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이 결여된 풍경화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고

등록 2002.10.19 11:45수정 2002.10.19 17:02
0
원고료로 응원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 일부 시민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쳐다보면서 기다린다. 다른 쪽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던 일을 한다.

"마침내 선택이 끝났다."
오늘의 희생양, 개봉박두!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은 카세트 테이프 노점상이었다!
- 다른 눈으로 바라보라 중에서.



부천 교보문고에 갔다. 서평을 쓰기 위해 선택한 책, 조 사코가 쓴 '팔레스타인'을 구입하기 위해서 교보내의 매장을 돌아다녔다. 일간지마다 소개되었고 각종의 서평란에 크게 소개되어 쉽게 찾으리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매장이나, 신간 서적 매장에도 없었다.

결국 직원에게 물어 겨우 찾아낸 곳은 만화로 분류된 서가에서였다. 고우영씨의 만화삼국지 10권 짜리 옆에 초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 사코가 쓴 팔레스타인은 이미 미국에서 출판 대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책으로 소문이 나 있어 꼭 보고 싶었는데, 만화였다니. 그러나 만화라는 선입견은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깨어졌다.

자칭 만화 광이라는 내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겐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보통 만화책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읽어도 십 분을 넘기지 않는 게 나의 만화 읽기 실력이었는데, 이 만화를 읽어나가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 그리 많은 시간을 들여 읽었을까? 라고 책을 다 읽은 후 되돌아보니 이 책은 행간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만드는 작가의 그림과 그 그림 뒤에서는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가의 치밀함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왜? 사람은 이렇게 잔인할까?", "조국과 민족이란 이름은 왜 진정한 면죄부일까?", "이 문제는 단순히 종교문제는 아닌 듯 하다. 그러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이지?", "폭력은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필수가 되어버렸지?", "그럼 팔레스타인에게는 폭력이지만 왜 이스라엘인에는 폭력이 아니지?", "왜? 이스라엘은 나찌와 같은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왜? 나찌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가 나찌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묘사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인간조건의 최소 단위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인간의 조건은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은 아마도 평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팔레스타인이 말하는 평화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에는 일정 정도의 추상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