면 그런대로 넘어갈 만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 스윙하는 분위기였다면 강타는 '김현철의 음악적 제자'라는 평가를 들을뻔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음반판매량에 영향이 있을 터이니, 이후부터는 원래 하던대로 밀어붙인다. '북극성'같은 발라드 한 두 곡이면 차트 1위는 따놓은 당상 아니겠는가.
소녀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사랑은 기억보다'와 '추억은 기억보다'가 사랑노래 투톱을 형성한다. '상록수'나 '야상곡'도 여기에 가세하는데, 앞의 재지한 노래들이 짱났다면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칠현 오빠 멋져'를 외칠 법도 하다. 적당한 오케스트레이션에 기승전결 구조의 안전한 멜로디, 소녀들의 가슴을 적시는 노랫말, 목소리는 좋으나 영혼은 없는 강타의 보컬. 그런데 어째 '북극성'보다는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비슷한 노래가 둘씩이나 있어서 그런가.
슬픈 발라드 곡이 존재한다면 가지치기 차원에서 댄스곡 한둘 수록은 당근이다. '프로포즈'는 젝스키스에게 줬으면 좋았을 미드템포 러브송이고, 'The Best'는 신화의 아무 음반에서나 무작위로 뽑아낸 듯한 '워너비 엔싱크' 댄스곡이다. 후자는 두들겨대는 비트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배킹 보컬이 무대 연출하기 좋을 듯하다. 단, 신화는 6명이지만 강타는 혼자이므로 비슷한 노래 부르면 순위에서는 불리할 것 같다.
쿠바에서 사진 찍으며 영감받은 듯 '2032 in Cuba'란 곡이 있다. 꾸바 음악을 기대했다가는 오케스트레이션의 인트로에 피아노의 악보대로 치는 반주가 이어지는 재즈 발라드에 허탈함만 맛볼 것이다. 곡이 훌륭하면 그것도 흠이 안되겠지만, '2032 in Cuba'는 재즈 흉내를 내다만 수많은 가요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적당한 건반 터치, 미리 작정하고 감행하는 보컬 애드리브, 쳇 베이커(Chet Baker)처럼 보이고 싶은 표정의 보컬. 이런 재즈풍 가요(혹은 가요풍 재즈)를 두고는 '멜 토메(Mel Torme)도 있고 냇 킹 콜(Nat King Cole)도 있는데 왜 유독 한국 가수들은 다 쳇 베이커 표정이냐'는 불평까지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강타 2집은 재킷 이미지도, 쿠바 소재의 노래도 한결같이 '쿠바'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짚었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강타는 이수만 사장님의 사업 계획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이수만 사장님은 쿠바의 탁월한 음악이나 태양의 이미지보다는 유행과 분위기를 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이다.
재즈풍 가요들 역시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아이돌 댄스그룹 출신의 강타에게 재즈는 음악적 방어벽 역할을 한다. 문희준이 록음악 흉내로 뮤지션 흉내를 내듯이, 강타 역시도 애써 재즈라는 이미지를 차용함으로 과거의 굴레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재즈에 라틴 아메리카까지, 멋있어 보이는 여피 취향의 악세사리들은 죄다 걸친 셈이다.
그런데 결과는? 강타가 참 많이 애쓰고 노력한 건 알겠다. 그래도 다섯 놈중에 제일 양호한 것도 충분히 알 것 같다. 헌데 SM 딱지가 덩그라니 붙어 있는 한은 진심에서 인정하기는 힘들 듯하다. 수만 사장님 밑에서는 뮤지션 강타의 길은 험하고도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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