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보다 더 무서운 한국 언론

북한핵 개발 시인 사태 및 언론보도에 관한 긴급토론회

등록 2002.10.23 18:17수정 2002.10.2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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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열린 북한 핵개발 문제와 언론보도에 관한 토론회.
23일 열린 북한 핵개발 문제와 언론보도에 관한 토론회.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최근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용백)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이 주최한 '북한 핵 개발 시인사태 및 언론보도에 관한 긴급토론회'가 23일 오전 10시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북한이 인정한 핵개발이 핵 프로그램인지, 핵무기 프로그램인지, 또 왜 미국은 이 시점을 선택해서 북한 핵 개발 시인 사실을 밝혔는지를 놓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특히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을 둘러싼 진위 여부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과연 어디까지가 확인된 정보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핵 프로그램인가, 핵무기 프로그램인가

특별초청 리영희 교수의 '모두발언'

▲ 리영희 교수
이날 토론회에는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특별초청을 받고 참석, '모두발언'을 했다. 리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리 교수의 발언 요지.

"현 상황은 결론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깨기 위한 미국의 음모다. 러시아, 일본, 중국이 지원하는 남북의 화해 무드는 미국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대만을 지원하기 위해 남한을 기지화 할 가능성이 있으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우리는 베트남 참전 이상으로 심각한 대중국전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이후 미국이 계획한 신국제 질서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국가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본인은 켈리 특사의 발표를 듣고 미국의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국민을 생각하며 암담한 기분을 느꼈다.

미국은 북한의 멸망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는 미국의 음모와 의도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의 신국제질서 계획

1. 소련과 같은 강한 적대국가 출현을 방지
2. 세계 군사력의 합보다 우월한 군사력의 보유
3. 핵의 독과점
4. 권위에 대한 도전 국가를 가장 싼(Cheapest) 값으로 처치
5. UN이 협조시 UN의 이름을 내세우고 비협조시 단독행동
첫 발제자인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 핵 파문과 2003년 한반도 위기'라는 발제문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미국측의 주장에 두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 대표는 "과거 미국이 영변과 금창리에서 개발되고 있는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할 때와는 달리 '핵무기 개발 지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 정부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밀수입했다는 정보에 대해서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의혹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정보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 언론들이 추측에 근거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울러 정 대표는 "10월 17일, CNN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강석주 외무성 제1부부상을 몰아붙이자, 강 부부상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래,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며, "먼저 강 부부상의 이 말에 숨은 의미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 프로그램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핵 프로그램은 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평화적 핵 사용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정 대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우라늄 시설이 핵무기 제조용 '농축' 시설인지,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될 '정련' 시설인지 명확히 밝혀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왜 이 시점을 택했는가

23일 열린 북한 핵개발 문제와 언론보도에 관한 토론회.
23일 열린 북한 핵개발 문제와 언론보도에 관한 토론회.오마이뉴스 권박효원
한편 정 대표는 미국의 발표내용과 더불어 발표 시점과 방식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정 대표는 "왜 미국은 켈리 특사가 돌아온지 12일이나 지나서, 그것도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 서둘러 발표를 했는가에 관한 의문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철의 실크로드 건설과 북일 정상회담 등 탈미로 대변되는 동북아의 지각변동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북한이 원한 것은 '상호주의'였던 것에 반해, 미국이 원한 것은 북한의 선(先) 무장해제, 미국의 후(後) 대북관계 개선으로,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미국은 그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공개하고 북한의 협상안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속셈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발제에 뒤이은 토론에서 정일용 <연합뉴스> 논설위원은 "왜 북한은 핵을 가지면 안 되느냐"며, "국제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핵 보유는 최저의 비용으로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 통일외교부 강태호 차장은 "그런 논리로는 세계적인 핵확산을 막을 수 없다. 현 상황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해야만 한다"며 정 위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 대표의 발제에 이어 김은주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양문석 언론노조 민실위 정책실장이 각각 신문과 방송의 관련보도 분석결과를 발표했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북한 핵 개발 시인 사태에 대한 신문 방송 보도분석
'대북강경론'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언론

23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 핵 개발 시인 사태 및 언론보도에 관한 긴급토론회>에서 2, 3번째 발제는 '북핵 시인 사태에 대한 신문 방송 보도 분석'이었다. 다음은 신문을 분석한 김은주(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씨와 방송을 분석한 양문석(언론노조 민실위 정책실장)씨의 발제를 요약한 내용이다...필자 주

10월 18일, 북한의 핵 개발 시인 사태가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한반도에 긴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 강경론을 주장하는 언론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언론 사이에 심한 보도 차이가 드러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조선, 동아, SBS는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외신보도와 익명의 취재원을 근거로 대북강경론을 선동하고 햇볕정책을 비난했다. 아울러 북한의 핵 개발 시인 배경을 '벼랑끝 전술'로 몰아가면서 한미공조 하에 강경대응을 요구했다. 이러한 보도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숨어 있다.

또한 방송 3사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이 협상용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북한이 제시한 협상의 3대 조건(선제공격 포기 약속, 북미평화조약체결, 경제체제 용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와 달리 한겨레, 경향은 차분히 현재 상황을 진단하면서 "평화적 해결원칙 및 한국정부가 북미대화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 '북한에겐 미국이 합의 파괴자(For North Korea, U.S. is Violator of Accord)'라는 해설기사를 통해 평양의 핵개발 시인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해야 할지 분석했다. WP가 북한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번 북미대화는 미국에 대한 대화재개 요청이며, 제네바 합의를 먼저 파기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다른 관점에서 본 분석'이라는 전제하에 북한은 미국이 수시로 합의를 반복 파기했으며, 북한을 공격하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고, 북미간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북한측의 대화요청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국내 언론이 북미회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오히려 미국의 언론보다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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