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의 생일 케잌

차례상 만큼 살아계신 분 생일 차리기도 중요합니다

등록 2002.09.22 10:45수정 2002.09.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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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당신의 나이 조차 가늠 못하시는 장모님은 생일 케이크 촛불 끄기도 힘에 버거우시다.

당신의 나이 조차 가늠 못하시는 장모님은 생일 케이크 촛불 끄기도 힘에 버거우시다. ⓒ 황종원


조상님 신위, 다섯 글자를 써놓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느 선대 할아버님까지 모셔야 하나. 먼 할아버님께서는 이미 윤회라는 먼 길을 떠나셨을 것이다. 가까운 선대 할아버님께서는 저승 세계에서 일 처리가 마무리가 아니되어 아직 길 떠나시기 전일 터이니.


조심, 조심 살펴오세요. 중얼대며 내 마음은 영 편치를 못하다. 어느 대까지 어른들을 모셔야할 지 아는 이나 일러주는 이가 내 주위에 없다.

어른들은 다 가시고 집안의 어른이 된 내 꼴이 이렇다. 이제 내가 어느 때까지 모시겠다 하면 되는 집안의 위치이지만 얼마나 불경스로운 일인가.

동생 가족과 함께 조부모님, 부모님 양대에 잔과 절을 올리고 나서 영 마음이 편치를 못하다. 이런 일이 내 집 울타리 안에서만이랴.
선조 누대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거늘…. 내가 죽어도 이 꼴을 면치 못하리. 자승자박이며 세상의 흐름이다.

부모 공양이 첫째라고 배워온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니 내가 내 자식들에게 어찌하기를 바라랴.

아우와 함께 누이가 빚어서 보내온 매실주 석 잔에 거나해졌다. 아우와 나는 8살 터울, 60년대 댓살배기였던 아우는 추석이면 사과 한 톨 없는 가난한 차례상 앞에서 들이키시는 막걸리가 온통 눈물 되시던 아버지 모습을 기억할까.


아버지 한이 내 대에는 벗었으니 나는 매실주 몇 잔에 울지 않는다.
아우와 하하허허 대며 즐긴다.

아버지, 며누리들 잘 둔 덕에 잘 차린 차례상입니다. 아버지의 한을 우리가 풀어 드립니다. 어머니, 생전에 아버지를 밉다 하시더니 오늘은 두 분 함께 나들이 예 오셔서 어떠세요.


나는 흥얼댄다. 낮에는 가족끼리 모여 고스톱판이 한창이라는 아우 처가네 풍습이나 내 집은 아버지 때나 내 때나 조용한 일상 그대로 흔들림 없다.

밤에 늦은 잠을 잤을 아이들은 아침상을 물리자 마자 한 침대에 사촌들끼리 끼어 자고 아내와 제수씨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아우는 취기에 반은 깨다 반은 졸다가 TV를 본다.

그러다가 허기 지면 추석에도 문 여는 것으로 소문난 피자집에 전화를 건다. 득달 같이 배달 오던 다른 때와는 달리 오늘은 늦다. 이 집 저 집 한 통속인가보다.

아이들을 깬다. 피자 기상이다. 먹고 나서 게으른 오후가 지나간다.
성룡의 <러시아워>를 다 못 보고 아우는 처가로 갔다.

나도 처가로 간다. 사흘 뒤 닥치는 장모님 생신을 당겨서 하기에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당신은 아들네 계시나 마음은 나그네이시다. 막내 딸네인 우리 집으로 늘 오실 생각이시다.

생일 케잌 행사가 끝나면 우리 집으로 모실 채비가 나도 되어 있다.
요즘 생일은 시루떡이 오른 상보다 생일 케이크가 없으면 섭섭하다.
아차스럽게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동네 빵집마다 다 문을 닫았다. 아내와 나는 차를 끌고 케잌를 사려고 길을 헤맨다. 거리의 상가는 거의 문을 닫았다. 열린 곳은 24시간 편의점, 롯데리아, 특별 난 피자 가게, 구멍가게 몇몇.

올림픽 아파트 상가까지 20여분을 달려 갔다. 파리바게트 빵집이 열려있다. 황홀하다고 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 추석에도 문을 다 열다니. 토요일 마다 노는 어느 직업 집단도 있는데 이야말로 고객 만족이다.
생크림 케잌를 샀다.

그것으로 장모님 생일을 축하 케잌으로 꾸몄다. 가족들이 장모님 주위에 모였다. 89세를 알리는 촛불이 켜졌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나이도 잊었다. 이 촛불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이나 아시는지.

"촛불을 끄셔야지요."
저마다 말한다. 마지못해 목에 힘을 주신다. 당신은 한 숨에 끄지 못한다. 이제 먼저 떠나신 장인 어른을 자주 생각하시며 반쯤은 저승에 심신을 담고 계시는 장모님은 촛불 조차 번거로우시다.

자, 이제 아드님 댁에서 한참 머무셨으니 이제 제 집으로 가시자고요.
장모님의 얼굴에 벙긋 비로서 웃음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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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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