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다르다’는 논리의 모순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1> 한반도기 반대론자에게 고함

등록 2002.11.01 18:13수정 2002.11.01 21:11
0
원고료로 응원
부산 아시안게임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성공은 안전사고와 불상사 없이 진행되었다는 평가 말고도 남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상대 지역에서 열린 국제체육행사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남북이 ‘공존하는 연습’을 훌륭히 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선정된 일부 인사만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북한사람들과 뽑히지 않은 남한 민간인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통일을 대비한 상호 공존의 연습을 체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여전히 부산아시안게임에 불만인 사람들이 있다. 애초에 인공기 게양을 반대하던 이들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규정과 국제 스포츠 행사의 관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서더니 다음에는 남북한의 한반도기 동시 입장을 트집잡았고 이제 그것도 국민 대다수의 지지 속에 별탈 없이 진행되자 이번에는 경기가 끝나고도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그럴듯한 훈계(?)를 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남북이 서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자며 자신들의 한반도기 입장 반대를 합리화했다. 즉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사용을 포기한 것은 현 정권이 우리나라의 독립된 주권을 포기한 사건’이고 ‘아무렇게나 급조된 것 같은, 미적 감각이나 상징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깃발을 들고 흔들어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흥분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논리적 정당성을 ‘남한과 북한은 엄연히 독립된 두 개의 국가’이며 따라서 ‘우리는 태극기, 북한은 인공기를 각각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두 개의 국가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대한민국과 DPRK", <조선일보>, 10월 10일자 칼럼)

개막식에서의 한반도기 동시입장에 대해서는 그리도 할말이 많았나 보다. 대회가 폐막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또 다른 인사는 ‘개막식을 부산에서 참관하면서 머리가 무거웠다’고 회상한 뒤, ‘유엔에 따로따로 가입하고 국기도 저마다 다른, 하나 아닌 두 나라로 이뤄진 이 괴이한 단일팀’을 못마땅해 하더니 급기야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을 뿐, 코리아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며 이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다’라는 것이다.(최정호 울산대 교수, “남북은 하나가 아니다”, <동아일보>, 10월 28일자 칼럼)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개막식에서의 한반도기 동시입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남북이 하나가 아니라 둘인데도, 즉 이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 다른 독립된 국가인데 어떻게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조국은 하나’임을 외친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통일이 되느냐라는 논리이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이다. 이들의 볼멘소리처럼 남과 북은 분명 둘로 갈려져 있고 서로 다른 주권국가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당연한 말이 그렇게만 들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한반도기 동시입장을 반대하는 이들의 기본적인 통일관은-물론 내놓고 주장하지는 않지만-태극기 하의, 대한민국 주도의 일방적인 흡수통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남과 북이 다른데 어떻게 한반도기로 하나임을 강변하냐고 묻지만 정작 이들에게는 남북이 함께 입장하는 데서 태극기가 아닌 애매한 한반도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 못내 섭섭한 것이다.

한반도기의 사용은 남북의 공존과 상호인정 그리고 ‘화해를 통한 통일’을 지향하는 의미이다. 정작 지금은 나뉘어져 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남과 북으로서 동시입장의 경우에 태극기나 공화국기 중 어느 것을 들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남북은 화해의 상징으로서 자신의 국기를 접어두고 상호 수용이 가능한 한반도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상정 가능한 통일이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 외에는 없기 때문에 한반도기 아래 남북의 체제 인정을 결과하는 공존통일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일 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된다.

한반도기 동시입장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 즉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주권국가임을 현실로 인정하자는 것은 사실 그동안 민족화해와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이들이 줄곧 주장했던 금과옥조 같은 말이다. 남과 북이 엄연히 서로 다른 실체로 존재하고 있는 만큼 남은 북을, 북은 남을 현실로서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화해와 공존의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반드시 상호 체제인정과 공존의 방식을 통해 결국 평화적인 통일의 방향으로 가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 실체 인정의 주장은 흡수통일주의자들의 논리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반도기 입장을 반대하는 사람들, 즉 태극기 하의 흡수통일만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정작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북의 상호 실체 인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 모순일 뿐이다.

그들의 말대로 남북이 서로 다른 나라임을 인정한다면, 정작 그 논리대로라면 부산아시안게임을 보면서 ‘국위홍보에 빈틈 없는 북한응원단의 미소작전에 한국언론이 기우뚱했다’고 딴지를 걸어서는 안된다. 미녀 응원단에 호감을 표하고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동포애를 확인하려는 일반인들의 솔직한 정서마저 북의 장난에 놀아난 ‘위험한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해주고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포용의 정신이 오히려 그들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북한을 바라보는 데에는 철저히 남한의 관점과 태극기의 논리를 앞세운다.

a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민족21'김근식의 신문읽기' 연재중) ⓒ 희망네트워크

남과 북이 엄연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실체라면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우리 헌법의 영토 조항 2항은 문제가 되고 이에 따라 한반도 북부 지역에 존재하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자신의 한반도기 동시입장 반대논리에 따라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

제발 감정을 자극하면서 국민을 선동하고 필요하면 되지도 않는 논리로 자신을 감추지 말고 ‘흡수통일 지상주의’와 ‘북한 실체 불인정’이라는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근식 교수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근식 교수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