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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담그는 일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일단 뚜껑을 막아 놓으면 최소한 석 달은 진득하게 묵혀야 하는 것이, 마치 오늘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 보이지도 않는 뱃속 아기를 가늠하듯 기다림과 상상으로 요동치는 일이다.
물론 직접 누룩을 써서 빚는 술도 아니고, 그저 향 좋은 과일을 골라서 설탕이나 조금 치고 소주를 붓는 일이지만 그나마 필요한 정성과 설레임, 그리고 그것을 맛보는 날의 뿌듯함은 충분히 마음에 꽉 차게 새로운 것이다.
대학원 기숙사 앞에는 살구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가끔 밥 시간 뒤에 후식 삼아 두세 개씩 따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익는 대로 떨어져 그대로 거름이 되는 것이 더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악착같이 따 모아서 책상 위에 한 쟁반씩 쌓아놓고 즐기던 나는, 그나마 다 먹지 못하고 썩어나가는 것이 아까워서라도 살구로 술을 담그기로 했다.
생각 난 대로 빈 커피병 하나를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려두고는 시내로 나가 소주 두 병을 사왔다. 그리고 살구 한 바가지를 따서 정성껏 씻고 말려서는 흠집이 없고 빛깔과 향이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 커피병 속에 빼곡이 쌓아올렸다. 그렇게 병목까지 살구를 채운 다음에 설탕을 조금 뿌리고 소주를 부었다. 소주는 한 병하고 반이 채 안 되게 살구 틈 사이로 흘러들어 병목 언저리까지 잠겼다.
특별한 기술이나 정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소주를 부어 만드는 과일주의 경우에도 그냥 썩혀버리거나 퀴퀴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꼭 지켜야만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재료가 되는 과일은 흠이 없고 상하지 않은 것으로 골라야 하고, 이것을 잘 씻고 말려서 넣어야 한다. 그리고 술병은 잘 밀봉해서 최소한 석 달 이상은 서늘한 곳에 잘 보관해야 한다.
나는 살구와 소주를 채워 넣은 커피병의 몸통과 뚜껑을 촛농으로 봉하고, 다시 녹색 테이프로 둘러 그 위에는 석 달을 계산하기 위해 그 날의 날짜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탁상용 달력에 채우기로 마음먹은 석 달을 세어 표시를 해두었다.
특별히 기다릴 것도 없었던 그 가을에, 나는 그나마 술 익는 것을 기다리며 즐거웠다. 술병을 여는 날, 아마 소주잔으로 열댓 잔이 나올 이것을 나누어 마실 사람들의 얼굴을 꼽아보고 또 지우기를 밤마다 되풀이했다. 그리고 가끔 술병을 꺼내들고는 이것이 제대로 술이 되고 맛이 들 것인가, 궁금한 마음에 한 번 열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용케 석 달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정작 석 달을 지나 단단한 밀봉을 뜯어낸 그 살구술을 나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살구도 과일이라 안될 것도 없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저 소주를 부어두긴 했지만, 어떤 맛으로 익으리라는 상상은 미처 해볼 여지가 없었다. 흔히 포도주나 매실주 같으면 어떻게 얻어먹어 봤으련만, 살구술을 마셔보기는 나에게도 나의 작품이 첫 경험이었다.
그런데 막연했던 기대와 상상의 공백지를 쿡쿡 찌르는 달콤한 향, 그리고 혀끝부터 식도 안쪽까지 은은하게 깔려가는 향긋한 독기에 나의 의식은 환각 지경으로 끌려갔다. 물론 대개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지경 이상까지 몰려갔다는 것은 웬만한 기대치를 넘은 성공에 나 자신이 그만큼 도취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어쨌거나 나는 섣불리 누구에게 그 맛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맛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누구든 첫 모금을 나눈 사람과 막잔을 들어야 할 터인데, 그게 누구여야 하는지 도저히 정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책을 같이 읽던 전공 선배여야 하는지, 어찌 잘 해볼 여지가 있을 여학생이어야 하는지, 혹은 룸메이트여야 할 것인지. 그런 고민들을 핑계삼아 술병은 내 수중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었고, 그 유혹을 참지 못해 한 모금을 머금고 눕게 되는 새벽 침상은 나른하게 소용돌이치다가 아침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병 속 술이 맨 윗줄에 얹힌 살구 서너 개를 수면 위로 밀어올릴 때쯤에야 나는 누군가와 살구술을 대작하기로 결심했다. 기숙사 밖에서 생활하던 친구였는데, 꼭 그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기보다는, 어느 날엔가 어떤 대화 끝에 문득 속이 뒤집혀 이 친구와 정말 멋지게 한 잔 하고 싶다는 망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손님을 방에 끌어다 앉히고 책장 위 고이 모셔두었던 살구 술병을 꺼내들었다.
"아, 김은식 씨가 담가두었다는 그 유명한 술이 이거였군요."
"유명이요? 제가 담근 술이 유명하다구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데요?"
학생이 교수보다 적을 정도로 좁은 곳이다 보니 서너 사람만 알고 있어도 유명하달 수 있었다. 그저 그런 막연한 얘기인 줄만 알았다. 병마개를 열고 두 잔을 따르는 순간까지도.
"이게 보기보다 맛이 괜찮아요. 내가 만든 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맛본 술들 중에서는 최고라니까요."
그런 장황한 자랑이 그 살구술 첫 모금을 더 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꽤 기대를 가지고 한 잔을 받아 마신 손님의 얼굴은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김은식씨, 살구에 술 부은 것 맞아요? 이건...물 같은데"
우리 입으로 넘어간 것은 물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두 잔 석 잔 다시 따라 마셔보아도 그건 분명히 물이었다. 밀봉을 뜯던 날 시음을 할 때도, 또 바로 한달 쯤 전까지도 짜릿하던 알콜과 살구의 향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남은 것은 그저 찝질한 물 맛뿐이었다. 어찌 된 일이었을까?
좁은 기숙사 안에서 내 살구술에 관한 소문은 진작에 퍼져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살구를 한 바가지나 따 모으는 것도 괴상하거니와 커피병에 그럴 듯하게 담아 올려둔 내 책장도 오가는 사람들 입을 통해 한동안 명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선 룸메이트를 다그쳤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고 보고 들은 얘기의 주인공들을 찾아다녔다. 그들로부터 모든 것은 어렵지 않게 추적되었고, 그들은 또 쉽게 자백하였다.
"솔직히 내가 먹긴 먹었는데, 내가 먹은 건 술이 아니라 물이었어."
"그래? 물이었다고? 야, 누군지 몰라도 나쁜 놈이네. 나는 그래도 술을 부었는데."
"내가... 먹었던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시내에서 1차하고 들어와서 2차 하려고 술을 찾다 보니까 누군가 김은식씨 방에 살구술이 있다는 얘기를 한 것 같기는 한데..."
결국 나의 살구술 한 병에 얽힌 꽤 많은 범인을 찾아냈지만, 또 가장 중요한 범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맨 처음 내 술병에 손을 댄 범인, 그를 찾아야 했다. 그는 나에게 그에 상응할 멋진 술상을 배상해야 할 사람인 동시에, '그 술 정말 황홀할 지경으로 맛이 좋더라'는 증언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이다.
결국 그 핵심 범인은 찾지 못했고, 나의 살구술은 우리 기숙사 생활의 성격을 설명하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맛있는 술을 소유하는 것만큼 긴장되는 일이 없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또한 그 시절은 소중한 사람을 고르고 골라 맛있는 술을 나누는 것만큼 멋지고 설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의 살구술은 살구술로, 빈 소주로, 물로 거듭 태어나며 누군가의 입과 공상과 나의 추억 속으로 증발해버렸지만 그런 대로 멋이 있었던 시간들을 기억 속에서나마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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