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미국 뉴욕, 워싱턴 강타한 자살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연합뉴스
'테러와의 전쟁'을 정식화시킨 9·11 테러
여기에 공중 납치된 비행기의 충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가공할 연무를 내품으며, 말그대로 '와르르' 주저앉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장면은 순간적으로나마 우리 자신을 묵시록의 실감시청대에 머물게 해주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점이야말로 9·11 테러의 가장 중요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9·11 테러를 부시 정권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92인승 보잉 767기가 최초로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84층과 85층 사이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장면은 아마츄어 카메라맨에 의해 우연히 촬영됐다고 하기엔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이처럼 TV를 통해 나타난 9·11 테러의 참상을 그처럼 환상적인 각도에서 다양하게 촬영한 카메라 앵글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고는 얻기 힘든 그림들이었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점은 9·11 테러 직전, 미국에서는 영화 '진주만'이 상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의 메이저 방송과 언론에서는 이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묘사했다. 실제로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9·11 테러를 당한 미국인들의 쇼크는 진주만 공습 때와 유사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섬에 불과한 진주만 공습에 비해, 9·11 테러는 미국 본토 그것도 미국 경제와 국사력의 상징인 뉴욕의 맨해튼과 펜타곤을 강타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이 더 컸을 뿐.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국은 9·11 테러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해서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사실을 미국 정보국에 사전 경고한 인물은 다름아닌 한국인이다. CIA의 전신인 OSS 요원이었던 한길수씨는 미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암약하며 진주만 공습 일자를 정확히 파악해 미국에 여러 차례 경고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9.11 테러와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에 참여할 명분을 얻기 위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뒤에 담긴 부시의 숨은 의도
진주만 공습 후,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했던 미국은 9·11 테러 후, 빈 라덴을 테러 배후 인물로 지목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시가 9·11 테러의 배후 인물로 빈 라덴을 지목하자 세계 언론의 관심은 빈 라덴이란 인물과 그의 근거지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시는 느닺없이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은거하고 있다며 갑자기 탈레반 정권을 향해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했다. 그리고 탈레반의 오마르가 이에 불응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거침없이 아프간 침공을 감행했다.
부시가 아프간 침공을 감행하자, 미국의 방송과 언론은 아프간 침공이 자칫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아프간의 탈레반군은 전투하기에 열악한 지형 환경을 기반으로 미국의 지원하에 치열한 게릴라전을 전개해 구소련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독립을 쟁취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불과 2개월여 만에 탈레반 정권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신개념 과학에 근거한 미 특수부대의 전투력은 구형 무기와 낡은 전술에 의존하던 구소련군의 전투력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군의 아프간 침공은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프간을 장악하던 탈레반 정권은 항복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부시가 아프간의 침공 구실로 내세운 빈 라덴과 오마르의 행방은 묘연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당화한 미군의 침공 후 아프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만신창이가 된 아프간 정권이 미국이 원하는 인물로 교체됐다는 점에 불과했다. 그것도 가공할 폭격으로 비참하게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조각난 시신을 대가로.
하지만 바로 그 점이야말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실질적인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빈 라덴이나 오마르가 아니었다.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아프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이었다.
아프간 침공 이후 지금까지 세계 언론의 최대 관심은 빈 라덴의 생존 여부지만, 부시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빈 라덴이 살았으면 그만이고, 설사 죽었더라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제2, 제3의 빈 라덴이 나올 것이고, 미국은 그 가운데 적당한 인물을 골라 '9·11 테러'와 같은 환상적인 이벤트를 통해 '적그리스도'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시 정권의 아프간 침공 의도가 단지 아프간의 정권 교체를 통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뿐이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그보다는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을 전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키며 은연중에 그것을 정당화시켰다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야말로 9·11 테러 1주년을 기념해 고취되기 시작한 미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해 자신이 '악의 축'이라 규정한 후세인 제거를 공언하며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는 부시의 숨은 의도라고 생각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기묘한 수사학에 담긴 의미는 바로 이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혹자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흔히 미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로 간주하는 11월 중간 선거를 의식한 쇼맨십으로 평가절하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기존의 국가간 전쟁은 유엔의 룰에 따라야 하는데,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을 국가 대 테러국가의 전쟁으로 변질시킴으로써 유엔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묘한 근거'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야말로 유엔 승인을 거쳐 이라크를 침공해야만 했던 걸프전 당시의 부시(아빠)와,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유엔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는 부시(아들)의 차이인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을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간 전쟁에서 정식화시키겠다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의 이민 정책과 비자 발급
9·11 테러를 계기로 부시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묘한 수사학을 정당화시킴으로써 미국이 유엔을 벗어난 초월적 지위를 확립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국이 바야흐로 유엔을 세계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슈퍼 국가로서의 대외 입지를 구축한 미국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내 권력 구조와 행정 구조를 슈퍼 국가에 적합한 시스템으로 개편하는 작업이었다. 9.11 테러 이후 변화된 미국의 이민 정책과 비자 발급, 그리고 국토안보부 신설은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오가는 외국인들이 경험한 가장 뚜렷한 변화는 아마도 까다로워진 공항에서의 입국 심사와 이민 정책의 강화였을 것이다. 부시는 테러용의자의 입국을 원천 봉쇄한다는 핑계로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출입국 통제 시스템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테러범들의 입국을 적발하지 못해 비난받았던 이민귀화국(INS)에 대해 미 하원은 지난 4월 25일, INS를 해체하고 국경 통제와 이민 서비스를 각각 관장하게 될 2개의 신설 기관으로 업무를 이관하는 내용의 법안을 405 대 9로 가결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미 행정부는 모든 외국인의 합법적 신분 여부를 이민귀화국에 조회하도록 하였고, 사회보장(Social Security) 번호 발급 규정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비자 발급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비자 신청자에 대한 인터뷰의 의무화와 함께, 최근에는 6개월 체류가 가능했던 관광 비자의 체류 기간마저 1개월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뒤따르고 있다. 요즘 미국내 상당수 이민자들이 영주권을 포기하고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9·11 테러 이후 급격하게 달라진 이같은 미국내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9·11 테러에 따른 외국인에 대한 검색 강화는 엉뚱하게도 미국내 지위가 불안정한 불법 체류자들에게로 그 불똥이 튀고 있다. 9·11 테러를 계기로 형성된 미국내 아랍인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경계가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미국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9·11 테러 이후 미국내 암약중인 테러리스트를 색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FBI와 이민귀화국은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화해왔다. 연합통신에 따르면, 올 한해 동안 미국에서 불법체류하다가 적발되어 추방당한 한국인은 523명이었다. 이는 예년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국 권력구조 개편의 신호탄, 국토안보부의 신설
미국의 이민 정책과 비자 발급의 변화가 미국을 오가는 외국인에 대한 검색 강화 조치라고 한다면, 국토안보부의 신설은 미국내 거주하는 내국인에 대한 감시 시스템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는 9·11 테러 이후, 테러 정보 입수와 테러범 소재 추적, 입수 정보에 대한 대처 능력 등에 문제가 있었다며, 향후 발생할지 모를 테러 대비 명분을 앞세워 행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부시 행정부는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기로 하는 한편, FBI와 CIA의 대테러 업무를 대폭 강화하고, 테러범의 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이민귀화국의 조직을 재편했다.
이 개편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9개 부처 100여개 기관으로 분산돼 있는 테러방지 관련 업무를 새롭게 신설될 국토안보부에서 일괄 처리하도록 규정한 점이다. 국토안보부는 해안경비대, 세관, 이민귀화국, 국경순찰대, 연방비상관리청(FEMA) 및 교통보안청 등을 통합해 국경 및 입국자 관리를 총괄 지휘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FBI나 CIA 등 정보 기관들로부터 테러 관련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미 의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국토안보부는 연간 380억달러의 예산과 17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대형 부처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국토안보부 신설 법안은 아직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는 시민정보 고지의무 조항과 운전면허증 국가발급 조항 등을 삭제한 뒤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시의 지나친 권력집중화를 경계하며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국토안보부 직원들을 임의로 채용 및 해고할 수 있는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이 노조의 단체교섭권 및 국가공무원 시스템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를 계기로 펜타곤을 비롯한 미 정보 기관들은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먼저 팍스 아메리카의 상징인 펜타곤은 필리핀, 콜롬비아, 예멘,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세계 각지에 파견된 군대나 군사고문단으로 인해 그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오는 10월부터 시작되는 미 의회의 2002-2003 회계 연도 국방 예산은 무려 3,800억 달러로, 이는 지난 회계 연도에 비해 무려 14.5%(480억달러)나 늘어난 액수다.
그런가 하면, 9·11 테러를 사전에 감지한 일선 FBI 요원들의 테러 경고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은 로버트 뮬러 FBI 국장은 지난 5월 29일, 대대적인 FBI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FBI는 테러공격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테러전담 요원을 기존의 2178명에서 3718명으로 증원하는 한편, CIA 소속 분석관 25명을 파견 형식으로 빌려와 FBI내 '첩보실'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테러 예방을 위해 10대 주요 과제에 테러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항목을 넣고 FBI 본부 및 산하 지부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전세계의 통신 감청을 담당하며 한해 5조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 국가안보국(NSA)은 테러 관련 업무 강화에 나섰고, CIA는 준군사 부대를 창설했으며, 미국의 주 방위군과 예비군의 복무 기간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지난 7월 4일, 대낮 총격 사고가 발생한 LA 국제 공항은 앞으로 1500만 달러를 투입해 내년 초까지 야간 투시가 가능한 감시카메라 1200대를 증설하도록 하는 등 미국내 보안 시스템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죠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의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임종태 기자는 다큐멘테리스트로 KBS 5·18 20주년 특집 '광주항쟁, 그후 20년'을 제작했으면 본격 미디어 비평서인 '스타메이커'를 집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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