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위한 공부, 대학이라고 다를까

획일적인 시험이 가치를 검증하는 대학

등록 2002.10.17 23:42수정 2002.10.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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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험이라는 인재선발 방법은 일단 실시하고 나면 여러가지 부정이 따르게 마련이다.…(조선조 말기) 지도층에게 공부 그 자체가 아닌 시험 결과에 따른 벼슬과 부유한 생활이 인생의 주된 목적이 된 것은 그 사회의 궁극적인 몰락을 예고하는 징조였다.
박노자, '영원한 커닝', <당신들의 대한민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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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기자

박노자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가 처음 대학교 교실 안의 책상을 본 느낌은 일종의 '잡학 교과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커닝에 대한 학생과 교수의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않는다. 그는“뭐가 나쁘냐”,“당연하다”는 학생과 교수의 반응에서 한국 사회의 몇 가지 특징을 짚는다.

첫째, 점수(즉, 이득)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인식. 둘째, 공부의 내용보다는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입시 위주 학교 교육의 기본 의식. 그는 '도덕관 부재 차원에서 고위 관료들이 국민을 속이는 것과 학생이 시험장에서 시험관을 속이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한다.

분명, 커닝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런데 커닝이 나쁜 이유는 '자신의 양심에 비춰 옳지 못하다'는 이유보다 '내 좋은 성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BK21과 같은 정부의 소수대학 집중 지원방안이 도입되면서, 대학간의 '경쟁력'이 화두가 된지 오래다.

한편, 대학의 경쟁력은 학생들의 취업률로 말해진다. 이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대학은 점점 더 경쟁논리로 흘러간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쉬운 '인기 학문'만이 환영받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은 취업 학원 역할을 자임한다.

성균관대가 인문계열의 일부 과를 폐쇄한 한편, 의대를 만들고, 공학계열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전자의 예다.

한편으로는 '삼품제'를 도입하여 영어와 컴퓨터 실력, 봉사능력을 '검증'하여 졸업장을 주는 것이 후자의 예다. 이 속에서 전공 공부로 표현되는 '학문'을 연마하지 않는 학생들을 비판할 여지는 약해지는 것이다. 대학의 학부는 더 이상 '학문'을 꾀하는 곳이 아니다.

학부제의 도입과 맞물린 상대평가제도 역시 적절한 평가방식인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상대평가는 상-중-하의 성적분포가 고른 결과를 요구한다. 대학의 학문이 과연 그런 방식으로 평가 내려질 수 있는 것인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전공분야에 맞는 다양한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대학이 없다”며 대학 교육의 현실이 “공부할 맛 안 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상대평가제도, 학사관리 엄정화 방안, 졸업인증제도가 대학생들에게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개개인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2백 명 듣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성취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라며 대학의 시험이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도 꼬집었다.

학업수준이 제대로 평가되는 문제만 해도 교육여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지적대로, 현재 한국 대학의 교육은 입시 교육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이 되기 위한 경쟁의 틀 속에 대학생들을 몰아넣으면서 결과주의의 늪에 빠뜨린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성적에 몰입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존재나 자아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반성 없이 자동적으로 베끼기를 하는 것”이라며“타인의 글쓰기를 베끼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성과 삶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성적은 결과다. 성적만을 중시하는 결과주의는 그 과정에 대한 고민을 생략한다. 커닝이 시험의 한 풍경인 것은 오래 전부터다. 우리에게 이러한 '비양심적', '비주체적' 행동이 '잘못 됐다'고 말해주는 교육이 없었다는 점이 사태를 오래 지속시키게 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시험'이라는 획일적인 평가제도만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8호(10월 15일자)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8호(10월 15일자)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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