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대생 인수, 정권의 선물인가

[쟁점추적] 김승연 회장이 DJ의 신임을 받은 이유

등록 2002.10.06 10:01수정 2002.10.14 12:21
0
원고료로 응원
논란 끝에 대한생명 인수자로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결정된 지 하루만인 24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국정원의 '도청 자료'라고 밝힌 문건 세 장을 흔들며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를 동원하는 치밀한 로비를 벌여 특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이날 정무위 국감은 파행으로 치달았고, 청와대와 한화는 "사실 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더욱 확산됐다.

관련
기사
- ' 007 작전 ' 방불케한 한화의 대생 인수 본계약



a 한화그룹 본사 사옥

한화그룹 본사 사옥

그렇지 않아도 지난 23일 갑작스럽게 통과된 '공자위의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결정'을 놓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재벌그룹이 대형 생명보험사를 인수할 경우 빚어질 수 있는 부작용은 별개로 하더라도 한화 자체에 대한 자격 시비가 적지 않았다.

간단하게 말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자산규모 11조4000억의 한화그룹이,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지만 지난해 8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익을 내고 자산규모만도 한화의 두 배가 넘는 26조1000억원의 대한생명을 어떻게 인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연일 국정조사를 통해 'DJ정권의 한화 특혜 의혹'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참여연대도 성명을 통해 "조기에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는 정부의 성과주의와 조급증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면서 "의혹이 있는 만큼 본 계약 체결 전에 한화의 대생 인수 결정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 대생을 인수한다고?"

한화그룹의 대생 인수를 놓고 이렇게 끊임없는 잡음이 이는 이유는 뭘까. 자격시비의 핵심 중의 하나는 과연 한화가 대생을 인수할 만큼 건실한 그룹이냐는 것이다.

증권가의 한 에널리스트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것이며 시장의 법칙을 무시한 정치적인 결정"이라면서 "한화그룹은 지난 10년간 단 한 해도 흑자를 낸 적이 없으며 특히 2001년에는 5808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심지어 한화그룹의 주력사인 (주)한화와 한화석유화학도 지난해 각각 3116억원, 165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게다가 금융 계열사를 포함할 경우 적자 금액은 7322억원으로 크게 늘어나며, 대생을 인수하기 위해 구성한 한화컨소시엄에 포함되는 4개 계열사 가운데 그나마 이익을 내고 있는 회사는 한화종합화학(165억원)뿐"이라고 말했다.

@ADTOP2@
한화그룹은 또 부채에 대한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은 24일 국감을 통해 "한화의 이자보상비율은 3년 연속 1이하였다"면서 "정부의 특혜가 없었다면 3년 연속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영업상태가 불량한 한화가 대생을 인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자보상비율이란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1 이하인 경우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도 내지 못한 것을 뜻한다.


"경영능력, 재무건전성 모두 문제"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한화가 보험업법과 그 시행령에 규정된 주요 출자자 요건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법' 허가요건을 보면 주요출자자가 충분한 출자능력, 건전한 재무상태 및 사회적 신용을 갖추고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금감원이 정한 '보험업 감독규정'의 '주요출자자의 세부요건에 관한 기준'에도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회사이거나 주 채무계열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경우에는 당해 부채비율이 200%이하일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232%로 허가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또한 99년부터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타 김상조 교수는 "한화그룹은 과거 한화종금, 충청은행 등 금융기관을 부실화 시켰고, 부실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한화가 이처럼 면죄부를 받는 데에는 금감원의 '협조'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화종금과 충청은행은 각각 1조4800억, 1조 5000억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퇴출됐다. 한화 측은 한화종금 부실책임 분담책임 차원에서 1300억원어치의 저리 증권금융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부실에 책임을 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금이 아니라 만기 5년·연이율 2%짜리 채권을 산 것이므로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부담 금액은 300억도 채 안된다. 이러한 특혜는 금감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잠재적 부실의 위험도 지적된다. 한화증권이 대주주로 있는 한화파이낸스의 경우 2001년 말 누적 결손이 653억원에 이르러 자본 잠식 상태이며, 자기 자본도 마이너스 503억원이다. 따라서 한화파이낸스의 부실은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인 한화증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제는 한화그룹의 계열사가 될 대한생명에까지 충격을 안겨줄 것이라는 거다.

그나마 한화그룹은 올 상반기 흑자로 전환했고 98년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7000억~8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상태라고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대한생명 인수자금뿐 아니라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여유자금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매각 대상이 된 대한생명 노조 임우상 위원장도 "우리 노조가 가장 문제시하는 것이 바로 한화그룹의 재무건전성과 경영능력"이라면서 "3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자산건전성이 확보된 대한생명이 자칫 부실화될 경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의혹 투성이' 한화그룹, 대생 인수 과정

a 역사속으로 사라질 대한생명 63빌딩

역사속으로 사라질 대한생명 63빌딩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한화그룹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지난 99년부터다. 대한생명 2차 입찰신청 마감일인 1999년 6월7일, 김승연 회장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를 직접 찾아가 입찰서류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재계 일각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정부가 재벌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재벌들의 신규사업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 김승연 회장의 발빠른 행보와 자신감은 정부와 한화간의 '밀월설'을 뒷받침했다. 특히 대한생명 1차 입찰에 참여했던 LG, 롯데 등 재벌기업들에 대해 재정경제부쪽이 "5대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참여에 제동을 걸자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하지만 2차 입찰이 예비심사 기준을 모두 미달함에 따라 무효가 되었고, 3차 입찰도 한화가 98년 계열사였던 한화종금을 정리하면서 공적자금을 지원 받은 전력 때문에 탈락한 이후, 미국 AIG등 4개 외국계 보험사들도 3차 입찰에서 모두 인수에 실패했다. 결국 2001년 12월 한화는 일본의 오릭스 등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재입찰에 뛰어들었고, 2002년 3월 마지막 경쟁자였던 미국 메트라이프가 대생 인수의사를 공식 철회하면서 사실상 인수권을 따냈다.

이처럼 대한생명 입찰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차별적인 대기업 정책은 '밀월설'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대한생명 매각이 진행되면서 강력한 인수후보로 떠올랐던 LG가 중도 하차한 주원인은 정부가 5대그룹 신규사업 진출을 강력히 제한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전도사, 미국통 마당발로 DJ 신임 한 몸에"

그렇다면 왜 한화그룹은 정부의 '편애'를 받게 된 걸까. 이는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외환위기 기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업축소로 구조조정의 전도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것은 물론 미 공화당 정치인들과 활발한 접촉을 통해 대미 외교활동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해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a 한화 김승연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실제로 김승연 회장은 98년 한화가 화의 준비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자 자발적으로 계열사 주식과 집문서 등 사재와 경영포기각서를 담보로 내놓고 협조 융자를 신청 긴급 수혈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소유주의 사채 출연을 요청한 이후, 실제로 재벌회장이 사재를 담보로 잡히고 기업 운영자금을 마련한 것은 김 회장이 처음이었다"면서 "당시 대우 김우중 회장과 좋은 대조를 이뤄 김대중 대통령에게 신뢰를 받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 회장은 재계는 물론 외교가에서도 영향력 있는 미국통으로 특히 보수적인 공화당 출신의 정치인들과 활발한 접촉을 갖고 있어, 철강 및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목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력 문제와 대북 정책 등에서 DJ정부와 부시 정부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2001년 1월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 김 회장은 한국의 재계에서 유일하게 공식초청을 받았다. 특히 민주당에 집중됐던 한국 정부의 외교력이 부시 정권 출범으로 당혹스러워했던 지난해 초 김 회장은 백악관 고위인사를 연결, 여당의 한 정치인과 면담을 주선하며 국내에 미국 정가의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김 회장은 지난 20여년 간 공화계 정책서클로 활동하고 있는 해리티지 재단과 특별한 관계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 취임행사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해리티지 재단은 김 회장을 특별연사로 초청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월 해리티지 재단의 자문을 얻어 국내에 '한미교류협회'를 설립, 본격적인 한미 양국간의 민간외교시대를 열었다. 김 회장은 협회 설립을 위해 수 차례 워싱턴을 방문, 의회 고위인사들을 만나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김회장이 초대의장을 맡고 있는 한미교류협회 이사진으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장관, 퓨르너 해리티지재단 이사장, 리차드 워커 전 주한 미대사, 박수길 전 유엔대사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