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불교, 무엇이 문제인가?

박재현, <깨달음의 신화>

등록 2002.10.25 21:41수정 2002.10.2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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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깨달음의 신화>

<깨달음의 신화> ⓒ 푸른역사

'선문답'이라는 말이 세간에서 통용될 때는 그 의미가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껏해야 "정작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전혀 엉뚱한 답만 늘어놓고 있다"는 식의 불만 섞인 말을 토로할 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답변하는 자가 해답이라고 제시하는 말이 질문자에게는 전혀 엉뚱한 대답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령, 널리 알려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화두처럼 남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말일수록 신비에 휩싸이는가 하면, 정반대로 헛소리 취급을 당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엇갈리는 평가 사이에 "선불교의 신화"가 놓여 있다.


선불교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소위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말들이 다 무엇이던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차원에서 비로소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데서 나온 말들이다.

붓다가 49년을 설법하고도 임종 전에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언급한 것이나, 그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유독 마하가섭이라는 제자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즉 말로 표현된 "깨달음"은 이미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선불교의 오래된 가르침인 것이다.

붓다, 곧 "깨달은 자"를 얼마나 잘 모방하느냐의 문제는 불교에 있어서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붓다를 "깨달음" 혹은 "해탈"을 이룬 원형이라고 한다면, 타국인들이 그를 제대로 모방하기란 예초부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수많은 불경을 제대로 읽고 소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고, 또 붓다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긴 세월의 간극과 다른 문화 전통에 있는 그를 진정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모방은 아무리 잘해봐야 한계를 지니기 마련이 아니던가. 이런 연고로 티벳 고원을 거쳐 중국에 들어간 불교는 어설픈 모방만에 그치는게 아니라, 스스로 원형을 창조하려는 선불교를 낳기에 이른다.

저자 소개 : 박재현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 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현재 서울대와 경희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선불교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 중이다.

지은 책으로 <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시공사)가 있고 2002년 교수신문사 주최 제 1 회 학술에세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자에 따르면, 선불교는 불교사 전체를 두고 거대한 도박을 벌였다. 처음부터 붓다의 흔적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말과 글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본적이 없고 확인할 길도 없는 "마음"이라는 비실체적인 것을 깨달음의 원형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법맥(法脈)이론을 고안하고 석가의 최 측근에서 그의 임종을 지켜본 아난이 아니라 염화미소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은 마하가섭을 서천조사(祖師) 제1조의 자리에 앉혀 자신들의 정통성을 구축하고자 시도했다.


한마디로 교(敎)를 대표하는 아난 죽이기와 선(禪)을 대표하는 가섭 살리기를 한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선불교의 문자혐오증, 가섭을 따르던 무리들의 엘리티즘적 징후, 비구출가자들의 종교권력 집단화 등의 문제점들을 속속 파헤친다.

이외에도 저자는 점문(漸門)과 돈문(頓門) 등 "문"에 관한 논쟁, 중(中)의 정체성, 의지, 믿음과 바람, 회통과 일치, 초월, 방편, 노동, 여성 문제들에 대한 선불교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대승의 이상은 지혜(깨침)와 방편(자비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애써 강조한 저자의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긴말 할 것 없이, 상구보리(上求菩提-위로는 깨달음을 구함)와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구제함)이 분리되어선 안되고 병행해야 하듯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실천은 별개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믿음과 깨달음의 완성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이에서 벗어난 어떤 믿음이나 깨달음도 마술이나 위선으로 전락할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가 21세기 한국 선불교가 풀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선사들의 믿음/이론과 그들의 일상 사이의 불일치를 꼽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한국불교가 근래 들어 무차대회 같은 것을 열면서 한국적 조사선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려고 하지만, 무차(일체 차단이 없음)를 말하면서도 사실상 대중과 소통 없는 단절과 차단을 재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이벤트성 연출에 그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간화선에 대한 문제제기, 선불교의 법맥에 대한 재평가를 목소리 높여 요구하는 학인들의 주장에 귀기울여야 한국불교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문제제기가 한국불교에 얼마나 의미있는 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깨달음의 신화 - 원형과 모방의 선불교사

박재현 지음,
푸른역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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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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