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우성
- 유태인이면서 팔레스타인 지원투쟁을 한다는게 쉬운 일 일 것 같지 않은데요.
"제가 가족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이스라엘 수상이 하는 연설을 듣게 되었어요. 그는 '이스라엘사람들을 위해, 전세계 유태인의 이름으로'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언제 내가 너에게 유태인의 이름으로 이야기할 권한을 주었나' 수많은 유태인을 이용해 수상이 정치를 하는 행동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유태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유태인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 얻어맞은 일도 있구요.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뒤 '진짜 유태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유태인 그룹'의 멤버가 되었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반대하면 욕도 먹고 그러지만 유태인이 이스라엘을 반대하면 그런 박해는 받지 않아요. 어쨌든 유태인은 1,2차 세계대전 때 인종차별로 인해 엄청난 희생을 당했으면서도 스스로 인종차별을 이스라엘 유지의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자들은 우리를 'self haters'라고 불렀지요."
- 스스로의 정체성 일부를 부정하는 일을 하게 되신 거네요.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잘못', 이를테면 인종차별적 행위들을 반대하게 된 것이지요."
- 부모님들은 당신의 행동을 이해해주셨나요?
"우리 어머니는 영국 내 핵무기를 적재한 미군부대 앞에서 반핵 시위를 할 정도로 진보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스라엘 사람이니까 이스라엘을 지지해야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계속해서 반 이스라엘 투쟁을 벌여나가자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랜 대화를 통해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이 나쁜 것이라는데 동의하셨지요."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기 위해 남아공으로
- 남아공에는 왜 가셨습니까. 영국 내에서 유태인권익보호를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게다가 그것이 벤과 가장 가까운 문제가 아닙가요.
"그렇습니다. 영국내에서 할 일이 있었어요. 그러나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활동가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 위해 일하자고 제의했고, 영국내에서 남아공 연대를 만들어 남아공물건 사지 않기 운동 등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이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곳이라고 생각하여 남아공으로 가게 되었지요."
- 넬슨 만델라가 1990년 초에 출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가 1990년 2월에 출소했고 제가 남아공에 도착한 것은 그해 9월이었습니다. ANC라는 신문사에 들어갔습니다. 어느날 'new nation'이라는 신문사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게 되었는데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지요. 신문사 앞 교차로에 시위대들이 운집해 있고 빌딩위에서 시위대를 향하여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 1990년이면 아파르트헤이트정권 말기인데, 그때도 학살이 심했던가요.
"그땐 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정권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고 정권 스스로도 자신들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말기에 학살이 심했어요. 구정권은 남아공이 공산주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살을 자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 만델라정권 고문으로도 활동하셨다죠?
"제가 무엇을 해 주었다기 보다는 남아공인들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남아공의 가능성과 영감을 믿어요. 그리고 남아공의 관용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정권으로부터 그토록 핍박을 받고도 곧 '새로운 사회를 위해 함께 해보자'고 할 수 있는 태도에 놀랐습니다."
- 그건 약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남아공 흑인들이 아직 힘이 없어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넬슨 만델라는 출소하자마자 '용서하는 것이 투쟁하는 것보다 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스스로 그말을 실천했습니다."
- 영국사람이면서 남아공에 살고 계시니까 부모님, 특히 어머님이 보고 싶을텐데요. 고향이 그립지는 않나요.
"어머님이 보고 싶지요. 그리워요.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에 오면 민족이라든가 국적 같은 것을 너무나 따져서 무서울 때가 있어요."
- 일본은 섬이어서 그럴 것 같구요. 남한은 분단으로 인해 '섬 아닌 섬'이 되어서 아무래도 폐쇄적일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민족이나 국적 같은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아닌가요.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요. 저는 지금 남아공에 12년째 살고 있는데, 제가 영국인인지 남아공인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팔레스타인에 살 때에는 내가 팔레스타인인지 이스라엘인인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국적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결혼은 안 하십니까.
"사랑했던 여인과 남아공에서 10년 정도 함께 살다 헤어졌습니다."
- 부모님은 손주를 원하시지 않나요.
"어머님이 결혼생활의 고통을 아주 잘 아셔서 강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 어려운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
"뭐든, 물어보세요."
- 왜 만델라는 위니 만델라와 헤어졌나요. 오랫동안 몹시 궁금했답니다.
"위니 만델라가 감옥에 있는 동안 자기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위니 만델라에게 다른 애인이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구요. 어쨌든 넬슨 만델라가 성장하는데 반해 위니 만델라는 그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 피곤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한국 내 활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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