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중
우리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시(詩)란 줄을 치고 의미를 외워서 답안지 위에 고스란히 정의해야할 부담스런 이름의 다름 아니었다. 그런 시기에 농무라는 詩로 이름이 알려졌던, 우리 문학사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분이 신경림씨가 아닌가 한다. 그의 첫 작품과의 대면이 비록 인위적으로 이루어진 정형화된 제도 안에서의 안타까움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그의 시집 <뿔>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한결 가볍다. 줄치고 외울 필요도 없기에 의미를 한정지어 정답을 찾아도 되지 않기에 말이다.
그의 시집 뿔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의 출생연도 1935년, 희수(稀壽)의 나이에 그가 담아낸 시들은 삶의 일상에서 그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혹은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에서 그만의 서정을 응축시켜 인간사를 얘기하는 듯도 하다.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 번도 쓴 일이 없다/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뿔' 중에서)"라고 하며 세상 살아가며 일상에 젖는 사람들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우리 개개인의 삶이라는 것들이 새로운 감성과 이상을 향한 꿈을 꿀 여유도 없이
"쟁기를 끌면서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큰 눈을 꿈뻑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며 그렇게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이 현실의 직시가 때로는 섬뜩하다.
그의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것에 대한 모색은 스스로의 발길을 한가함 속에 묶어 두지 못하기에 고달프고 힘든 것이다. 그 운명적 기질은 시집의 첫 시부터 선명하게 빛깔을 드러낸다.
"외진 별정 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중략>.../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지도 모른다)'떠도는 자의 노래' 중에서)"며 시인 스스로 자신의 유랑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단순한 고통과 고달픔만은 아니다. 오래 누적되어가는 삶의 행로는 오히려 자신과 엉키어 가면서 낯설음이
"눅눅하고 퀴퀴해서 한결 편해지는 잠자리 ('陋巷遙' 중에서)"처럼 낯익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가 걸어가는 길은 편안한 집구석의 따뜻한 아랫목을 향한 것도 아니오, 속물 젖은 세상의 안위를 향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꿈꾸기도 했던 편안한 현실이 부질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무소유의 깨우침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에 그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내 눈 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그 길은 아름답다' 중에서)"라고 말한다.
이러한 여정속에서 그는 주위의 갑작스러운 낯설음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죽어서나 빠져나갈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에 나를 가두었던 것이/눈에 익은 얼굴과 귀에 밴 말들이었던가/아는 얼굴이 없고 남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해/비로소 얻게 되는 이 자유와 해방감 ('사막'중에서)"을 아이러니컬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시인의 말처럼 '또 다른 사막임'을 알면서도….
시인도 인간일 수밖에 없기에 또 다른 사막에 대한 회의와 삶의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에 스스로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내 멀리 보겠다고 더 널리 보겠다고/성벽 안에 살면서는 성벽을 허물려 무진 애를 썼지만,/성벽이 무너진 지금은 또 그것을 쌓으려 안간힘을 다한다('내 허망한'중에서)"며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어느 덧 윤회하는 인간의 모습으로까지 지평이 확대되며 그 안에서의 자신을 본다.
"한 번도 나만의 나로 산 일이 없어서/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가/늘 내 속에서 함께 살아서./내 생각을 지배하고,/내 감정을 다스리고,사랑하고 미워하면서,/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다투면서/내 일생은 이들을 내 속에서 몰아내는/싸움, 이들로부터/도망치려는 뜀박질/그러는 사이 예순을 넘겨, 이제/지치고 지쳐서 내 안에서 제 각각 살아 있는/...<중략> ('한 오백년 뒤의' 중에서)" 조상들의 모습을 바라다가 그 속에서 동일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내가 그 안에서 들어가 살 한 오백년 뒤의,/나를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우고/나로부터 도망치려고 힘껏 뜀박질을 하는/한 오백년 뒤의 나를 ('한 오백년 뒤의' 중에서)" 직시하는 것이다.
시인의 멈추지 않는 흔적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출발이면서 동시에 그 삶을 받아들이며 함께 녹아들고 있는 순환의 알레고리 같은 것이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 또한 사물에 정의를 내리고 결말짓는 것이 아니며 세상 모든 것들과 새로운 발자국을 찍어가며 가는 고행을 택해 변화하는 대상과 끝없이 동행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운명적 삶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다니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시인의 서정으로 흡수하고 뿜어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몇 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은 그렇다고 단순히 자아의 울림에서만 맴도는 시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안에는 현실의 부조리한 것에 대한 날카로움이 또한 퍼렇게 숨쉬고 있기도 하다.
이 시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삶의 여유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 찌들린 삶 속에서 나의 여유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반문. 하지만 이 시를 음미하기 시작하면서 찌들리지도 못했으면서도 틈새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촌철살인의 기지도 없고 한없이 물렁한 나의 삶에 회의가 들었다.
뿔 - 신경림 시집
신경림 지음,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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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여정의 길목에 서 있는 신경림의 신작시집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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