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공식화와 북한

한반도 평화 기류에 저항하는 부시 행정부

등록 2002.09.24 12:32수정 2002.10.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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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오전 군복을 입은 부시 미대통령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 오산 미공군기지에서 주한미군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지난 2월 20일 오전 군복을 입은 부시 미대통령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 오산 미공군기지에서 주한미군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냉전시대 이후 클린턴 행정부 때까지 유지해온 봉쇄와 억제에 중심을 둔 전략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적대 국가와 테러조직에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공식화했다. '부시 독트린'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부시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외교안보전략의 근간이 될 것이다.

지난 9월 20일 미국의 언론을 통해 공개된 35쪽에 달하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최우선적인 군사 행동의 대상으로 삼고, 필요할 경우 미국의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이 보고서의 전문은 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필자 주). 특히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대표적인 '깡패국가(rogue state)'로 묘사하고 있어, 임박한 대이라크 전쟁과 이후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정식으로' 채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이전까지 군사적 위협을 사전에 봉쇄하고 미국을 공격한 나라는 가공할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억지 전략보다 훨씬 공세적인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안보 전략상의 변화는 미국의 군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및 한미연합사의 전력구조와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라크와 북한을 염두에 둔 선제공격 채택은 최근 북한의 적극적인 개혁·개방 움직임 및 남북관계의 급진전,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 등으로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의 화해 및 평화 기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북한 관련 부분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치명적인 도전은 깡패국가들(rogue states)과 테러리스트들에게 오고 있다"며, 이들 깡패국가들은 냉전 시대 소련보다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를 향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냉전시대 이후에 유지해온 억지 전략으로는 이러한 위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으며, 이들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선제공격 등을 통해 무력화시켜야 하고, 미국은 그럴 의지를 갖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특히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대표적인 깡패국가로 적시하면서, "북한은 지난 10년간 세계 최고의 탄도미사일 확산자였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미사일 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켜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올초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이란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우리는 이란을 깡패국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북한과 관련해서는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을 무장해제시키려고 했던 노력은 외교적인 방법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한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을 차별화시켜, 우선적으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동시에 부시 행정부가 대이라크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다음 목표물로 북한을 삼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부시 행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사전 행동에 기반을 둔 대확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확산 전략은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과 관련해 외교에 무게를 둔 '비확산' 전략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군사적 위협 및 행사를 통해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사전 행동'을 강조한 것은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부시 행정부는 대확산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위협의 성격과 여부를 적기에 판단할 수 있는 정보력의 배가,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의 강화, 미사일방어체제(MD)의 조속한 구축 등을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확산 전략이 북한에도 '적용'될지는 두고볼 문제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적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추이를 보면, 정보력과 정밀타격, 그리고 미사일방어(MD)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부시 행정부... 그러나 변수는 많아

일단 관심사는 최근 한반도의 화해 및 평화 기류에도 불구하고 강경 일변도를 고집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미칠 파장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DJ의 햇볕정책 및 북한에 대해 회의감을 숨기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는 최근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여기에는 미국 외교의 그늘에 있었던 일본이 독자적인 대북외교를 감행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한-미-일 공조체계가 한일 주도로 넘어가고 있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커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SEM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 성명을 채택해 북미 대화 재개를 강력히 촉구한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설 땅을 더욱 좁게 만들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실험 발사 유예를 무기한 연장하고, 핵사찰 수용과 관련해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미국이 '북한위협론'에 의존해 강경정책을 고집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없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강경기조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21세기 안보전략을 짜는데, 북한위협론에 대한 의존도를 터무니없이 높임으로써 빠져나오고 싶어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을 스스로 파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의 평화 기류가 미국의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리고 북미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이른감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현재 상당한 부담감과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반도의 평화 기류를 반전시킬 변수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변수들 가운데 가장 큰 분수령은 12월로 다가온 남한의 대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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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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