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살이 타는 '관능'의 국감장

한철용 소장과 <조선일보>

등록 2002.10.09 23:20수정 2002.10.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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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일보 10월 10일자 사설

조선일보 10월 10일자 사설

역시 조선일보다. 한철용 소장의 폭로가 한갓 해프닝으로 끝나자, 조선일보는 이런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軍을 이 지경으로 만든 政權." 정상적인 안면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얼굴을 붉히거나, 최소한 계면쩍어 하는 흉내라도 낼 텐데, 보라, 조선일보는 다르다.

속된 말로 쪽팔려 하는 것도 이렇게 공격적으로 한다. 이런 맹구같은 측면이 바로 조선일보의 매력(?)이고, 이 매력 때문에 겉으로는 조선일보를 보지 말자고 외치는 나도 실은 매일 조선일보를 들여다 보곤 하는 것이다.

이번에 한 소장이 폭로한 것은 군에 대한 정권의 외압이 아니었다. 본인 자신이 스스로 이상 징후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누락된 보고 때문에 경계태세가 해이해진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 군의 경계 태세는 외려 격상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소장은 무엇을 폭로했을까? 한 소장은 우리 군이 북한군의 교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군이 북한군의 교신내용을 감청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용감하게 폭로한 것이다. 한 마디로 '주적' 좋아하는 저들의 표현으로 말하면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듣자 하니 이번에 군사기밀이 누설됨으로써 우리 군이 입을 손실은 막대하다고 한다. 우리 군의 감청사실 및 그 수준이 노출된 것도 문제지만, 북한군이 암호체계를 바꿈으로써 그것의 해독을 위해 새로이 막대한 시간과 재정을 투입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여튼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군기 빠진 소장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근간인 오성장군들(=병장들) 밑에서 얼차려를 받는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를 이제라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정말 안보를 생각하는 신문이라면, 한 소장이 국감장에서 난데 없이 군의 기밀을 누설했을 때, 그 말의 진위에 관계없이 일단 그를 비난했어야 한다. 군이 무슨 콩가루 집단인가? 한 소장이 군의 원칙을 모르는 훈련소의 이등병인가?


군대라는 조직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현역 장성이 정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기초적인 안보의 원칙을 사정없이 무시해 버렸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다들 한 소장처럼 행동하면 도대체 군이라는 조직이 유지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떻게 했는가? 이것을 문제삼기보다는 한 소장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행복한(?) 경우를 기대하는 기사나 올리며 마냥 즐거워만 했다. 그러다가 정작 한 소장의 발언이 허위로 드러나자, 반성은커녕 부랴부랴 '안보 모드'로 스위치해서 누구보다 앞장 서서 더 설레발을 떤다.


"대한민국 국군이 창군(創軍) 이래 이토록 지리멸렬해버린 적이 또 있었던가."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정작 한 소장이 국회에서 홀딱쇼를 시작했을 때 이미 했어야 하는 말이다. 그때는 마냥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웬 안보 원맨쇼?

a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어떤가? 아무리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는 것이다. 가령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외교와 안보와 통일만큼은 정략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어떻게 했는가? 자기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안보 자체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정략적 관점에서 임했다. 요즘 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한 마디로 대통령병 환자들의 발작증세를 보는 듯하다.

한 소장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대체로 두 가지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한 소장의 이번 해프닝은 진급에서 누락된 개인적 원한에서 홧김에 저지른 짓이라고도 한다. 이보다 더 그럴 듯하게 들리는 주장에 따르면 정권 말기의 누수 현상, 말하자면 정권 교체기를 맞아 미리 야당에 줄대기를 하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경향신문이 전하는 요즘 군의 분위기이다. 진급에서 떨어진 이들은 자기들이 진급에서 누락된 게 현정권의 햇볕정책에 반대한 데에 따른 보복인사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툭하면 모든 문제를 햇볕정책의 탓으로 돌리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한심한 행태가 군 내부를 분열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저들이 좋아하는 표현대로 명백한 '이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군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정권"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평소에 보이는 그런 행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개인적 불만이 있더라도 한 소장이 감히 군의 원칙을 저버리는 만용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다 일단 터뜨리면 뒤를 봐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행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 "군은 심기일전해야 한다. 정권도 군을 더 이상 흔들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은 한 소장이 한 폭로가 사실로 드러났을 때에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지금 정작 군을 흔들고 있는 것은 군인들로 하여금 줄대기를 하게끔 동기를 제공하고 있는 한나라당이고, 이들의 이런 태도를 부추겨 온 것이 조선일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일보는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한 마디로 '한 소장의 말이 사실이면 정권의 책임이고, 한 소장의 거짓이면 정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맹구 같은 측면이 조선일보의 매력이다.

"이런 지휘부에 충성하느니 전역하겠다." 조선일보 사설을 보니 한 소장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실은 하나뿐입니다. 정의와 진실이 불의에 위협받으면 더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조선일보 기사를 보니 한 소장은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의에 위협받는다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한 소장은 기어이 섹시한 포즈로 입고 있던 군복을 벗으며 '홀딱 쇼'를 벌이고 말았고, 이로써 국감장은 졸지에 뼈와 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끈한 정치 포르노의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관객 없는 쇼란 있을 수 없다. 이 관능적인 쇼를 침을 질질 흘리며 바라보고 있던 것은 한나라당이다. 광고 안 하는 나이트 클럽 없다. 이 홀딱 쇼를 총천연색 기사로 도배하여 전단을 돌린 것이 조선일보다. 이 홀딱 쇼를 다 보고 나오며 주제에 안보 설교를 잊지 않는다. "군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권."

내 참, 남들 다 눈살 찌푸리는데 혼자서 그 수준낮은 포르노를 열심히 감상해 놓고, 이 분들이 지금 우리한테 안보를 설교한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간단하다. 원래 밤무대에서 뱀쇼 같은 거 즐기는 분들이 가정에 돌아가서는 딸들에게 도덕을 훈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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