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자

'2002 학교 숲 가꾸기 현장 워크숍' 동행취재

등록 2002.10.03 15:09수정 2002.10.0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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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둔산초등학교, 건물 사이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의 시멘트 바닥을 들어내고 숲을 만들었다.

둔산초등학교, 건물 사이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의 시멘트 바닥을 들어내고 숲을 만들었다. ⓒ 정세연

간밤에 내린 비로 부쩍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모든 생명들이 잔뜩 움츠러든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대전 둔산초등학교에는 푸른 숲의 향기가 산뜻한 가을 공기와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2일 오전 9시, 이른 시각부터 '학교 숲 가꾸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둔산초등학교에 모여들고 있었다. '학교에 나무를 심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함께 나누는 학교 숲 가꾸기 현장 워크숍을 위해 자리한 사람은 모두 40여명. 오늘 둘러볼 학교는 대전둔산초등학교와 충주목행초등학교이다.

현재 대전지역에서는 둔산초등학교, 회덕중학교, 대화중학교, 동도초등학교가 학교 숲 가꾸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고, 충남지역에서는 홍성 풀무학교, 서산 대산중학교, 천안 복자여고에 이어 올해에는 천안 업성초등학교가 선정되었다.

'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 에서는 전국적으로 매년 20여개 학교들을 선정하여 학교 숲 가꾸기 운동을 지원하며 선정된 학교에는 5 년간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69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는 학교 숲'을 추진하고 있다.

둔산초등학교, 주차장 공간을 학교 숲으로

a 대나무통밥 용기를 활용해 만든 오솔길

대나무통밥 용기를 활용해 만든 오솔길 ⓒ 정세연

둔산초등학교는 1995년 개교한 신생학교로 아파트,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다. 둔산초등학교 남풍우 교장은 "삭막한 도시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없나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학교 숲 가꾸기를 시작했다"며 "학교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학교 숲 가꾸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둔산초등학교는 2000년부터 시작해 벌써 3년째 학교 숲 가꾸기를 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 신기초등학교와 충주목행초등학교, 광릉수목원 등의 현장학습과 세미나 등을 통해 숲 가꾸기의 밑그림을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학교 숲 가꾸기에 동참해 지금은 제법 모양을 갖췄다.


학교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운동장 구석구석 공간이 있는 곳에는 나무가 심겨져 있고 학교 울타리에는 교화인 장미가 넝쿨져 있다. 뿐만 아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의 시멘트 바닥을 들어내고 흙을 깔아 숲을 만들었다. 숲 속에 난 오솔길은 식당에서 버려지는 대나무통밥 용기를 활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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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연

큰 규모의 숲이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작은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생태와 함께 할 수 있도록 고심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교정 곳곳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푸른 생명을 찾아볼 수 있다.


대전충남 생명의 숲 이인세 사무국장은 현장견학을 하는 교사, 학부모, 시·도 관계자들에게 "학교 주차장을 숲으로 조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구상은 학교가 하지만 숲을 가꾸는 사업은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이니 학교 숲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운동장을 빙 둘러 산사나무, 산벚나무, 회화나무, 산수유, 모과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고, 모과나무 앞에 모인 학부모들은 "모과 열매 익으면 얼마나 탐스럽고 보기 좋아.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들이 직접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하며 "우리 아이들이 나무와 숲을 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겠다"며 담소를 나눴다.

둔산초등학교 방문객을 위해 안내하던 박예슬(12)양은 "학교 숲에 들어가면 재미있고 진짜 숲에 온 느낌이 든다"며 "공원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을 학교에서 직접 볼 수 있어서 좋다"며 밝게 웃었다.

충추목행초등학교, 아이들의 교육·놀이·안전 고려한 숲 속 공간

a 울타리 없는 목행초등학교, 학교 화단 너머 달래강이 보인다.

울타리 없는 목행초등학교, 학교 화단 너머 달래강이 보인다. ⓒ 정세연

대전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지난 1일, 개교 56주년을 맞은 충주목행초등학교. 언덕배기에 위치한 목행초등학교는 울타리 없이 바깥 공간과 틔어 있고 물과 숲, 꽃이 있는 자연과 어우러진 학교이다. 숲 속에서 작업을 하다 오셨는지 운동화 차림에 불쑥 튀어나온 교감선생님이 학교 곳곳을 안내해주셨다.

목행초등학교 윤명규 교감은 "교실을 꾸민다는 생각으로 학교 숲을 가꿨다"며 "조경업자가 만든다면 멋있고 아름다운 공간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놀이·안전을 고려해 숲을 만들었다"며 학교 구성원 스스로 만드는 학교 숲을 누차 강조한다.

화목원, 향기원, 우리꽃 친구하기 등 테마가 있는 숲 속 공간에는 수십 여 종의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패랭이, 매발톱, 금낭화, 왕원추리 등의 야생화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a 목행초등학교 윤명규 교감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목행초등학교 윤명규 교감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 정세연

산딸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 등의 나무들은 교감선생님이 씨를 받아 온실에서 키운 다음 어느 정도 자라면 숲에 옮겨 심는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 자연이 살아있는 목행초등학교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넘어 충격이라고.

한쪽으로 맨발체험길이 눈에 띈다. 돌멩이, 모래, 톱밥, 솔잎, 소나무껍데기 등을 깔아 맨발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 죽 나있다. 또 하늘관찰, 움집짓기, 통나무체험 등 아이들 놀이공간이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직접 설계해 만든 '꿈과 사랑을 그리는 오두막', '이야기가 있는 집' 등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원두막이 자리하고 있다.

교감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고 편하게 놀 수 있도록 호미, 모종삽, 돗자리 등을 비치해 두는 세심함 또한 잊지 않으셨다.

a 돌멩이, 소나무껍데기, 솔잎 등을 깔아놓은 맨발체험장

돌멩이, 소나무껍데기, 솔잎 등을 깔아놓은 맨발체험장 ⓒ 정세연

"호미, 모종삽, 돗자리를 내놓으니 가져가기도 하고 정리도 안되고 하죠. 하지만 가져갈 만큼 가져가고 나면 더 이상 가져가지 않아요. 또 정리가 안되면 좀 어때요. 숲 속 어딘가에는 있을텐데"하며 교감선생님이 허허 웃으신다.

통제된 질서보다 방관에서 나오는 질서가 더 유효하다고 말씀하시는 교감선생님. 그래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스스로 체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신다고.

두 동의 학교 건물 사이에 교감선생님의 작업장인 비닐하우스와 작은 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는 벌개미취, 술패랭이, 매발톱, 참나리 등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이 녀석들이 올 가을엔 나가야 다른 녀석들이 들어올 텐데"하며 걱정하시는 교감선생님의 얼굴에서 푸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던 목행초등학교 박찬미(12)양은 "우리 학교에는요 숲속교실, 오두막, 통나무다리도 있구요, 맨발체험 할 수 곳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은요 어디에도 없는, 우리 학교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에요"하며 학교 자랑에 여념이 없다.

"숲이 있는 학교, 우리 함께 만들어요"

2시간 가량의 현장 견학이 끝나자 천안업성초등학교 김헌회 교감은 "현장답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참여했다"며 "오늘 워크숍을 통해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학교에 돌아가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숲 가꾸기에 전진해야 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a 철도 폐침목으로 만든 계단

철도 폐침목으로 만든 계단 ⓒ 정세연

혜천대학 구본학 교수(대전충남지역 학교 숲 지원팀장)는 "개교한 지 오래됐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조감도가 분실된 학교를 위해 제자들과 함께 직접 나가서 측량을 해 학교 숲 가꾸는 사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제안하며 "생태로서의 학교 숲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대전시교육청 오용석씨는 "한 번에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노력해 살아 움직이는 숲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교육청에서는 예산, 나무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테니 학교 구성원들은 주체적으로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오늘의 소중한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이 푸른 자연의 공간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숲이 있는 학교를 함께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학교 숲'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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