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잘 영근 벼이종찬
알알이 영근 벼알갱이에서 뚝, 뚝, 떨어지는 하얗고 동그란 물방울, 물방울. 연초록빛을 띠며 익어가는 감과 감나무 잎사귀에서도 투두둑, 투두둑 떨어지는 하얗고도 동그란 물방울, 물방울. 그때 풍경처럼 열심히 산길을 올라가던 조카가 비릿한 비내음을 풍기며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삼촌! 벼는 익을수록 저렇게 고개를 숙이지만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네요?"
"짜아슥! 그래서 어쩌겠다는 긴데? 니도 커서 보리처럼 다른 사람들한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 이 말이가?"
"아뇨.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짜아슥! 어디 쌀하고 보리하고 품질이 같더나?"
어머니 산소로 올라가는 길목부터 우리는 벌초를 하기 시작했다. 제초기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보리타작을 하는 소리를 연상케 했다. 큰 형과 둘째 형이 각각 제초기 한 대씩을 메고 먼저 풀과 여러 가지 잡초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잘린 풀들을 치우고 간혹 남겨진 잡초들을 낫으로 대충 치는 일뿐이었다.
돌이 튀고 나뭇가지가 튀어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제초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금새 어머니 산소가 보였다. 근데 어머니 산소가 보이는 입구에 가시가 숭숭 솟아난 이상한 나무가 있었다. 한 잎사귀에서 다섯갈래의 손가락이 나뉘어져 있었다.
"이 나무가 그 유명한 가시오가피 아이가?"
"아이다. 내가 알아봤는데 그건 코나무라고 카는 기다."
"내가 보기에는 가시오가피가 맞은 것 같은데."
어머니 산소가 있는 이 산에는 일반 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나무가 많았다. 발에 채이는 것이 산초나무였다. 산란도 눈에 흔히 띄었다. 그리고 산수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초에 쓰이는 나무가 많았다.
"벌써 꾼들이 우리 산 곳곳을 몇 번씩이나 뒤졌다 아이가. 저거 봐라. 마구 다 파 뒤집어 놓았다 아이가. 하여간 요즘 눈 밝은 그런 넘들한테 알려졌다 카모 남아나는 기 없다 아이가. 산소 입구에 있는 저 나무가 가시오가핀지 뭔지는 잘 몰라도 저렇게 커서 하늘을 덮고 있으니까 눈에 띄지 않았다카이. 우리도 저 나무가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