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시내 전경. 이곳의 대다수 위그르인들은 가난과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노순택
카스를 빗대어 중국에서는 ‘용해할 수 없는 이역의 정서’라는 말로 그 이미지를 묘사하기도 한다. 신장위그르족 자치구의 성도인 우루무치가 이미 상당부분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면서 위구르족 특유의 문화는 많이 탈색된 반면, 그리고 투르판 역시 갖가지 관광상품들의 개발과 잦은 외지 여행객들의 발길로 인해 그 이미지가 적당히 세련되어 있는 반면, 카스는 아직까지도 이슬람 세계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비함과 이방인들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왕국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네 개의 세계”
현대의 카스는 ‘개발의 대상’이다. 이곳은 낙후된 서부지역의 빈곤이 압축되어 있는 소수민족 자치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변방도시이다. 이들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중국판 뉴프론티어’정책인 서부대개발 사업은 주로 신장지역의 막대한 석유와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자 지역간 불균등 발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개방 정책의 새로운 ‘대장정’이다. 개혁개방 초기의 발전전략이 주로 동부연해지역 중심이었고 일정정도 그 성과를 이루었다면, 90년대 후반이후에는 주로 내륙의 서부지역 개발이 발전전략의 화두로 나서고 있다.
중국과학원 및 칭화대학교 국정연구중심의 주임인 후안깡(胡鞍鋼)은 최근 발표한 책 ‘지역과 발전: 서부개발 신전략’에서 중국내 지역간 발전불평등문제를 ‘하나의 중국과 네개의 세계’라는 말로 압축했다. 중국인구의 2.2%를 점하고 있는 상하이와 베이징, 션젼 등이 GDP면에서 중국내 제1세계라고 한다면 그 나머지 지역은 각각 제2, 3, 4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절반이상의 지역과 절반이상의 인구가 바로 이 ‘제 4세계’(그 대부분이 서부지역임)에 속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 4세계와 1세계 지역 주민들의 평균 GDP차이가 10배를 넘고 있다는 사실.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은 동·서 지역간의 경제적 발전격차의 해소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경제발전이라는 ‘당근정책’을 통해 서부지역의 정치사회적 불만과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90년대 들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신장지역의 위그르족을 중심으로 한 분리독립운동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현재로서는‘발전을 통한 길들이기’ 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서부지역의 70%이상의 인구가 절대빈곤인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한 중국내 소수민족 중 약 80%가 이곳 서부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적 빈곤은 주류민족인 한족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빌미가 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던 이 지역의 ‘분리주의 싹’을 더욱 키울 수 있는 사회분열의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중국정부는 이러한 서부지역의 잠재적 위험을 간파하고 ‘발전을 통한 통합’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카스에서 발전과 통합의 문제는 접점이 없는 평행선과 같은 것이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병원과 대형 호텔들, 그리고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들은 카스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지만 ‘통합’의 상징은 좀 체로 눈에 띄지가 않는다.
“만일 이곳에 위구르족들만 살았다고 하면 이정도의 발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스는 온통 위그르족들의 저 낡아빠진 집들처럼 지저분하고 가난하기 짝이 없었죠. 전염병까지 창궐했었고. 한족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감히 이런 발전을 이룰수 있었겠어....”
카스 시내에서 택시영업을 하는 모 한족 택시기사의 말이다. 카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족들도 이와 비슷한말들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카스의 ‘다수민족’ 위구르족들은 이에 대해 대부분은 언급을 회피한다. 그들이 털어놓는 유일한 속내는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못한다”는 것.
카스는 지금 ‘인민의 전쟁’ 중
| | | 카스의 역사 | | | | 남으로는 만년설로 유명한 중국의 톈산(天山)산맥이 있고 북으로는 쿤룬산맥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타림분지가, 북동쪽으로는 파미르고원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카스는 그 지리적 위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중앙아시아와 유럽, 이슬람권 세계로 연결되고 있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즉 카스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동시에 목적지였다.
카스의 완전한 명칭은 카슈가르(Kashgar)이며 위구르어로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다채로운 지방” 또는 “형형색색의 집, 녹색의 유리기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카스가 본격적인 중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된 시기는 1884년 청조말기에 신장성이 세워짐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카스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면, 그 기록이 BC 2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한(漢)이 서역과 교역하였을 때 처음으로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명칭이 소륵국(疏勒國)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오대(五代)초기에는 이곳 카스를 중심으로 하여 카라한 왕조가 들어섰는데, 이때부터 이슬람교를 정식 종교로 삼게 되었다. 즉 카라한 왕조의 성립을 기점으로 카스는 지금까지 계속하여 전체 신장지역 이슬람교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 후 본격적인 서역경영에 나선 당(唐)의 지배를 거쳐 11세기부터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영향하에 있기도 했는데, 소륵국에서 카슈가르로 그 명칭이 바뀐 것은 원·명시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카스시가 세워진 것은 신중국 건립후인 1952년이다. 신중국으로 편입되기 전, 1933년에 카스에서는 ‘동투르키스탄회교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가 꾸려진 적도 있었다. 이 ‘경험’은 현재까지도 많은 위구르족 분리독립주의자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신중국 건립이후 카스는 중국 내 신장위구르 자치주의 한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위구르족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인의 역사의 일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 박현숙 기자 | | | | |
카스는 또한 ‘테러분자들의 온상지’이기도 하다. 중국정부의 어법을 빌리자면 그렇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사건 이후 중국 내에서 ‘인민의 전쟁’으로 불리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 바로 이곳 카스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동투’(東突, 동투르키스탄. 중국 서부 신장지역의 위구르족 분리독립주의자들을 지칭)테러분자들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10일, 중국외교부부장인 탕쟈쉬엔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천명한 중국내 ‘반테러’ 선언이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참사사건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했던 시점이다.
같은해 10월16일. 중국 신장의 이리지역에서는 두 명의 ‘동투분자’들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죄목은 ‘국가의 기본적인 이익을 해쳤기 때문’. 이들은 지난 1997년 2월5일 신장의 이리지역에서 ‘동투르키스탄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테러행위를 주도했던 핵심인물들이었다.
지난해 9.11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과 중국사이에는 모종의 ‘묵계’가 형성되었다. 바로 ‘반테러’라는 공통의 지상과제(?)이다. 미국은 그동안 제3세계의 인권문제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참견을 해왔으며, 특히 헤게모니 경쟁자인 중국의 인권문제에는 늘 훈수를 둬 왔다. 그럴 때마다 중국은 "너희나 잘하라"는 식의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미국과 인권문제로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던 중국정부가 9. 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을 '응원'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응원’속에는 미국에 대한 모종의 ‘묵인’을 요구하는 신호가 담겨져 있다. ‘9.11’을 계기로 중국에서도 ‘테러와의 전쟁’을 할 테니, 이전처럼 인권탄압이라는 식으로 귀찮은 시비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반 테러' 성명 이후 신장 위구르 자치주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이들 동투세력들이 암약하고 있는 곳으로 지목된 카스 등의 변방 국경도시에서는 "위그르족 세 명만 모여도 잡혀간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였다. "곳곳에 총을 든 테러분자들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들렸다.
위구르족이 인구비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내 위구르족 최대 밀집지역이자, 아프가니스탄 및 구소련 영토와 가장 근접거리에 있는 국경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1930년대 초반, 한때 이곳은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국가의 깃발이 세워지기도 했던 중국내에서 가장 ‘위험한’ 소수민족 자치지역이라는 점들이 중국정부로 하여금 이곳 카스를 '테러분자들의 온상지‘로 지목하게 한 것이다.
“동쪽의 해가 밝지 않으면”
그러나, 카스의 그 어느 곳에서도 이들 테러분자들의 살벌한 ‘눈동자’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테러의 공포가 아니라, 위그르인들의 남루한 가난과 실업의 ‘공포’이다. ‘인민의 전쟁’은 오히려 위구르인들의 이러한 일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카스의 위그르인들은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소수민족일 뿐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위구르족들 중 한달 평균 수입이 인민폐로 1000위안(한화 약 15만원정도)을 넘는 사람은 거의 극소수이다. 대부분이 평균 400-500위안정도의 수입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젊은이들의 실업률과 구직난은 자못 심각하기까지 하다. 제법 배웠다고 하는 젊은 인재들도 심각한 구직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