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반디꿈

등록 2002.09.15 18:37수정 2002.09.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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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넷이라는 남양주 YMCA에서 운영하는 모임이 있다.


왜 하필 반디일까. 그것은 반디가 수질을 포함한 생태환경의 가장 민감한 경보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반디는 그들이 잃어버린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환경에 대한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이런 점에서 반디는 가재보다 더 상징적인 힘을 갖는다.

그 반디모임에서 전화가 왔다.

수동에 반디 탐사를 하려는데, 수사모(내가 살고 있는 수동의 작은 모임이다)도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루 전의 연락이라 부랴부랴 수사모 게시판에 알리고, 몇몇 분들께 함께 하실 것을 연락 드렸다.

저녁 7시 20분경에 보린교회 앞으로 불당쇠님, 샘물님과 함께 나가 보니, 남양주Y 총무님이 봉고를 몰고왔다.

첫 번째로 청룡마을을 가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곳은 청룡마을이 아니라 가재말이었다. 밤도 깊었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도로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꽤 넓은 들이 나온다. 경사도 완만하고 개울도 길 옆으로 이어져 흐른다.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하긴 했지만 아직 입주가 안 되어서 거의 인가가 없는 그곳 길목엔 남양주시에서 세워 놓은 반디생태마을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반디모임에서는 그런 안내판 같은 격식을 부담스러워하지 말자고 했지만, 시에서는 아무래도 홍보와 주민들의 참여를 바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려 익숙한 솜씨로 장화를 갈아신고, 포충망과 헤드랜턴을 나눠준 이병학님을 따라 우선 개울가로 다가서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말 신비로운 연두색 빛이 까물거린다. 그것은 거의 꿈결과 같았다. 야맹증이 있는 데다 처음 가는 개울 풀 섶 길을 어쩌나 망설이는데 이병학님은 곧바로 개울로 내려서서 건너편으로 날아가는 반디를 포충망으로 포획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반디를 가까이서 만나게 되었다. 이따금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디를 보긴 했지만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긴 처음이었다. 늦반디불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그래도 애반디보다는 큰 편이란다.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 뜨겁지 않은 반딧불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 뜨겁지 않은 반딧불이형덕
라이터불을 점멸하면 신기하게도 반디가 따라왔다. 암컷의 불로 오인하는 듯했다.

잡은 반디를 놓고 이병학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었다. 날아다니는 반디는 수컷이고, 암컷은 날개가 퇴화되어 풀 섶에 앉아 있다고 한다. 수컷이 일으키는 빛을 보고, 암컷이 몸을 비틀어 꽁무니의 발광체를 내보이면 순간적으로 불빛이 보이는데 그것을 발견한 수컷이 찾아가 짝짓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반디의 짝짓기에서 이 연두색 불빛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단다.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나 가로등은 치명적이라고 하는데, 주변이 밝으면 아예 발광을 하지 않거나, 하여도 암수가 서로를 찾을 수 없어서 짝짓기를 못하고 만다는 것이다.

반디를 찾아 이리저리 뛰는 동안 우리 모두는 아이가 됩니다
반디를 찾아 이리저리 뛰는 동안 우리 모두는 아이가 됩니다이형덕
가재말은 우선 인가가 없고, 개울이 있어서 반디의 좋은 서식 조건을 갖추었는데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애반디 200여 마리를 목격하는 귀중한 감동을 얻었단다. 애반디는 7월초에서 8월중에 자주 나타나는데 몸집이 작으나 수가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해 늦반디는 9월초부터 주로 나타나는데 몸집이 크고 해발이 높은 지역부터 출몰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가재말 위쪽으로 올라가자니 전에는 없었다는 불빛이 보이는데, 투견사육장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곳의 반디들도 상당수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하늘나리님의 전화가 왔다. 들녘님께서 보린교회 앞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갈 참이니, 두 번째 장소인 광대울 쪽으로 가 계시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이 잠잘 시각을 놓칠까 봐 먼저 들어가신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보았으면 참 좋아했을텐데….

포충망을 들고 이리저리 뛰는 불당쇠님이나, 어둠 속에서 까물거리는 반디불빛을 만날 때의 설레임을 느끼면 정말 아이들에게는 이런 반디 탐사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감동이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팍팍해진 내 마음에도 이런 설렘과 아름다움이 남겨지거늘 아이들에게야 어떨까. 아마 아이들은 어느 곳, 어디에 가서 살든지 어린 시절의 반디를 쫓던 그 황홀한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광대울로 넘어가자면 우선 내가 사는 집 앞을 지나야 했다. 집 오르는 길에 차를 세우고, 내 차로 움직이려는데 샘물님이 외친다.

어, 여기도 있네. 개울 풀 섶 위로 날아다니는 반디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어설프던 불당쇠님의 포충망 솜씨도 점점 익숙해져간다. 크기도 가재말보다 훨씬 크다.

나는 부끄럽고 놀라웠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곁에 이런 아름다운 생명들이 살고 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니... 이따금 밤늦게 부엌 창 밖으로 연두색 사선을 그으며 지나는 반디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떼를 지어 있을 줄은 몰랐다. 미안해 반디야.

이번엔 광대울로 넘어가 본다.

물골이 있는 개울 부근을 가보려는데 막상 고갯마루에 오르니 들깨를 심었던 밭 자락에 날아다닌다. 거기서 두 마리 체포.

이번엔 폐가 부근으로 간다. 아, 이건 반디 천국이다.
주인도 떠나고, 버려진 집과 풀만 무성한 그곳을 반디들이 지키고 있었다.

십여 마리가 쉽게 눈에 띈다. 그뿐만이 아니라 풀 섶에 가만히 앉아 반짝이는 녀석들도 있다. 암컷인 줄 알고 잡아보니, 무슨 쐐기벌레 같이 생겼다. 이병학님 말로는 유충이라고 한다. 대체로 유충은 한 해나 두 해가 걸려서 반디가 된다 한다.

애반디가 고여 있는 물 부근에 주로 서식하는 데 비해 늦반디는 흐르는 개울물과 그 주변의 풀밭, 특히 공동묘지 부근에 많다고 한다. 광대울은 우선 개울과 풀밭과 오래 된 무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가가 없고, 가로등이 없다. 불빛이라고는 달빛 밖에 없다. 거기서 그들은 매일 여름밤의 꿈을 꾸고 날아다닌 것이다.

반디모임에서는 남양주 지역의 반디 서식지를 지난해부터 조사해왔다고 한다. 해질녘에야 나오는 반디를 잡아 일일이 수를 세고, 크기와 종류를 파악하고, 일부는 등덮개에 번호를 새기어 생명주기나 이동경로까지 파악하는 일이니 자칫 새벽 두 시까지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단다.

공연히 잘 사는 반디 괴롭히는 일 아니냐는 비뚤어진 시각도 없는 건 아니지만 한두 마리의 반디를 살리는 것보다 지금 시급한 것은 환경의 오염으로 아예 그 서식지 자체가 위협받는 거란다. 왜냐하면 반디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기 때문이란다.

살피고 난 뒤의 반디는 모두 숲으로 돌려 보냅니다
살피고 난 뒤의 반디는 모두 숲으로 돌려 보냅니다이형덕
그렇게 조사한 서식자료를 토대로 남양주 지역에 반디생태마을을 조성하려고 하는데, 무엇보다 반디마을의 조성 목적은 생태환경의 보전에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을 기대하는데 그 중심에 수사모가 서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남양주에서는 덕소 시우리 골짜기와 수동 지역이 가장 반디 개체수가 많은 걸로 나타났는데, 수동에서도 광대울과 가재말이 반디마을 예정지로 손꼽히고 있었다.

9월 13일 있었던 시우리에서의 반디 탐사
9월 13일 있었던 시우리에서의 반디 탐사이형덕
반디 생태마을의 지정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인데, 주민들이 도와 줘야 할 일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자제하고, 유기농을 가급적 확장하는 것, 그리고 반디의 짝짓기 시기에 가급적 가로등의 불빛을 꺼 놓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디모임에서는 반디마을 주민들을 위해 시와 협조하여 유기질 비료를 무상 보급하고, 그 밖의 지원책을 궁리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외지에서 수동을 넘나들며 수시로 개체수를 파악하기 힘드므로 현지에 사는 수사모님들의 도움을 청하는데, 도울 일은 수시로 주변을 살펴서 반디가 몇 시에 몇 마리가 나타났는가를 일기 쓰듯이 기록하여 알려주는 모니터링이다. 또 나중에 여건이 되면 수동 지역의 반디마을을 중심으로 생태환경 문화 프로그램이나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힘을 더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한다면 가정에 반디 인공사육 시설을 분양해 드린다고 하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한번 신청해 보시기를….

열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지만 뒷 얘기를 나누며, 지난 해 수사모 게시판을 달구었던 반디 이야기가 단순한 한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요한 주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흔히들 말한다. 반디가 밥 먹여 주는가. 세상 살기도 힘든데 반디불 구경이라니….

그러나 이제 그 말은 사라질 판이다. 세상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밥보다 환경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반디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쩌면 밥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반디에 관한 생태 프로그램이나 모임에 관심있으신 분은 '반디넷'http://www.vandi.net 에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좀더 자세한 관련글을 보실 분은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http://sigool.com을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반디에 관한 생태 프로그램이나 모임에 관심있으신 분은 '반디넷'http://www.vandi.net 에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좀더 자세한 관련글을 보실 분은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http://sigool.com을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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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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