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 이주민 두번 죽이는 일"

금호도 이주민 7개월째 농성, 24일 순천지법 현장 실사

등록 2002.09.25 13:46수정 2002.09.26 01:00
0
원고료로 응원
a 현장 실사를 벌이고 있는 윤관 판사(가운데)와 광양제철, 이주민회 관계자들. 광양제철과 이주민회는 이날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현장 실사를 벌이고 있는 윤관 판사(가운데)와 광양제철, 이주민회 관계자들. 광양제철과 이주민회는 이날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 조경국

광양시 광영동 금호도 이주민회(위원장 백갑순·이하 이주민회)가 반대해온 광양제철의 송전탑 건설 현장에 대해 순천지방법원 합의부(담당판사 윤준)가 24일 현장 실사를 실시했다.

이로써 이주민회와 광양제철 사이의 첨예한 대립으로 끝이 보이지 않았던 송전탑 건설 문제가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됐다.

이날 현장 실사에는 이주민 100여명과 광양제철, 삼성전력, 지역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현장 실사중 주민들과 광양제철 관계자 사이에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큰 불상사 없이 진행됐다.

송전탑 건설에 적극 반대하고 있는 이주민회는 지난 80년에 광양제철 부지로 금호도가 포함되면서 광영동으로 이주한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당시 광양제철 측에서 광영동에 주택과 상가 등 이주촌을 건설해 금호도 주민 약 300세대가 이주했다.

이주민회는 광영동 주위에 9기의 154Kv 송전탑이 이미 건설돼 집 값 하락, 환경파괴, 전자파 문제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6기의 345Kv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주민회 "송전탑 건설 이주민 두 번 죽이는 일"

a 광양제철이 건설 중인 345Kv 송전탑과 이설하게될 154Kv 송전탑 위치도면. 사진 오른 편이 광양동이며 7만6천평의 주거지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광양제철이 건설 중인 345Kv 송전탑과 이설하게될 154Kv 송전탑 위치도면. 사진 오른 편이 광양동이며 7만6천평의 주거지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 조경국

이주민회 대표로 현장 설명을 한 백성호(이주민회 간사)씨는 "만약 송전탑 공사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광영동 주민들은 재산 피해뿐 아니라 전자파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154kv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으로 피해를 본 것만 해도 엄청난데 또 다시 345Kv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광양제철 쪽은 96년 단 한 차례 주민 설명회를 가진 후 주민들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고압선을 땅 속에 묻는 지중화 공사를 한다면 반대할 의사는 없지만 광영동 주위에 더 이상의 송전탑 건설은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광양제철이 금호도 주민들을 광영동으로 이주시키면서 1가구 1인 이상 취업을 보장하는 등 생계대책을 마련해주기로 했지만, 주택과 상가 보상 외엔 아무것도 지원해준 것이 없다"며 "그것도 모자라 송전탑까지 세운다면 이주민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광양제철이나 관련 업체에 취업한 가구수는 5%밖에 되지 않으며, 어업과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다 도심으로 이사온 후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어 파산한 이주민들이 많다"며 광양제철과 관계 기관에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현재 주택이나 상가로 보상받은 이주민 300여 가구 중 현재 85가구는 보상받은 주택을 팔고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대부분 광양 컨테이너 항이나 건설현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a 송전탑이 들어설 광영중학교(오른쪽 큰 건물) 뒷편 가야산 능선. 이주민회는 송전탑이 건설될 경우 주거지역과 송전탑 사이의 직선거리가 50m밖에 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송전탑이 들어설 광영중학교(오른쪽 큰 건물) 뒷편 가야산 능선. 이주민회는 송전탑이 건설될 경우 주거지역과 송전탑 사이의 직선거리가 50m밖에 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 조경국

광양제철의 한 관계자는 "광영동 주민 대표들과 합의를 거쳤지만 이주민회만 반대하고 있다"며 "이주민회가 주장하고 있는 송전탑 지중화는 가야산 지형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이주민회의 장기생계 대책마련 요구에 대해서는 "1가구 1인 취업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약속한 바 없지만 이주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주민들을 광양제철이나 관련 업체에 취업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금도 이주민들의 생계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왜 이주민회만 반대하고 있는가

광영동은 80년 광양제철이 건설될 당시 부지로 편입된 금호도 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곳이다. 현재 광영동 전체인구는 1만6천명 정도며 이중 이주민은 300여 가구 1천여명 정도다.

금호회(이주민회의 전신), 큰골회(원주민으로 구성), 청년회, 통반장협의회, 발전협의회 등이 주축이 된 송전탑 건설 반대위원회(이하 송대위)가 광양제철과 송전탑 건설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9월부터다.

a 기존의 154Kv 송전탑이 보이는 광영동의 한 거리. 광영동 주민들은 98년 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 위원회를 결성해 지난 11월 광양제철과 합의문을 작성했으나 이주민회는 서명을 거부했다.

기존의 154Kv 송전탑이 보이는 광영동의 한 거리. 광영동 주민들은 98년 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 위원회를 결성해 지난 11월 광양제철과 합의문을 작성했으나 이주민회는 서명을 거부했다. ⓒ 조경국

송대위와 광양제철은 2001년 1월 1차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금호회 등 일부 운영위원들의 반대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지난 11월 ▲기존 154Kv 송전탑을 신설될 345Kv 송전탑으로 최대한 근접시켜 이설 ▲부대시설을 갖춘 체육공원 7천평 부지 확보하는 것으로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합의안에 대해 이주민회는 반대했고, 현재 7개월째 농성중이다. 광양제철은 216억원의 공사비가 소요되는 345Kv 송전탑 건설이 계속 늦어지자 이주민회를 상대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집행부 7명을 업무방해로 검찰에 고소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광영동 주민들은 이주민회가 송전탑 건설에 적극 반대하고 있는 것은 광양제철과의 관계가 그 동안 원활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농사와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던 이주민들이 기반이 전혀 없는 광영동으로 이주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광양제철에 대한 원망이 높아진 것이 그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양제철이 송전탑 건설을 추진하자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특히 광영동의 전체 집값이 떨어지고 이주민회가 보상받은 주택과 상가도 가격이 하락할 대로 하락한 시점에서 광양제철의 송전탑 건설 계획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주민회의 분노에 불씨를 당긴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회를 제외한 광영동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문제가 하루 빨리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송전탑 건설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이주민회와의 관계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주민들의 속마음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