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호성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변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오마이뉴스 권우성
필자는 앞에서 4억달러 대북지원설의 진상 규명 못지 않게, 이 의혹을 제기한 세력과 그 의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번 의혹 사건의 배후에 부시 행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월간조선>과 한나라당이 '4억달러 대북지원설'의 근거 자료로 삼고 있는 것은 닉쉬가 작성한 '한미관계 보고서'이며, 이 보고서에서는 최초 정보원으로 주한미군 사령부와 CIA를 언급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부와 CIA가 이러한 의혹을 자체적인 정보에 기초해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국내 정보기관에 침투해 입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흘려 이 문제로 한국에서의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 '북한의 금강산 관광대금의 군사비 전용 의혹'과 '4억달러 비밀 대북지원설'은 '기밀'에 해당되는 사안들이다. 또한 이러한 의혹만으로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공개 보고서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질 경우, 한국 정치에서 첨예한 정쟁이 일어나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추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미국의 정보기관이 왜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한미관계 보고서에서는 'suspicions'이라고 표현됨)"을 흘린 것일까?
공교롭게도 닉쉬는 보고서에서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다른 요소들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그 예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들고 있다. 이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한이 관광대금을 군사적으로 쓰고 있고, 김대중 정부나 현대가 비밀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햇볕정책의 하이라이트로 찬양해왔다"는 닉쉬의 평가는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적으로 의도성의 여부를 떠나, 부시 행정부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동맹국이자 우방국인 한국 정부가 궁지에 몰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흘린 '북한의 금강산 관광대금의 군사비 전용 의혹'과 '4억달러 비밀 대북지원설'은, 한국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있고, 대선에서 최대 쟁점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익과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는 궁지에 몰리고 있다. 떠밀리다시피 대북특사 파견을 준비하면서도, 강경 기조의 대북관이나 대북정책이 누그러지고 있다는 어떠한 조짐도 없는 상태이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외의 한미관계 전문가들이 "부시 행정부는 한국의 대선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를 반전시킬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부시 행정부가 '앉아서 한국의 대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에 있다. 이번 4억달러 대북지원 의혹 사건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하고 깨끗한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미국의 부당한 영향력'이 대선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과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부시 행정부의 의도대로 한국의 대선 결과가 나온다면, 한반도 운명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한미관계 보고서'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 [평화자료실]의 [외부자료]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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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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