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길을 택하게 한 메모

<중국오지여행기 3>

등록 2002.10.13 15:00수정 2002.10.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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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뚜 인민광장의 마오쩌뚱(毛澤東) 석상. 중국 대도시의 중앙광장에 마오쩌뚱 석상이 남아있는 곳은 청뚜가 유일하다.
청뚜 인민광장의 마오쩌뚱(毛澤東) 석상. 중국 대도시의 중앙광장에 마오쩌뚱 석상이 남아있는 곳은 청뚜가 유일하다.모종혁
여행 도착지의 첫번째 과제 '지도 사기'

청뚜의 관문인 쑤앙리우(雙流) 국제공항은 중국 제4의 도시에 걸맞지 않게 좁고 낙후됐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고장난 에어컨과 함께 여행객의 '왕짜증'을 일으키기 일쑤다. 이것은 청뚜 열차역 또한 마찬가지. 인구 1100만명이 넘는 도시의 기차역치곤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몰리는 사람들로 청뚜역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암표상, 소개꾼, 짐꾼에 갓 도착한 기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청뚜역의 풍경은 여느 중국 기차역과 다를 바 없다. 필자가 처음 청뚜에 도착한 지난 97년 6월 21일 아침에도 역앞은 온갖 사람들의 물결로 혼잡스러웠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출구 검표소를 빠져 나온 필자를 처음 맞는 사람은 다름아닌 소개꾼들.

잘 곳을 찾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해 일류호텔 시설에 여관급 가격을 받는다는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소개꾼이 한 부류라면, 다양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여행사로 관광에 나서라는 소개꾼은 또 다른 한 축이다. 이런 그들의 공세를 뚫고 기차역앞 신문판매대로 간 필자의 첫번째 한 일은 지도를 사는 것이었다.

여행안내를 위한 'i'가 거의 없는 중국의 현실에서 지도는 중요한 나침반 구실을 한다. 이미 마음 속에 정한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타서 가야 할지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뚜어런방(多人房)이라고 일컬어지는 도미토리가 드문 청뚜에서 외국 여행객의 안식처는 단연 지아통(交通)호텔을 들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안식처 지아통호텔

한 방에 세 개의 침대가 있는 구조에 화장실과 욕실은 공통으로 이용하는 지아통호텔이 외국인 배낭족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값이 싸다는 데 있다. 한 침대에 하루 인민폐 40위안(약 6000원) 하는 부담없는 방값과 비교적 깨끗한 위생상태, 호텔 종사원들과 영어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친절한 직원들은 외국인을 불러모으는데 중요한 몫을 맡는다.


필자가 도착한 당일도 호텔 프런트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으로 북적댔다. 호텔 직원이 건네준 등기부에 여권에 기재된 사항을 일일이 등록하고 객실에 들어가 보니, 어느덧 방안에는 두 명의 서양 룸메이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전형적인 배낭족으로 나이는 필자와 비슷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가 물어보았더니, 둘 다 영어만 가능했다. 영어회화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더니, 벨기에에서 온 이가 이미 지우자이꺼우와 황롱을 다녀왔다고 한다. 느낌이 어떠냐는 물음에 되돌아온 감탄사는 온통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에 둘도 없는 절경이다' '다시 가보고 싶다' ….


본래 계획은 청뚜 시내를 둘러보고 남쪽에 위치한 불교성지 어메이(蛾眉)산과 러산(樂山)대불을 먼저 보는 것이었지만 벨기에인의 찬사는 필자의 마음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여행정보나 많이 알아두자 싶어 꼬치꼬치 탐문을 펼치니, 조금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던지는 한 마디. "1층 로비 여행사나 게시판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어."

무후사 정문. 무후사 전체 경내에서 중앙에 위치해 있다.
무후사 정문. 무후사 전체 경내에서 중앙에 위치해 있다.모종혁
우연히 눈에 띈 한 배낭족의 메모

도시 구경을 해야 한다며 길을 나서는 이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어 물러서야만 했다. 친절한(?) 벨기에인의 충고로 로비에 내려온 필자가 먼저 들른 곳은 온갖 언어로 뒤범벅되어 있는 게시판. 먼저 여행을 마친 배낭족들이 주로 티베트와 지우자이꺼우 가는 방법에 대해 메모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한글로 남긴 메모 한 장이 눈에 띄어 반가움이 앞섰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가 여행사 패키지상품을 통해 지우자이꺼우 간 경험담을 남긴 것이었다. 자고 먹고 타고 보는 것을 포함해서 5일간의 일정을 담은 상품이 980위안 가량 했다. 가는 길 곳곳에 도로공사가 한창이어서 몸이 고되다는 주의사항과 여행사 상품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 내에 코스를 돌아 아쉬움이 많다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다른 나라 여행객들의 메모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어느 여행상품을 이용했고, 어디를 꼭 봐야 하고, 외국인으로 주의할 것은 무엇이라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겠구나'고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날짜별로 빼곡히 쓰인 작은 영문 메모지가 우연찮게 눈에 띄었다. 한 독일 배낭족이 남긴 여행일지로, 6월 4일부터 14일까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형식이 재밌다 싶어 주의깊게 살펴보니, 철저한 배낭여행식으로 지우자이꺼우를 다녀온 것이다.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필기도구를 꺼내 하나하나 적어보니, 무궁무진한 여행정보가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구간별 차표와 시간에서부터 묵었던 숙소의 방값과 환경, 보았던 관광명소의 입장료와 필수 관람코스, 놓쳐서는 안 될 풍경들, 살 만한 특산물들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긴장과 자기위안이 교차된 출발전야

이미 구전이 되어버린 정보에 간단한 내용만 소개한 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어찌해야 할 바 모르던 필자에게 그 메모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더 많은 정보 탐색을 위해 로비에 진을 치고 있는 여행사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건수 올릴 수 있는 손님을 맞은 여행사 직원은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컬러 화보에, 다녀온 이들이 남긴 감사편지를 들쳐 보이며 패키지상품을 권유했다.

두보초당 안에 세워져 있는 석비상.
두보초당 안에 세워져 있는 석비상.모종혁
길이 험해 교통사고가 수시로 나고 긴 여정을 되풀이 강조하며, 유난히 안전을 들먹였다. 게시판을 훑어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마음을 굳힌 필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여행지에 대한 사항을 물어본 뒤 생각을 해보겠다는 답변을 남기고 여행사를 나섰다.

호텔을 나와 바로 지우자이꺼우 방향으로 가는 버스편이 있는 시먼(西門)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모지에서 일깨운 대로 다음 날 출발할 송판(松藩)까지 가는 버스편 출발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46위안 하는 버스표를 미리 구입했다. 그 날 하루 종일 청뚜 시내에 있는 당대 시성 두보의 초당과 제갈량의 무후사, 도교사원 청양궁을 둘러보면서도 지우자이꺼우에 갈 생각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나 혼자 그 오지를 제대로 갈 수 있을까'하는 긴장에 떨리면서도, '중국어 하나도 못 하는 양코배기도 다녀왔는데 나라고 못 할건가'하는 위안이 끊임없이 교차한 것이었다. 저녁 호텔로 돌아온 필자를 맞은 벨기에인은 내일 배낭여행 형식을 통해 지우자이꺼우로 간다는 말에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데, 까짓 오지여행 별일 있겠나'라고 되뇌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청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

서양의 여행 매니아들은 청뚜를 종종 티베트나 지우자이꺼우 가기 위해 들르는 도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청뚜에는 한국인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명승고적지가 널려 있다. 이 중 꼭 들러야 할 볼거리 4군데를 엄선, 추천한다.

1) 무후사(武候寺 · 우허우스)

위·촉·오 삼국 분열기 촉의 재상이었던 제갈량(諸葛孔明, 181~234년)의 사당. '무후사'라는 명칭은 제갈공명이 죽은후 얻은 시호이다. 남북조시대에 처음 세워지기 시작한 무후사는 긴 세월동안 중국 전역에 우후죽순 들어섰다가, 명대 초기 청뚜에 있던 유비의 사당과 함께 합쳐지면서 비로소 청뚜에 자리잡게 됐다.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672년 청대 강희제 때로, 3만7천㎡넓이에 대문 이문 유비전 문신무장랑 무후사 등 주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부터. 무후사 전체 경내에는 그밖에도 유비의 무덤인 혜릉이 있고 당·명대 만들어진 종과 비각, '삼국지' 등장인물 중 촉과 관련된 역사인물의 망상(찰흙으로 만든 인물상) 등이 있어 보는 이의 흥미를 자아낸다.

대문을 지나 들어서는 첫 전당의 복도가 '문신무장랑'인데, 유비의 부하였던 조자룡 마초 황충 등의 좌상이 늘어서 있다. 전당 중앙에 이르면 유비와 그의 아들 유선의 좌상이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고, 그들을 보위하듯 오른쪽 방에는 관우가, 왼쪽 방에는 장비가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무기를 손에 잡고 눈을 부라리며 세인을 내려보고 있다.

무후사 전당에는 유비상보다 큰 제갈량상이 있어 제갈량이 후대인들에게 더 대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전당 벽에는 제갈량이 쓴 출사표, 천하삼분도 등의 문장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무후사 안의 삼국문물박물관에는 다양한 고대사문물이 전시되어 제갈량과 삼국문화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입장료는 30위안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2) 두보초당(杜甫草堂 · 뚜포차오탕)

이백과 더불어 당대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 두보(杜子美, 712~770년)가 당 현종 집권기 일어난 안사의 난을 피해 4년여 동안 칩거했던 곳이다. 호탕한 시풍을 보인 이백과 달리 민중의 고난에 찬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두보는 평생동안 1400수에 달하는 불후의 시편을 남겼으며 '시성'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759년 청뚜에 도착한 두보는 작은 초당을 짓고 시작에 전념, 청뚜에서만 '춘야희우' '촉상' 등 240여수의 시를 읊었다. 오랜 세월동안 수차례에 걸친 개·보수를 거쳐, 1734년 청대 옹정제 때 오늘날 24만ha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두보초당은 울창한 나무숲과 탑 시사당 공부사 대묘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어 두보의 삶과 시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곳은 박물관으로 관내에는 3만여권에 달하는 책과 2000여점의 유물이 있어 두보의 영향력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전세계에서 발행된 두보 관련서적 중에는 한국에서 펴낸 번역본도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985년에는 고 김일성 북한주석이 덩샤오핑의 안내로 두보초당을 둘러본 뒤, 친필로 방문록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과 함께 걸려 있는 김일성 주석의 흔적은 무후사에서도 볼 수 있다.

두보초당의 주변에는 쓰촨 최대의 도교사원인 청양궁(靑羊宮)이 있어 함께 구경하면 된다. 단 순환대로변에 있는 청양궁과 달리 두보초당은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전체 경내를 둘러보는데 25위안이다.

3) 팬더번식기지(大熊猫基地 · 따시옹마오지띠)

중국에만 번식하는 동물인 팬더는 쓰촨이 그 고향이다. 대나무를 먹고 자라며 생존율이 극히 낮은 팬더의 종 유지를 위해 중국정부가 특별히 마련한 곳이 청뚜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팬더 번식기지이다.

이 곳에는 대략 100여마리의 팬더가 정부의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야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높지 않은 산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우거져 대도시 청뚜의 번잡함을 잊을 수 있는 팬더번식기지는 다른 나라에 없는 희귀동물의 재롱까지 볼 수 있어 찾는 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교통편은 청뚜 시내에서 번식기지까지 가는 9번 버스가 있고, 입장료는 10위안이다. 오후 4시까지만 개방하므로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4) 춘시루(春熙路)

청뚜의 중심지에 위치한 춘시루의 정식명칭은 동따지에(東大街)이다. 대로변 백화점과 호텔 사이 골목길인 이 곳은, 1980년대부터 밤마다 상설 야시장이 들어서면서 이제는 꼭 둘러봐야 할 관광코스가 되었다. 1년 365일을 휴일 없이 열리는 야시장은 우리의 재래시장인 동대문·남대문시장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춘시루 전체 5~6㎞에 달하는 골목에 늘어선 가설매장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도 또한 싼값으로 살 수 있다. 보통 저녁 7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하여, 밤 9시에 이르면 인파를 헤집고 다녀야 할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쉽게도 작년 5월부터 춘시루의 야시장이 지하상점으로 변하면서 분위기는 이전 같지 못하다. 하지만 춘시루 주변에 흩어진 다양한 전통음식점에 들러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인 쓰촨요리를 맛보길 권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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