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계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살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쬭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김지하 '오적' 일부)
...1964년, 외모가 제법 준수한 학생 한 명이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을 벌이다가 4개월간 차디 찬 철창 속에 갇힌다...
쇠토막을 삼켜도 소화시켜 낼 것만 같은 그 젊디 젊은 청년은 1969년 '황톳길'을 발표하면서 시인이 된다. 시인은 첫 옥살이를 한지 꼭 10년 뒤인 19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형집행정지로 10개월만에 풀려난다.
이후 시인은 인혁당 사건으로 다시 투옥되어 8년간의 긴 옥살이를 한다. 그 지리한 옥살이에서 시인은 옥방 창틀에 새싹을 틔운 민들레를 바라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새싹을 틔운다. 그리고 1984년 겨울, 감옥에서 풀려난 시인은 화염병을 버리고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이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시인은 최루탄이 난무하는 도심을 버리고 길을 떠난다. 우리 민중사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시인이 우리 민중사상의 뿌리라고 생각한 것은 동학과 증산도였다. 그래서 시인은 동학과 증산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계룡산과 우금치, 모악산과 황산벌 등지를 헤맨다.
하지만 시인은 병이 들고 만다. 긴 옥살이에서 비롯된 그 병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병마 앞에서도, 박정희 때 그랬던 것처럼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인이 그 긴 병마와 싸우며 닿은 땅, 그 새로운 생명의 땅은 '율려(律呂)'라는 땅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한때 '죽음의 굿판 집어치워라'라는 그런 이상한(?)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