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낮 12시 30분경,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면, 그것도 그냥 학내 방송에서 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밴드의 라이브 음악인 경우라면 '오늘이 수요일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친다. 필자의 학교에서는 총학생회 주관으로 매주 수요일 점심때 학생회관 앞에서 '수요문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난 주 총학생회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학생의 글과 총학생회의 답변이 생각난다. 익명의 그 학생은 "밖에서 들리는 공연 소리 너무 시끄럽다. 대학이 공부하는 곳이지 노래 부르고 노는 곳인가?"라는 내용의 불만사항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대학에서는 학습의 자유 뿐 아니라 공연 등 문화활동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답변글을 올렸다.
이렇듯 "대학"의 공간에 대해 다양한 이해가 교차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대학은 "수업과 연구를 위한 곳"이기에 이에 관련한 학문 활동이 가장 중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대학은 모든 학내 구성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열린 문화광장"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또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되는 자유로운 투쟁의 장"으로서 대학을 이해하는 학생과 노동자들도 있다.
그런 상반된 이해관계의 교차 속에서 대학은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천극장이나 대강당에서는 한 주가 멀다하고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개최된다. 또 서두에 제시한 수요문화제도 매주 열리고 있고, 특정 운동 세력이 주최하는 각종 '파문 2002'등의 이름을 지닌 '문화제'도 공대 옆마당, 학생회관 앞 등지에서 자주 열리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2000년에는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2001년에는 금융권 통폐합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이 필자가 다니는 학교를 거점으로 삼아 며칠 동안 파업을 진행한 일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각 이해관계의 충돌로 많은 불만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는 가끔씩 학교에서 토플시험을 보는데,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오늘은 밖에서 공연하는 사람들 없나'하고 주의깊게 살펴본다. 언젠가 듣기평가를 할 때 밖에서 들려오는 밴드의 연주 소리 때문에 시험을 망친 기억 때문이다. 또 수요일날도 공연시간과 맞물리는 것을 피해서 그 시간에 꼭 점심을 먹으러 가곤 한다.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필자의 학교 현실상, '공연의 자유'와 '조용한 환경에서의 학습권'이 양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예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대로' 대학 내에서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활용했는데 이에 대한 다른 세력의 비판 혹은 방해를 받아 불만을 가져 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대학은 ...이러이러한 공간이다'라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이전에, 그러한 자신의 입장이 다른 이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는 일이다.
한국 현실에서 대학이 여러 기능으로 존재해 온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시민들에게 "공유되고 있는"문화적 성격의 광장이 부재한 것, 공연을 희망하는 집단은 많은데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의 문화적 설비가 부족한 것, 합법적인 '투쟁'의 공간이 부족한 것, 공공도서관의 부족 등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되고 있지 못한 것 등이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의 목록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학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입장을 나름대로 담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대학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사회 구성원 간에 상호 교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세력에 대한 배려이다. 롤스가 주창했듯이, 각 개인의 자유에 입각한 행동이 갖는 범위는 "다른 이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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