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솔솔 관악산 연주암

화장실이 옥에 티, 수세식으로 바꾸었으면...

등록 2002.09.30 18:52수정 2002.09.3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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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계곡에 구름 다리, 저마다 신선

계곡에 구름 다리, 저마다 신선 ⓒ 황종원


정상 가까운 연주암 식당에 향기가 가득했다. 밥에서 향기를 느끼는 일, 참 오랜만이다. 산 입구에서 연주암까지 3km 겨우 넘는데 한 시간 반을 걸려 올라왔다. 기분 좋은 산길이다.


관악산이 멀리 있지 않기에 벼르기만 하다가 생전 처음 올라온 길이었다. 방송이나 신문에 가끔 나는 돗자리 아줌마가 숲 속에 없고 막걸리 취한 어른들의 노취도 없다. 계곡은 물 가득할 때 위엄이 대단했을 터이지만 비가 언제 지나갔나싶게 바짝 말라 있었다.

관악산(冠岳山)이라는 글자에서 악(岳)이 들어갔으니 '악' 소리 나게 바위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가파른 곳에는 쇠기둥에 안전 동아줄이 계속 이어졌다. 곳곳에 안내판이 친절하다.

a 연주암 마루에는 등산객 가득, 절집은 객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연주암 마루에는 등산객 가득, 절집은 객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 황종원


물이 마른 어느 계곡에는 "여기는 관악산에서 제일 물소리가 좋은 곳입니다"하는 친절 안내판도 기분 좋다.

300m는 넘을 길이와 폭 넓은 개울은 물이 넘칠 때는 건너기 너무 힘들 것이다. 철제 기둥에 나무판으로 구름 계단과 다리로 이어지니 산이 호강이요 등산객에게는 꿈길이다.

야무지게도 만들었구나. 행정청에서 하는 일중에서 어떤 일은 쓸데 없이 돈 쓰고 욕먹을 일을 하는데 과천시는 일을 본때 있게 해 놓았구나. 다리가 편하니 곱게 보인다.


a 연주암에서 등산객에게 베푸는 점심공양, 진수 성찬 부럽지 않다.

연주암에서 등산객에게 베푸는 점심공양, 진수 성찬 부럽지 않다. ⓒ 황종원


애를 써서 만들어준 길 따라 오르기는 해도 숨이 턱에 닿고 시간은 한 시가 넘으니 허기졌다. 그 참에 맡은 밥은 그야말로 향기로웠다.
밥그릇에는 공기밥, 콩나물, 무채와 김치 조각을 고추장으로 비비는 비빔밥이었다. 된장국이 구수하게 따라 붙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그냥 술술 넘어간다.

배식구 앞에 돈통이 있었지만 천원 한 장 넣는 사람도 있으나 대개 그냥 밥 한 그릇을 탔다. 한 끼니에 300여명이 먹을까. 절 집의 공덕이 감사하고 수고가 무던하다. 이런 일을 몇 년 해왔을까. 좋은 일을 하다가 온 것도 아니오, 내 몸 건강 좋으라고 올라온 몸뚱이에 공양이라니, 송구스럽다.


한 시간 반을 올라오는 여기까지 쌀을 올리기 오죽 힘들까. 천수 관음전 옆 능선에는 외가닥 레일의 끌차가 있다. 아마도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연결되는가보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야 쌀을 옮길 장사가 어디있나. 뚝딱 한 그릇 치우고 한 숨 돌린 뒤 나섰다.

a 연주암 입구에 있는 너무 부끄러운 시범 화장실, 옥에 티.

연주암 입구에 있는 너무 부끄러운 시범 화장실, 옥에 티. ⓒ 황종원


연주암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냄새가 내려가는 계단 부터 풍긴다. 입구에는 2002년 월드컵 시범이라고 쓰여 있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볼까 두렵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듯 하여야 하는. 일 보고 손 닦을 수도꼭지 하나 매달려 있지 않다. 여기는 물 귀한 산 꼭대기이구나. 서울 중심의 시범 화장실을 꿈꾸었다가 나는 코를 쥐고 나왔다.

화장실 건너에 정화조가 있다. 정화조의 종말 처리 배수구를 들여다 보았다. 맑은 물이 계곡으로 졸졸 흘러 내린다. 화장실의 내용물이 정화 처리 되어 맑은 물로 바뀌어 흐르는가. 그렇다면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정화수를 재활용하여 쓰면 될 것이 아닌가.

개울에 목판 깔아 길 만들고, 등산로에 동아줄 메 준 과천시가 좀 더 신경을 쓴다면 향기나는 화장실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산 곳곳에 남녀 화장실 한 조씩 불편하지 않게 있다. 그런 성의라면 10여 개 변기가 있는 화장실에는 그에 따른 정화 시설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시범이라는 말이 지금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 딱지는 떼어 냈으면 싶다. 너무 안 어울린다. 여기 관할은 연주암이 아니라 과천시였다. 연주암에서 연주대까지 오르는 등산객 때문에 홍역치르는 연주암의 수고가 남다르겠다. 코끝에 매달린 화장실 독한 내는 한참을 내려가야 풀린다.

쓰레기통 하나 산에는 없다. 쓰레기가 없는 산이었다. 길가 풀숲에 숨은 드링크 병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얼른 주웠다. 산에게 부끄러워서 였다. "이산이 우리나라 산 맞아" 하는 감동 가득 산을 내려 가면서 연주암 화장실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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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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