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중년가수의 발라드풍 노래여인철
그곳에서 다시 광장 쪽으로 눈을 돌리니 머리가 허옇고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다. "Tears in heaven", "Wonderful tonight" 같은 달콤한 노래들을 기타를 치며 부르고 있었다. 한참을 있다보니 어느덧 7시가 가까워졌다.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7시에 시작한 오페라 공연이 끝나서 밖에 나온 것이 밤 10시 20분경. 처음 관람하는 '투란돗' 공연의 감흥으로 가슴은 뛰고 있었다. 밖에는 온갖 세계 명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쟤규어, 롤스로이스, 베엠베, 벤츠 등등. 그 사이로 나는 부지런히 빠져나왔다.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의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이곳에 수없이 와 봤지만 오늘처럼 횡재(?)를 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원하면 CD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지만, 생음악으로 듣기는 그리 쉬운 노래들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보면서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챈널인 KBS의 '열린 음악회'에서도 쉽사리 들을 수 없는 수준 높은 오페라 아리아들이다. 그런 아리아 중에서도 압권인 "Nessun Dorma"를 오늘 3번이나 들은 것이다. 어찌 횡재(?)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아까 낮의 광경을 떠올린다. 부럽다. 넓지 않은 광장 이곳 저곳에서 서로 다른 취향과 성격의 공연(?)이며 퍼포먼스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 그런 공간을 요모조모 기가 막히도록 잘 활용하는 그들. 커피든 포도주든 한잔씩 앞에 놓고 조용히 담소를 나누면서 작은 공연을 지켜보는 그 사람들의 세련된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꼭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키거나, 그것도 남의 입에까지 꼭 부어넣어야 하고, 술에 절어 갈짓자 걸음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문화적 심성도 조금은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배려하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어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싸우거나, 거칠고 공격적인 우리네의 심성도 조금 누그러져야 하지 않을까.
서민대중이 푼돈으로 후원하는 그런 거리공연 문화 속에서 고급문화가 싹트고 그런 토양 속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예술가, 행위예술가 들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그런 문화를 가지게 될까.
우리도 앞으로 시장이라든지 쇼핑몰을 짓는다면 이런 것들도 좀 고려를 해서 지으면 어떨까. 우리에게는 광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문화적 욕구가 분명 있을 것이며 그것을 표출하고 누릴 수 있는 공공의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시장이 지금처럼 필요한 물건만 달랑 사서 돌아오는 곳이 아닌, 여유롭게 커피나 차를 마시며 작은 공연을 지켜볼 수 있는 그런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나라 공연장의 관람료 체계도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들이 혜택을 지금보다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바뀌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오페라 전용극장이 없고, 대개의 공연장은 관현악단의 연주와 기타 다른 공연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해서 만든 공연장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관람료 체계는 주머니가 얇은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다.
로얄오페라하우스 같은 곳의 관람료는 (투란돗 공연을 예로 들면) 8 파운드(1만6천원 가량)에서 140 파운드(28만원)로 차이가 크게 나,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이 내고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없는 사람은 아주 싼 값에도 원한다면 좋지 않은 자리에서라도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1층 맨 뒤에서 서서라도 볼 사람들을 위해 4파운드짜리 표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의 공연의 표 값이 대개 2만원 정도부터 시작해서 10여만원 정도까지로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며, 싼 좌석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 좌석을 세분화하지 않고 대충 총액을 맞추어 값을 매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마음은 있어도 누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같이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의 하루는 나에게 많은 것을 뒤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9월 런던 체류중에 쓴 글이며, 대자보(jabo.co.kr)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오페라 '투란돗(Turandot)'의 줄거리
오페라는 고대중국의 북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제 왕은 늙고 병들어 그의 딸 투란돗 공주가 결혼을 함으로써 남편(왕)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투란돗 공주는 스스로 맹세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 맹세란 그의 먼 조상인 여왕이 외적의 침략으로 살해당한 사실을 떠올리며 자기는 어느 누구와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남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은 그녀가 묻는 수수께끼에 답을 맞추면 그녀와의 결혼이 허락되나 만일 답을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시도를 하였으나 답을 하지 못 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결국 그 도전의 기회란 투란돗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만들어 놓은 덫에 불과했다.
지금은 망한 왕조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Calaf)는 투란돗 공주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하여 그는 목숨을 걸고 그녀가 내는 수수께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늙은 아버지 티무르(Timur), 그리고 남몰래 칼라프를 사모하고 있는 몸종 류(Liu)가 완강하게 말리지만 소용이 없다.
드디어 시련의 순간을 이겨내고, 칼라프는 어려운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푼다. 그러나 투란돗 공주는 왕에게 어떤 남자도 자기를 소유할 수 없다며 결혼하지 않을 수 있도록 간청을 한다. 그러나 황제는 약속은 신성한 것이라며 거절을 한다.
이에 칼라프 왕자는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그녀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낸다. 만일 그녀가 다음 날 새벽까지 그가 누구인지 이름을 알아맞히면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것이었다.
공주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된다 (Nessun Dorma)는 명령을 북경 전역에 내린다.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칼라프 왕자에게 부와 여자를 제공하며 마음을 돌리려 하기도 하고, 티무르의 몸종 류가 그 내막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류에게 고문을 가한다.
그러나 류는 그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배신하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류의 이러한 지고의 사랑은 얼음같이 차가운 투란돗을 움직이게 한다. 칼라프는 스스로 그의 이름을 공주에게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왕과 궁정대신, 그리고 백성들이 모여있는 자리, 칼라프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이다. 투란돗 공주는 그 이방인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말한다. 칼라프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 자결을 하려하는 순간, 투란돗은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선언한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돗 공주를 ‘소유’하고, 중국을 통치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기뻐하며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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